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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엄마 찾는 메일 소중히 접수…26년 만에 모자 극적 상봉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들 상봉 성사시킨 서울글로벌센터 상담원 최윤선 대리

등록 : 2017-07-27 14:22 수정 : 2017-08-01 18:50
영어가 좋고 외국인과 대화하는 게 좋아서 영어상담원을 직업으로 택했다는 최윤선 대리. 자신의 영어 실력이 외국인들의 서울살이를 도울 수 있다는 점을 보람으로 꼽는다.

생후 3개월 된 아들 두고 향수병으로

한국 돌아간 어머니 찾던

미국인 청년, 센터에 마지막 호소

주민등록번호 알아내서 만남 성사

월요일 오전 9시30분. 종로1가 서울글로벌센터(이하 센터)는 이른 시간인데도 분주해 보였다. 한 줄로 놓인 상담 책상에는 우즈베키스탄, 중국, 베트남 등 10개 나라의 국기가 각각 놓여 있었다. 국기는 소통이 가능한 언어를 상징한다. 최윤선(26) 대리의 책상에는 유엔 깃발이 놓여 있었다.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 대리는 외국인 두 사람과 상담 중이었다. 20여분을 기다린 뒤에야 최 대리와 마주할 수 있었다.

“브라이스 스미스(27) 이야기요? 제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센터로 오는 메일을 정리하는 것도 제 업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었던 거지요.”


미국인인 스미스는 지난 9일 센터의 도움으로 26년 만에 헤어진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시작은 메일 한통에서 비롯됐다. 최 대리는 스미스가 센터로 메일을 보낸 건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라고 전했다.

센터는 한국인들에게는 낯설지만, 서울 거주 외국인들에게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통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거주 외국인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메일이나 전화로 상담을 해오는 일이 가끔 있다고 한다. 최 대리와 스미스의 인연도 지난해 11월 메일로 시작됐다.

메일에는 자기를 낳은 지 3개월 만에 향수병을 이기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간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 이름 석자와 생년월일,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와 결혼 전 오산시에서 아트갤러리를 운영했다는 정도가 스미스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주미 한국대사관과 미국 상원의원의 도움까지 받았지만,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다는 그간의 사정과 함께 ‘센터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이야기에 최 대리가 나섰다.

“처음엔 경찰에 문의했어요. 전쟁고아나 입양아가 아니면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이유로 협조가 어렵다는 게 답이었어요.” 결국 직접 나서야 했다. ‘주민등록번호라도 알면…’이라는 생각은 혼인관계증명서를 재발급받으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결혼이민을 하려면 혼인신고를 마쳤을 테니까요. 증명서를 재발급받으면 주민등록번호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최 대리에게 혼인관계증명 업무는 상담 활동 덕분에 익숙한 업무이기도 했다.

서울시 관련 부서에 재발급에 필요한 절차를 묻고, 필요한 서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스미스에게 보냈다. 스미스가 보내온 서류는 한국어로 다시 번역해 관련 부서에 전달해주고…. 최 대리가 스미스와 주고받은 메일만 20여통. 마침내 스미스는 지난 9일 대구에 사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영어를 좋아했어요. 대학 전공도 영어 통·번역학과입니다.” 최 대리가 영어상담원으로 일하게 된 건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아서”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15년 파트타이머로 센터와 맺은 인연이 햇수로 3년째다. 3년 만에 최 대리의 신분은 파트타이머에서 정규직 대리로 전환됐다. “영어로 소통하는 일보다 더 어려웠던, 생활정보를 수집하고 익히는 일”도 이제는 다른 상담원을 도울 정도로 베테랑이 됐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센터는 ‘외국인의 서울 생활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담당하는 외국인 종합지원기관이다. 종로의 서울글로벌센터 외에도 동대문과 영등포에 2개의 글로벌센터와 외국인 창업·사업을 돕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서래마을, 이태원, 연남동 등 서울시 6개 지역에는 자치구가 운영하는 글로벌빌리지센터가 있어 지역 거주 외국인들의 생활을 지원한다.

최 대리가 일하는 서울글로벌센터는 가장 많은 언어로 상담 활동을 한다. “종로라는 지역적 특징 때문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찾아요. 10개 언어로 상담을 지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함께 일하는 상담원 중에는 귀화한 외국인들도 있다. “귀화한 분들은 아무래도 고국 사람들을 만나는지라 더 친절해요. 언어는 물론이고 문화도 공유하고 있어 상담받는 외국인들도 편하게 생각하는 편이고요.” 귀화한 상담원들의 행정서류 작성과 아직 익숙지 않은 서울 생활 등의 어려움은 한국인 직원들이 돕는다.

은행 계좌 개설, 교통사고 대응, 주택 임대 등 한국인이라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어려움을 겪는 게 외국인들이다. 법률적인 문제, 임금과 고용, 부동산 계약 등 전문 분야는 변호사 등 전문가가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돕는다.

“센터는 상담 활동 외에도 의외로 하는 일이 많아요. 한국어 교실만 해도 일반회화는 물론이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 대비반도 운영합니다. 대학에 입학하거나 귀화를 하려면 꼭 치러야 하는 시험이죠. 다문화가정의 부모와 자녀의 소통을 돕는 모자 동화구연반도 인기가 높은 강좌이고요.”

서울은 이미 글로벌화한 도시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상주 외국인의 수는 33만명을 넘어섰다. “외국인들까지 더불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서울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는 게 좋은 점입니다.” 최 대리가 말하는 영어상담원의 보람이다.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