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에너지제로주택 실증단지의 이명주 연구단장(분홍색 상의)과 실증단지 공사 관계자들이 목업 주택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패시브하우스 기술이 적용된 목업 주택은 에너지 절약에서 탁월한 효율성을 보였다.
정말일까?
무심코 읽던 신문 기사 한줄에 눈길이 꽂혔다. ‘온종일 에어컨을 한달 내내 틀어도 전기료가 5만원.' 서울 노원구에 건설 중인 에너지제로주택(이지하우스·EZ HOUSE) 실증단지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연일 수은주가 30도를 웃돌아도 에어컨 틀기가 겁나는 보통 사람들에겐 무척 흥미로운 소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능하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지난 4일 지하철 7호선 하계역 근처의 실증단지 현장을 찾았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실증단지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7층짜리 아파트형 공동주택 벽면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다. 가로 1m, 세로 1.6m 크기의 패널 58개가 101동(36가구)의 동쪽 벽면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다. 태양광 패널이라고 하면 건물 옥상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다. 물론 101동 옥상에도 패널이 설치돼 있다. 이응신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 교수는 “아파트, 연립주택, 땅콩주택, 2층 단독주택 등 121가구가 살게 될 실증단지에 1000개가 훨씬 넘는 패널이 설치된다”고 밝혔다.
에어컨 전기료의 궁금증을 풀어줄 목업(mock-up) 주택은 단지 옆 골마루공원에 있다. 목업 주택은 실물 크기로 만든 실험 주택을 이르는데, 현재 홍보관으로 쓰이는 59㎡ 규모의 2층 단독주택이다. 목업 주택에서 이 교수가 흥미로운 데이터를 보여준다. 지난해 7월 한달 동안 목업 주택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에어컨을 틀어 실내온도를 25℃로 유지한 결과, 233㎾h(킬로와트시)의 에너지를 사용해 5만원의 전기료가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 에너지 통계를 확인했더니, 같은 크기의 일반 2층 단독주택에선 하루 내내 25℃를 유지하는 데 700㎾h가 사용돼 36만4000원이 든 것으로 분석됐다. 에너지는 66%, 전기료는 86%나 절감한 것이다.
지난해 8월엔 목업 주택을 25℃로 유지하는 데 341㎾h의 전기를 사용해 9만2000원이 들었다. 반면 일반 2층 단독주택이라면 1050㎾h의 전기를 써 64만7000원이 든 것으로 계산됐다. 에너지는 67%, 냉방비는 86% 아낀 것이다.
냉방뿐이 아니다. 2015년 12월 한달 내내 목업 주택의 실내온도를 20~22℃로 유지했을 때 난방(급탕과 취사 제외)에 360㎾h(2만5000원)의 에너지가 들었다. 하지만 일반 2층 단독주택에선 2800㎾h(20만원)가 필요한 것으로 나왔다. 목업 주택의 탁월한 효율성을 보여준 셈이다.
이런 차이에 대해 이명주 제로에너지 주택 실증단지 연구단장(명지대 건축대학 교수)은 “목업 주택이 독일 수준의 패시브하우스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목업 주택에서 확인한 새로운 기술과 시도들이 실증단지 전체에 그대로 적용됐다”고 설명한다. 패시브하우스는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설계와 시공이 이뤄진 주택을 말한다. 제대로 만들어지면 냉난방 에너지 요구량을 최대 80~90%까지 줄이며, 늘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노원구 하계동에 짓고 있는 에너지제로주택 실증단지 모습. 오른쪽 건물이 목업 주택.
실증단지에 적용된 패시브하우스 기술로는 ‘외단열’이 첫째로 꼽힌다. 대부분의 공동주택은 단열재를 콘크리트 벽 안쪽에 붙이는 ‘내단열’ 방식을 쓰는데, 실증단지는 반대로 외부에 부착했다. 이 단장은 “국내 아파트는 거실 외벽에 통상 11.5㎝ 정도의 내단열을 하지만 실증단지 내 아파트는 22.5㎝ 두께의 외단열재를 썼다”며 “방수, 방습, 내화(불에 타지 않고 견딤) 등의 성능을 갖춘 국산 외단열 제품이 거의 없고, 자재비와 시공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국내 아파트들은 내단열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기밀(사방이 꽉 막혀 공기가 통하지 못하는 상태) 효과 유지를 위해 수축·팽창이 적은 자재를 쓰고, 베란다나 이음새 등에 틈새가 없도록 설계와 시공을 했다. 단열문과 3중 유리 창호 등을 사용해 에너지 손실도 막았다.
