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파산야우

파산야우(巴山夜雨) 꼬리 파, 뫼 산, 밤 야, 비 우

등록 : 2017-08-17 14:07
입추(7일)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다음 주 처서(23일)와 다음 달 백로(9월7일) 사이쯤이면 이미 가을이다. 계절을 심사(心思)로 구분하면 가을은 가슴을 파고드는 그리움의 계절이다. 숱한 이별과 그리움의 노래가 가을을 배경으로 삼은 건 우연이 아니다.

파산야우(巴山夜雨)는 ‘파산(중국 쓰촨의 바산)의 밤에 내리는 비’라는 평범한 표현이지만, ‘그리운 연인과의 재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상은의 칠언절구 ‘야우기북’(夜雨寄北)에 나온다. “그대 돌아올 날 물었지만 기약할 수 없구려.(君問歸期未有期)/ 파산에는 밤비 내려 가을 못물이 불어났다오.(巴山夜雨漲秋池)/ 언제쯤 서쪽 창가에서 함께 촛불 심지 자르며(何當共剪西窓燭)/ 파산에 밤비 내리던 때를 이야기하리오.(却話巴山夜雨時)”

파촉 땅에 머물던 시인이 아내 왕씨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을 담은 이 시가 널리 애송된 이후 시 속의 ‘파산야우’ 넉 자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 또는 지인과의 상봉’을 뜻하게 되었다. “떠나올 때 당신은 언제 돌아올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러나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돌아갈 때를 기약할 수 없구려. 지금 파산에는 밤비가 내려 가을 못물이 건널 수 없을 만큼 불어나 있다오. 언제쯤 당신 곁으로 돌아가서 창문 밑에 베개를 나란히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파산의 비 내리던 밤에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했는지를 들려줄 수 있을까….”

시 속에서 계절을 뜻하는 글자는 가을 추 한 자. 이 한 글자 말고 시인의 심사를 집약할 수 있는 시공간이 어디에 또 있을까. 아내 왕씨의 그리움은 또한 어떠했으랴? 이백의 ‘추풍사’엔 그런 연인의 마음이 유행가 가사처럼 절절하다. “가을 찬바람, 밝은 달빛 / 낙엽은 모였다 흩어지고 / 둥지의 까마귀도 다시 깨어나는데 /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 / 이 밤 그리운 정 감당키 어렵네요 / 그리움의 문으로 들어서니 / 그리움의 고통도 알게 되는군요(…) / 사랑이 이토록 마음 얽맬 줄 알았다면 / 처음부터 만나지나 말았을 것을.

우리나라 시에서는 유난히 맑은 가을 하늘이 종종 파산의 밤비를 대신한다. 미당의 절창에 기대어, 한번쯤 눈부신 가을 하늘에 그리운 사람을 그려보면 어떨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서정주, ‘푸르른 날은’)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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