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민주 유공자와 그 가족에게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인 서대문구 독립문로8길 ‘나라사랑채’의 입주식이 14일 오전 열렸다.
독립운동가 김동만(?~1920) 선생의 손자 김성생(77)씨는 건설 현장 일용직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 김씨는 중국에서 살다 1990년 귀국해 인천의 딸 집에서 살고 있다. 지병인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일용직 노동도 그만두고 매달 30만원의 기초연금으로 생활하는 처지다. 아내는 뇌졸중으로 자주 병원 신세를 지고, 아들은 디스크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인 김동만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한일병탄 뒤 만주로 망명해 삼광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재임하며 항일사상 고취에 주력했다. 한족회 등의 독립단체에 가담해 활동하다 1920년 일본군의 대학살 때 살해당했다. 김동만의 형인 일송 김동삼(1878~1937) 선생 또한 서로군정서 등을 이끌며 만주 지역 항일투쟁사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이름 높다.
김씨에게 지난 14일 편안한 보금자리가 생겼다. 그는 이날 서대문구가 독립·민주 유공자와 그 가족에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인 ‘나라사랑채’에 입주했다. 나라사랑채는 독립문로8길에 자리한 지상 5층짜리 주택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건물을 샀고, 서대문구가 입주자 모집과 향후 관리, 공동체 유지 등의 업무를 맡았다.
전용면적 29~49㎡(9~15평)의 공간에 14가구가 살 수 있는 이곳엔 국가 유공자, 독립 유공자, 민주화 유공자 등과 그 가족이 입주한다. 입주민들은 주변 시세의 30~50% 수준에 해당하는 월 임대료를 내고 이곳에서 살게 된다. 김성생씨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너무 감사하다. 입주민들과 잘 어울리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독립 유공자 김사봉(1896~?) 선생이 외할아버지인 서영숙씨도 입주자 중 한 사람이다. 김사봉은 1919년 4월9일 강원도 원주군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해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한평생을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 헌신한 조화순(83) 목사, 노동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고 1970년대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한 <어느 돌맹이의 외침>을 쓴 유동우(68·본명 유해우)씨도 나라사랑채의 ‘가족’이 됐다. 입주식 행사에는 입주자들과 민주유공단체 회원, 이웃 주민, 대학생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이 나라사랑채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것은 공공임대주택 물량의 30%까지는 자치구가 공급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대문구는 이를 활용해 독립·민주 유공자를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이날 입주식에 참석한 변창흠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도 “나라사랑채를 10호까지라도 지원해 서대문구가 독립·민주 성지가 되도록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독립 유공자나 후손들은 생활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독립·국가 유공자나 그 유족 중 1850세대가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 광복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월소득이 100만원이 안 되는 비율이 독립 유공자는 23%, 독립 유공자의 자녀 세대는 25.3%, 손자 세대는 37.8%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공자 후손들에게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서대문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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