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내 탓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보세요

오래 투병한 남편 먼저 보내고 그리움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는 40대 후반 여성에게

등록 : 2017-08-17 14:06
병원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무더웠던 여름 저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피서지 대신 응급실과 입원실을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대기실에 있다 보면 가끔 낯 뜨거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어르신 환자의 경우 처음엔 환자의 용태를 주목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앞으로 누가 환자를 돌볼 것인지를 놓고 자식들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펼쳐집니다. 가끔은 날 선 언쟁과 책임 공방이 오가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다 어떤 환자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투병하던 남편을 몇달 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40대 후반 여성의 이야기였습니다. 아픈 남편을 돌보느라 너무도 지쳐 있었기에 기분 전환하라고 주변에서 등 떠미는 바람에 친구들과 함께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합니다. 산길을 걷고 동해의 바닷물에 손도 담그며 실로 얼마 만에 느껴본 자유로운 공기인지 실감이 안 났다고 했습니다. 저녁 식사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이것저것 주문하며 한창 흥이 돋던 무렵입니다.

접시에 먹음직한 모양으로 생선이 담겨 나왔는데, 가자미조림이었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생전에 좀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탄, 혼자 남은 자기 자신과 앞으로 버텨야 할 세월에 대한 막막함과 서러움, 이런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뒤엉겨 튀어나왔습니다. 친구들이 위로한다고 맥주를 권했지만, 먹고사느라 남편과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함께 뛰어다녔던 기억과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늘 허둥대던 장면들이 겹쳐 보이자 그만 주책없이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고 합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너무나 야속하기도 했다 합니다.

그런데 설명하기 더 어려운 것은 알 수 없는 해방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져본 기쁜 감정은 또 무엇일까? 남편은 고통 속에 저세상으로 떠났는데도 자기 자신은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기분, 게다가 친구들과 즐거운 자리는 왠지 비현실적이고, 죄스러웠다고 합니다. 결국 그날 저녁 자리는 엉엉 울다가 엉망진창으로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도대체 복잡한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제가 나쁜 사람 같아요. 그렇겠죠?”

이 편지를 읽으며 저는 ‘강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눌려 삽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과 관련된 문제라면 ‘내 탓’ ‘무한책임’ 의식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강박이 있지만, 혈연 의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심한 듯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어떤 예술가도 매일 스물네 시간을 끊임없이 예술가로 있을 수는 없다.”


이 표현을 패러디하면 어떤 자식도 일주일 내내, 그리고 하루 스물네 시간 끊임없이 효자와 효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장기 환자가 있으면 그 강박 때문에 몇몇 사람은 과도한 노동시간에 시달립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극진한 아내와 남편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간직해야 하지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주기적으로 쉬어야 합니다.

사연을 주신 분처럼 배우자를 잃었을 경우 더더욱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그냥 집에서 우두커니 지내기만 하다가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자칫 우울증도 걱정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국제기구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테러가 많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한 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4주 또는 6주에 한번씩 ‘R&R’이라는 이름의 휴가를 명령합니다. ‘Rest & Recuperation’(레스트 앤 리큐퍼레이션)의 준말로, 휴식과 회복을 의미합니다. 휴가라고 하면 ‘논다’는 것을 먼저 떠올리지만,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 병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좌절하지 말고 위기를 극복하는 법을 강조합니다. 괜찮다고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견디기 힘든 좌절과 역경에 대처하는 연습은 어른에게도 필요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가혹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망, 이혼, 자녀의 좌절, 질병, 승진 탈락, 사업 실패, 퇴사, 실직 같은 것들의 고통은 그 하나하나가 너무도 견디기 힘든 것들입니다. 역경을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중년에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법’(How to Build Resilience in Midlife)이란 제목의 기사는 참조할 만합니다. 이 신문은 저명한 조직 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 교수 등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회복 탄력성’이라는 열쇳말을 제시합니다. 튼튼한 나무는 강풍에 휘청거리지만 결국은 제자리에 돌아오는데, 그것을 가리켜 회복 탄력성, 혹은 탄성이라 합니다. 그 탄력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심리적 근육’ 단련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육체적 근육이 약하면 자주 다치고 허약해지듯이, 심리적으로도 근육이 단련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금방 좌절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긍정적인 연습’입니다. 고인의 죽음이 내 탓이라는 죄의식, 자탄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오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그냥 이뤄지는 법은 없습니다. 연습하고 단련해야 합니다. 고통이나 역경을 이기는 법도 그렇습니다. 내 탓이라는 강박에서 졸업해야 할 때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 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