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주니클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지난 21일 열린 ‘뒤죽박죽 또래음악회’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고희준, 김가은, 김다은, 이시연, 정인수, 정준서, 정채원 등 7명 어린이가 바이올린을 들고 무대 위에 섰다. 흰색 라운드 셔츠에 청색 반바지로 나름 옷차림을 맞췄다. 첫번째 순서인데다, 관객 앞이 처음인 초등 3~4학년들이라서인지 살짝 긴장한 표정들이다.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동요 ‘작은 별’을 연주한다. 서로 곁눈질을 하며 호흡을 맞추지만 어쩔 수 없이 음이탈이 난다. 그래도 온 신경을 연주에 집중하는 모습이 제법 의젓하다. 1분 남짓한 연주가 끝나고 객석의 박수가 터지자 비로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이혁제 음악감독이 “긴장했네요. 역시 아이들입니다”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끈다.
지난 21일 저녁 7시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지하 1층 공연연습실. 100평이 넘는 연습실이 악기를 든 50명의 초등학생과 80~90명의 가족들로 가득 찼다. 지난 5월 서대문구 초등학생 50명으로 구성된 ‘서대문 주니클(Junior Classic) 오케스트라’가 그동안 10차례의 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힌 연습곡들을 가족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이름하여 ‘뒤죽박죽 또래음악회’.
아이들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트롬본, 트럼펫 등의 현악기와 관악기를 골라 파트를 이루고, 파트별로 전공자에게 매주 금요일 오후 문화체육회관 연습실에서 가르침을 받아왔다. 문화체육회관의 이재현 대리는 “전체 아이들의 90% 이상이 자신의 악기를 처음 만진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이날 악기별로 모두 17곡을 연주했다. 독주와 2~7명의 합주 방식이다. 아직 악기가 익숙지 않고 발표회가 처음인 탓인지 여기저기서 실수가 나왔다. 바이올린 기초반으로 ‘주먹쥐고 손뼉치고’를 합주한 김영웅(연희초 6)군은 “연주하다 활을 잘못 써서 깨지는 소리가 나 아쉬웠다”며 “합주는 기대했던 것의 70점 정도”라고 말했다. 클라리넷으로 ‘등대지기’ ‘글로리아’를 합주한 이채영(가재울초 5)양의 어머니 변혜정씨는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빌려와 이틀에 한번 정도 집에서도 꾸준히 연습했다. 그래도 자기가 실수하면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전했다.
아이들은 오케스트라 활동이 흥미로운 모양이다. 이채영양은 “그동안 플루트와 피아노를 배웠는데 친구가 부는 클라리넷이 너무 신기해 클라리넷을 선택했다”며 “클라리넷을 부는 건 물론이고 조립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든다”고 했다. 플루트를 부는 김이안(홍연초 6)양은 “여럿이 배우고 함께 성장하니 좋은 것 같다. 친구, 동생들과 수다도 떨고 친하게 지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음악회의 큰 재미는 마지막 무렵 비올라 합주에서 나왔다. 모두 8명이 나서 ‘글로리아’(Angel We Have Heard On High)를 연주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소리가 제각각,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이혁제 감독이 황급히 연주를 끊고, 비올라 선생님 박수에 맞춰 다시 시작해줄 것을 요청했다. 힘찬 박수가 나온 뒤 아이들은 어렵사리 연주를 마쳤다. 최재용(고은초 4)군이 민망한 듯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하며 비올라를 들고 뛰어나가자 객석에서 큰 웃음이 터졌다. 이 감독은 “아이들은 지금 이 모습에서 시작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성장할지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왁자지껄함 속에서 연주회는 1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또래 친구들이 뒤죽박죽으로 음악을 배우는 ‘서대문 주니클 오케스트라’는 서울시가 2010년 시작한 ‘우리동네 예술학교’의 일부분이다. 서울시는 어린이들이 예술 활동 속에서 자존감과 협동심을 높이고,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도록 자치구들과 함께 예술학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까지 1700여명의 서울 어린이가 예술학교를 거쳐 갔다. 올해는 서경대 예술교육센터의 주관 아래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두 영역에서 서대문구 등 9개 자치구의 아이들 389명이 참여하고 있다. ‘서대문 주니클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하는 오연재(북성초 5)양의 어머니 유혜정씨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여러 악기를 만나며 협동심을 배우고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는 기회를 갖는 게 좋다”고 말했다.
예술학교는 동시에 소외계층 어린이들이 전문 예술가와 강사들한테서 교습받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아무래도 경제적 부담 등으로 예술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올해 예술학교에 참여한 어린이 가운데 사회 취약계층이 60%를 넘는다.
교육은 12월까지 진행된다. 아이들은 매주 한두 차례씩 자치구별 운영기관을 통해 악기 연주와 노래, 안무 등을 교육받고 공연 관람, 자체 발표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동네예술학교 With망원’이라는 이름으로 뮤지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마포구 구립망원청소년문화센터는 지난 7일 향상발표회(공개수업)를 열어 가족들에게 그동안 배운 것들을 선보였다. 이 센터 청소년사업팀의 윤여정씨는 “발표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무엇이 부족한지, 잘한 것은 무엇인지, 아이와 뮤지컬 수업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됐다’며 만족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동네 예술학교’는 특히 다음 달 16~18일 서경대에서 통합여름캠프를 개최해 집중교육과 함께 다른 자치구 친구들과 사귀는 기회도 가질 예정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실력이 쌓이면 올해 말에 케이비에스 홀에서 통합 공연을 열게 된다. 뒤죽박죽 연주회가 끝난 뒤 이혁제 감독은 “지금까지 전체 일정의 30%를 진행했고, 그 기준으로 치면 30점 만점에 30점을 주고 싶다”고 평가했다. 8월 여름캠프가 끝나고 가을이 오면 아이들의 실력은 얼마나 자라 있을까?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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