이런 패시브 설계 요소기술을 통해 실증단지는 연간 5대 최종 에너지(난방, 냉방, 온수, 환기, 조명) 소요량을 61% 줄일 것이라고 이명주 교수는 예측했다. 동일 규모의 주택단지(2015년 기준)는 평균 124만9453㎾h가 필요한데, 실증단지는 연간 48만9509㎾h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그래픽 참조)
여기에 고효율 설비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실증단지 전체 에너지 요구량(48만9509㎾h)에서 다시 45%를 더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실내 공기를 외부로 배출할 때 열에너지 보존과 함께 공기 질을 확보할 수 있는 열 회수 환기장치를 국내 최초로 아파트형 공동주택에 동별로 설치했다.
한 걸음 나아가 실증단지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단지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설비가 연간 40만7503㎾h의 전기를 만들어내고, 지열 히트펌프 시스템을 이용해 연간 36만7921㎾h의 열에너지를 생산할 예정이다. 직경 15㎝ 크기의 U자형 관 48개를 지하주차장 등에 160m 깊이로 묻고 이 관에 열 교환 매체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처럼 한편으로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고, 한편으로 에너지를 생산한 결과 실증단지는 건축물 5대 에너지 요구량을 모두 충족하고 되레 연간 49만6845㎾h의 에너지를 남기게 된다고 연구단은 예측했다. 이명주 교수는 “남는 에너지는 각 세대에 보내 가전 에너지 등으로 사용하고, 부대시설이나 공동시설 등의 에너지로도 쓸 방침”이라고 말했다. 5대 에너지를 기준으로 보면, 에너지제로가 아니라 ‘에너지플러스’인 셈이다.
이 실증단지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노원구, 명지대가 2013년부터 시작한 공동 프로젝트다. 노원구가 하계동 1만7652㎡(5349평)의 터를 댔고, 총 442억원(현물 60억원 포함)의 사업비가 공동투자됐다. 다음 달에 단지가 완공될 예정이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실증단지가 준공되면 노원구에 영국 런던의 베드제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주거단지와 같은 세계적인 환경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체험할 수 있는 에코 빌리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원구는 121가구 중 117가구를 행복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하고 지난달 입주자를 공모했다. 입주 대상은 신혼부부, 고령자, 산업단지 노동자이며, 공공임대주택이라 주변 시세보다 임대료가 저렴하다. 예비 입주대상자 선정 결과는 10월에 발표된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제기되는 궁금증 하나. 에너지제로주택의 취지에 백번 공감하더라도 너무 비용이 많이 들면 소용없는 것 아닐까? 제로에너지주택 프로젝트의 예산 442억원 가운데 실증단지 마련에 들어간 돈은 308억원(2015년 서울시 계약심사 기준)이라고 이 단장은 밝혔다. 주민 커뮤니티 공간, 상가, 홍보관 건설과 인증·모니터링 비용을 제외하고, 121가구 주택의 공사비용은 246억원이다. 일반 공사비가 190억원이며 패시브 설계기술과 고효율 설비기술 37억원 재생가능 에너지 19억원 등이다. 그 밖의 예산은 설계, 건설관리 등 구축지원 비용과 연구개발 (R&D), 성능 검증·운영 관리, 교육·전시 등에 쓰인다고 한다.
이 단장은 “서울도시주택공사(SH)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짓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건설비용보다 30% 정도 더 들어가는 셈”이라며 “앞으로 기술 개발과 자재 국산화 등을 통해 초과비용을 계속 낮춰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건설비용이 30%가량 초과하는 것은 경제성 측면에서 좋은 게 아니다. 에너지 성능 등을 강화하며 10%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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