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 빌라에서 집주인 김경희 할머니가 동거 대학생 이아름씨에게서 “같이 살아서 좋다”는 말을 듣자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 이씨는 모습을 드러내기 원하지 않아 흐리게 처리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동안 살면서 한번도 할머니랑 트러블은 없었어요”
25살 이아름(가명·의대 본과 3년)씨가 지난 5개월간 ‘할머니와의 동거’에 대해 소감을 뒤늦게 털어놓자 75살 할머니 김경희씨가 “그러냐”고 반색한다. 그러면서 짐짓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솔직히 이야기해. 내가 고칠게”라고 말을 잇자 이씨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김 할머니는 우울증세가 있어 밤늦게까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그대로 잠드는 경우가 있다며 이씨에게 양해를 부탁하기도 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빌라. 이곳 주방에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집주인 할머니와 세들어 사는 의대생이 나누는 대화는 친할머니와 손녀의 대화 이상으로 다정함이 넘쳤다.
이씨는 지난 2월 김씨 집에 세들어왔다. 월세 20만원의 자취방이다. 이씨가 다니는 학교 부근의 단칸방 월세 40만~50만원에 비하면 절반 이하 가격이다. 서울시가 2013년부터 시행 중인 ‘한지붕 세대공감’ 사업 덕분이다. 60살 이상 홀로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나 부부가 이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시세의 절반 이하 가격에 방을 내놓는 대신,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100만원 이내에서 장판을 새로 깔아주는 등 집수리를 해준다.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에게는 저렴하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고, 혼자 사는 집주인에게는 임대수입과 홀로 사는 적적함을 달래주는 ‘일석이조’를 노리는 홈셰어링 정책이다.
25살 여대생과 75살 할머니의 홈셰어링은 비교적 정책효과가 잘 구현된 케이스로 보인다. 4년 전 유달리 다정했던 남편이 폐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뒤 고독감과 적적함을 호소하자, 김 할머니의 아들이 “한지붕 세대공감 사업이라는 게 있는데 대학생을 들여서 같이 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며 지난해 초 대신 등록해주었다고 한다.
김 할머니의 세번째 홈셰어링 파트너가 된 이아름씨는 “늘 신경 써주시고 친철하다”며 할머니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면 대답 안 해주셔도 되는데 늘 “잘 다녀오거라” 말씀하셔 정을 느끼게 해준다고 이씨는 말했다. 김 할머니는 “원래 내가 사람을 좋아해서”라고 농담을 건네며 활짝 웃는다. 그래도 어린 손녀뻘 학생과 같이 살기에 불편한 점은 없을까? “요즘 학생들은 화장실을 깨끗이 쓰라고 시시콜콜 잔소리하면 싫어한다. 대신 나는 절약해야 한다는 정도만 얘기하는데, 학생들 대부분은 잘 호응한다.”
이아름씨는 이전에 기숙사에 살 때 동년배 룸메이트보다도 할머니와 더 잘 지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룸메이트가 할머니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이전 ‘룸메’는 같은 또래여서 아무래도 동선이 겹쳐 머리를 누가 먼저 말릴 것이냐 등 사소한 것 때문에 소소한 갈등이 있는데, 할머니랑은 생활패턴이 완전히 달라서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전 아침 7시쯤 병원으로 출근해서 저녁 9시쯤 돌아오거든요.”
김 할머니가 과거 의대생 학부모였다는 점도 이씨의 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작용한 듯했다. 병원일 힘든 점과 진로 고민 등에 대해서도 잘 이해해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김 할머니는 이아름씨가 밤 10시가 넘어 안 들어오면 “전화를 걸어서 언제 오느냐”고 신경 쓸 정도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한가족 세대공감 프로그램에 흠뻑 빠져 있다.
“이 제도가 우리 같은 노인에게 마음의 평안을 줘요. 혼자 살다 보면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도 외로워요. 그렇다고 데이트를 할 수도 없고….”
김 할머니는 취재에 함께 간 동작구청 담당 주무관에게 방 하나가 비어 있다며 세를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아름씨도 졸업할 때까지 김 할머니를 룸메이트 삼아 계속 같이 살겠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자취하는 친구들은 밤늦게 귀가하다 보면 무섭다고 하는데 저는 할머니와 같이 살다 보니 무엇보다 안전감이 들어서 좋아요. 빈집에 혼자 들어가면 무섭잖아요. 졸업할 때까지는 남아 있고 싶어요.”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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