화상, 임오군란 때 옌타이 상인이 효시
등록 : 2017-07-06 15:38
법무부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 사는 화교(대부분 대만 국적을 갖고 있다)는 2만413명이다. 해방 이후 한때 3만여명에 이르렀으나, 한국 정부가 가한 경제 규제와 차별 정책을 피해 1만여명이 미국과 대만 등지로 이민했다. 그러나 1999년 외국인 토지거래 자유화, 2002년 영주권 부여 등의 조처가 이뤄지면서 적어도 화교에 대한 제도상의 차별은 거의 사라졌다.
화교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를 따라 들어온 산둥(산동)성 옌타이(연태) 상인 40명이 모태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전 세계 화교들이 대체로 중국 남부의 광둥(광동)이나 푸젠(복건)성 출신이 주류인데, 한국 화교만 산둥 출신이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것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유뿐 아니라,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
화교 상인(화상)의 특징은 자본 구성이 출자자가 2~5명 이내의 합자 형태이고, 직원들도 대부분 출자자나 지배인의 친인척이거나 고향 사람들을 쓰는 전통이 강하다는 점이다. 동흥관도 형제들이 지분을 출자하고, 주방의 요리사들도 모두 산둥성 출신이란 점은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중국집’은 한국 화교의 80%가 종사할 만큼 화교의 주 업종이었다. 그러나 각종 규제와 함께 한국인 경영 중국집이 늘어나면서 1970년대 초 2454개이던 화교 중국집이 1990년대 말에 가면 700~680개 수준으로 급감했다. 많은 화교들이 “우리 인생은 짜장면 면발에 달려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 화교들은 정체성 면에서 중국보다 한국에 더 가깝다고 평가된다. 외국에서도 중국인 커뮤니티보다 한인 커뮤니티에 의존해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한중 두 나라가 문화적 공통점이 많다는 점과 함께 상당수 화교의 모계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작용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료: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한국 화교 경제의 어제와 오늘>(양필승·이정희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