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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유적지 따라가다 보면 절로 힐링

양화나루·잠두봉 유적

등록 : 2017-08-10 14:31
절두산 유적지의 천주교 순교 조형물. 마포구 제공
시끌벅적한 홍대를 나와 합정 방향으로 오다 보면 절두산 순교 성지를 만나게 된다. 처형 장소로 유명한 ‘절두산’은 원래 누에머리 모양과 같다는 뜻의 ‘잠두봉’이 원지명이다. 잠두봉 바로 아래쪽에는 한양을 방어하는 군사들이 주둔하던 양화진 나루터가 있어 선박들이 오가며 많은 물자를 실어 날랐다. 그래서 정식 명칭은 양화나루·잠두봉 유적지(사적 제399호)다.

잠두봉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곳으로 유명했지만, 병인박해(1866년) 때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목이 잘려 숨진 뒤부터 절두산이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 이곳에는 순교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67년에 준공한 성당과 박물관이 있다. 건축 당시 성지의 원상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지형을 변형시키지 않았다. 성당의 지붕을 ‘갓’ 모양으로 만들어 전통성을 살리고, 참수에 쓰인 ‘칼’을 높이 솟은 종탑으로 형상화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초입에는 병인박해 때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고안된 형구 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위로 올라가면 기념관과 성당이 이어져 있고, 순교성인 28위의 유해를 모신 성해실과 한국 천주교회 관련 사료와 유물·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나온다. 안으로 들어서면 전체적으로 아늑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띤다. 지금 박물관에서는 순교기념관 축성·봉헌 50주년을 기념해 특별전 ‘인 모멘텀’(IN MOMENTUM)이 열리고 있다.

절두산이 가톨릭의 순교 사적지라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개신교의 성지로 한강 변을 따라 이웃하고 있다. 이곳에는 베델, 아펜젤러, 헐버트 등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145명의 선교사와 그들의 가족이 안장되어 있다. 100년이 넘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묘원과 이어진 양화진 홀은 그들의 고귀한 신앙과 삶을 기리고 조명하는 전시실로 운영된다. 현재 우리나라 최초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한 셔우드 홀 박사의 어머니인 로제타 홀을 재조명하기 위해 ‘로제타 홀의 일기’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혼자서 조용히 사색에 잠겨 거닐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야기꾼의 감칠맛 나는 설명과 함께 둘러보고 싶다면 ‘양화진 근대사 탐방’을 추천한다. 마포구에서는 잠두봉 유적지 일대와 양화진·양화나루를 연계한 역사문화 프로그램을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운영하고 있다. 탐방 코스는 절두산 순교성지 코스인 A코스와 외국인 선교사 묘원 코스인 B코스로 나뉜다. 유적지를 둘러본 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선유도와 잠두봉을 둘러본다. 한강 변의 아름다운 유적지를 배를 타고 둘러보노라면 마치 조선 시대의 방랑시인이 된 기분이 든다. (문의 02-719-1495)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에는 이상향 ‘샹그릴라’가 나온다. 세상의 풍파에서 벗어나 일상의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된 평화로운 마을처럼, 양화나루·잠두봉 유적지도 마포에 숨어 있는 샹그릴라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종교를 떠나 잠시라도 힐링이 필요하다면 이곳에 머물다 가길 권한다.

백성미/마포구 공보과 주무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