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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빵 드라마’의 흥행

등록 : 2017-08-24 14:23
‘깜짝 활약’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를 냈다는 뜻이다. 티브이에서도 그런 경우는 많다. ‘대타 배우’ ‘땜빵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전자는 드라마 섭외 상위 순위 사람들한테 다 거절당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는데 의외의 활약을 한 배우를 말하고, 후자는 준비 중이던 작품 일정이 늦춰져서 긴급 투입된 드라마가 화제를 모은 경우를 뜻한다.

방영 중인 <죽어야 사는 남자>(문화방송)가 바로 ‘땜빵 드라마’였다. 초호화 삶을 누리던 왕국의 백작이 딸을 찾으려고 한국에 와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군주-가면의 주인> 후속 작품이었던 <병원선> 제작이 연기되면서 급하게 투입됐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시놉시스와 초반 대본이 여러 방송사를 돌았고, 설정 자체가 너무 코믹해서인지 편성이 잘 안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가벼운 이야기가 무더운 여름에 통했다. 시청률 10%대를 유지하면서 수목드라마 1위다.

‘땜빵 드라마’의 반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6월 방영한 4부작 단막극 <백희가 돌아왔다>(한국방송2)는 <동네변호사 조들호> 후속작이었던 <뷰티풀 마인드> 제작이 늦춰지면서 긴급 편성됐다. 지난해 3월 방영한 <결혼계약>(문화방송)도 <옥중화>의 ‘땜빵’이었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단막극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평균 시청률 9.7%(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고, <결혼계약>도 평균 시청률 19.5%로 성공했다.

‘땜빵 드라마’들은 기대치가 낮으니 방송사의 간섭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창작 욕구를 마음껏 불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기대작에는 시도할 수 없는 파격적인 설정들이 ‘땜빵 드라마’에서는 자유롭다. 어차피 버리는 카드이니 잣대가 엄격하지 않은 것이다. 갑자기 편성되면서 상대적으로 섭외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한 얼굴을 투입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연기력 재평가도 이뤄진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강예원을 배우로서 재발견하게 했고, <결혼계약>은 유이를 멜로 배우로 떠오르게 했다.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도 코믹하고 독특한 최민수의 연기가 빛을 발하고 있다. <백희가 돌아왔다> 임상춘 작가는 최근 화제를 모은 <쌈, 마이웨이>를 썼다.

아이러니한 이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류 열풍 등으로 한국 드라마의 몸집이 커지면서 제작진의 어깨는 늘 무겁다. ‘실패하면 어떡할까’라는 생각에 안전한, 보편적인 선택을 한다. 도전이 줄어들었다. 새로운 시도는, 좋은 작품은 ‘땜빵 드라마’를 대하듯 어깨를 짓누르지 않아야 나온다.

남지은 <한겨레> 문화부 대중문화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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