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학생 한 명으로 시작된 작은 기적

우리동네 이런공간 홍제동 마을예술학교 ‘문화촌 엘 시스테마’

등록 : 2016-04-15 13:42 수정 : 2016-04-28 14:10

홍제동 마을예술학교 ‘문화촌 엘 시스테마’에서 동네 아이들은 악기, 미술, 도시농업을 배우고 마을 주민들과 축제를 벌이며 각자 나름의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문화촌 엘 시스테마 김성후 제공

“학교라기보다 하루하루를 축제처럼 즐기는 공간이죠.”

 홍제동 작은 골목에 있는 마을예술학교 ‘문화촌 엘 시스테마’ 김성후 선생은 학교를 이렇게 특징짓는다. 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나눔이다. 특별한 입학 조건은 없지만 1년을 반드시 채워 수료해야 하고 배운 것을 다른 친구에게 가르쳐 줘야 한다. 선생님, 학생, 학부모 모두가 물품이나 재능을 기부하며 더 풍요로운 마을학교를 만들어 간다.

마을예술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업에서 주를 이루는 것은 악기 레슨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드럼, 우쿨렐레 등 다양한 악기와 어쿠스틱, 록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고 있다. 선생님 세분이 악기, 미술, 도시농업을 가르치고, 한분은 총괄 선생님으로 활동한다. 졸업식은 ‘동네음악회’ 무대에 서는 걸로 대신한다. 미술 수업, 도시텃밭 가꾸기 등의 수업도 한다. 매달 한번 열리는 ‘골목영화제’도 인기가 많다. 좋은 영화를 골라 마을 주민들과 학생들이 함께 본다. 텃밭 채소를 이용해 다 같이 피자를 만들어 먹거나 집에서 가져온 찐 옥수수와 달걀을 나눠 먹기도 한다.

 ‘문화촌 엘 시스테마’ 학교는 우연한 기회로 시작됐다. 2010년 무렵 김 선생은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했다. 학원 뒤편 공터에 청소년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자 아예 재떨이로 쓸 깡통을 마련해 줬다. 혼을 내도 별 효과가 없자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깡통 위에 ‘너희도 힘들겠지만 건강 생각해서 조금만 피워’라는 내용과 함께 “혹시 악기를 배우고 싶다면 무료로 가르쳐 줄 테니 찾아오라”는 글을 종이에 적어 붙였다. ‘설마 오겠어’라는 마음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학생이 찾아왔고, 그 학생이 또 다른 친구들을 데려오면서 학생 수는 15명을 넘어섰다.

 음악을 전공한 김 선생은 영화 <엘 시스테마>에서 받은 감동을 현실에서 이루고자 했다. 영화는 베네수엘라 빈민가 아이들에게 총과 칼 대신 악기를 쥐여 주는 얘기를 담고 있다. 그는 뜻있는 다른 선생들과 함께 ‘문화촌 엘 시스테마’ 활동을 시작했다. 뜻과 마음이 맞는 주민과 학부모들로 이뤄져 자발적으로 활발하게 모임을 꾸려 왔다. 지난해부터 ‘문화촌 엘 시스테마’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네트워크와 함께 활동하기 위해 ‘마을과 함께하는 학교모임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활동을 넓혀 가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학생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을 주민들이 다 같이 모여 ‘김광석’을 주제로 음악 축제를 했다. 무료로 악기를 가르쳐 주고 근처 카페인 ‘허니비’ 앞에 버스킹 무대를 만들어 자유롭게 공연도 했다. 그 옆에 자리한 ‘멸치가게 녹음실’에서는 직접 녹음 체험도 할 수 있었다. 같은 골목에 있는 허니비 카페, 녹음실 겸 멸치가게, 예담공방은 골목길 행사를 함께하는 든든한 이웃이자 동료다.


 “더불어 사는 삶과 함께 누리는 감동에서 가치를 찾는다면, 사회에선 꼴찌가 이곳 골목에선 일등이 되는,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믿는다”라고 김 선생은 힘줘 말한다. ‘문화촌 엘 시스테마’ 간판에 ‘스토리텔러’를 내걸은 이유이기도 하다.

최고운 서울시마을종합지원센터 웹진 <마을이야기>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