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엄마들은 왜 자신의 취향을 딸에게 강요할까요?
엄마와 자꾸 어긋나는 21살 딸, “관계 회복 바라지만…”
등록 : 2017-07-27 14:02 수정 : 2017-08-02 14:38
A 6월29일자 내 삶의 주인 되기 사연은 엄마 편에서 본 모녀 관계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번엔 20대 딸이 사연을 보내셨네요. 모녀 관계에서 10~20대 딸들은 타자입니다. 대부분 그들은 엄마가 묘사하는 대상이지 스스로 자신의 모녀 관계를 피력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엄마들의 이야기 속에서 젊은 딸은 문제아 혹은 반항아이며, 게으르거나 철이 없어 엄마의 애를 끓이는 존재입니다. 또는 엄마의 애착과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지요. 엄마들은 모였다 하면 자식 이야기를 하지만, 솔직히 자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들의 생각을 충분히 들어본 적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윗사람들이 그렇듯 부모는 훈계하고 설득하는 쪽이지 들어주는 존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침묵하던 딸이 입을 열어 엄마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제야 엄마들의 편견과 자기중심성이 드러납니다. 관계의 문제는 양측의 말을 모두 들어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라떼님의 의견이 소중합니다. 엄마 이야기에선 좀체 보이지 않던 딸의 죄책감,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마음, 엄마의 요구에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잘 보입니다. 라떼님과 엄마는 비교적 사이좋은 모녀 관계인 것 같네요. 엄마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고 또 엄마와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너무 격렬해서 깊은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면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의사소통이니까요. 다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싫은 거라면 안 하는 게 맞습니다. 사실 20대 초반 나이에 등산 좋아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 역시 산책하러 가기 싫다는 딸을 여러 번 종용했지만 내가 꿈꾸던 딸아이와의 행복한 산책은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그땐 냉정한 딸아이를 원망했는데, 라떼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딸도 거절하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엄마들은 도대체 왜 자신의 취향을 딸에게 강요하는 걸까요? 왜 일상을 같이하는 것도 모자라서 취미도, 생각도, 생활방식도 자신과 똑같아지기를 바라는 걸까요? 왜 딸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독립을 방해하는 걸까요? 정말 자신이 수고한 대가를 자식에게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이가 어린 시절 엄마에게 준 무조건적인 사랑과 전폭적인 지지로 수고한 만큼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나요? 중독 치료 전문가인 하인즈 피터 로어는 <착한 딸 콤플렉스>에서 죄의식에 기반을 둔 엄마와 딸의 의존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엄마는 자신의 행복하지 않은 마음을 딸의 탓으로 돌리면서 ‘내 딸이니까 너는 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 딸은 죄의식에 시달리고, 그 빚진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엄마의 만족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며 고군분투합니다. 애쓸수록 엄마의 욕심이 늘어나니 딸의 죄의식은 청산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경우지만 이런 모습이 일상의 모녀 관계에서도 곧잘 발견되지요. 부모는 자식을 통제하기 위해 아이의 죄책감을 자주 활용합니다. 왜 나를 가슴 아프게 하니, 왜 내 속을 썩이니, 실망이야, 왜 그렇게 철이 없니? 어쩜 그렇게 바보같이 구니? 하면서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자식을 양육하면 부모와 자식 관계가 사랑이 아니라 죄의식에 기초해 이루어집니다. 효도도, 심지어 자신의 성공조차도 빚진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효도는 분노와 피해의식을 만들어낼 뿐인데 말이지요.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효도를 원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떼님의 경우도 재수와 대학입시 등으로 미안해져 엄마에게 방학 동안 봉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엄마가 싫어하는 친구도 만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엄마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등산까지 요구하시네요. 등산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데 왜 그렇게 게으르냐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몸에 좋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라떼님, 다시 말하지만 싫은 건 싫은 겁니다. 앞으로도 싫고 좋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존중해주세요. 엄마의 기쁨을 위해 자신의 싫어하는 마음을 외면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엄마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겁니다. 그래야 부모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가장 어려울 때 발 벗고 나서서 도울 수 있습니다.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타인에 대한 선의는 그 어떤 것보다 자발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주는 이도, 받는 이도 기쁘기만 하니까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글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