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친정 큰언니 노릇, 공무원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일”

정릉아동보건지소 이미선 주무관

등록 : 2017-08-31 15:37
보건소 프로그램 5분 만에 참가 마감

강사와 함께 아기띠 라인댄스 개발

포털사이트 운영에도 공들여

두 딸 키운 경험 살려 엄마들과 소통

8월25일 오전 정릉아동보건지소의 놀이 공간에서 이미선 주무관이 ‘오감발달 음악놀이’에 참여한 권경미씨와 딸 은재양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성북구 제공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강주희(28)씨는 지난해 12월 첫아들 정현이를 낳았다. 산후조리원에서 사귄 친구가 정릉에 아동전용 보건지소가 올 2월 말 문을 연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강씨는 정현이 백일을 넘기자마자 보건지소의 포털사이트 카페에 가입했다. 베이비마사지, 모유 수유 클리닉으로 시작해서 아기띠 라인댄스, 전통놀이 육아, 우리 아이 건강이유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신청해 참가했다. “모유 수유 고민도 나눌 수 있고 안전교육, 이유식, 놀이 프로그램은 아이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강씨는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엄마들과 모임을 만들어 보건지소의 커뮤니티룸도 이용했다. 수업이 끝난 뒤 엄마들이 모여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집에만 있으면 너무 답답하잖아요. 아동전용 보건지소로 거의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해요. 정말 즐거워요”라며 ‘전국 최초 아동친화도시’ 성북구에 사는 육아맘의 행복을 전한다.

정릉아동보건지소 프로그램은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입소문이 나 매달 온라인 카페 참가 신청이 5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보건지소 개관 때부터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하는 이미선(37) 주무관은 “하루 이용자가 80명이 넘을 정도로 반응이 좋아 보람도 느끼고 힘이 난다”고 말한다. 지난 1월 정릉아동보건지소로 발령받았을 때 참 난감했다고 한다. “뭐든지 새로 시작해야 해 힘들기도 하고, 전국 최초의 아동전용 보건소라고 해 관심이 쏟아져 어깨가 무척 무거웠어요.”


이 주무관은 9살, 5살 두 딸을 키우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첫애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겪었는데 친언니가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언니와 만나 수다도 떨고 육아 정보도 나누면서 다시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건지소를 ‘친정’ 같은 곳으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아이들 성장 단계에 맞춰 태아기, 영아기, 유아기로 나눠 프로그램을 만들고, 엄마와 아이가 건강 생활습관을 배워 집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걸 목표로 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가 건강하다는 생각에서 아기띠 라인댄스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도 강사들과 협의해 만들었다. 아기띠 라인댄스 강좌에선 엄마가 아기를 띠에 앉혀 메고 가볍게 앞뒤로 움직이는 동작을 주로 한다. 강좌 기획 때 강사가 직접 자신의 반려견을 안고 시험해 아기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볼 정도로 신중을 기했다. 실제로 수업이 끝날 때쯤 아기띠에 매달린 채 엄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기들도 꽤 있다.

정릉아동보건지소는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잠깐이라도 바람 쐬며 쉴 수 있는 공간과 서로 의지하며 지낼 육아 친구가 있도록 자리도 마련했다. 보건지소는 70여평으로 넓지 않아 회의실을 커뮤니티룸으로 바꿨다. 3명 이상의 엄마가 모여 모임을 만들어 사전예약만 하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좌탁 의자(다리 없는 의자)를 넣어 아기들과 함께 집에서처럼 편하게 엄마들이 얘기를 나눌 수 있다.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요즘,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어 인기가 많아요.”

이 주무관은 포털사이트 카페 운영에도 공을 들인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익숙한 젊은 엄마들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밤새우면서 카페 방에서 응원 글도 쓰고 상담도 하고, 보건지소 오기 힘든 직장맘을 위한 정보도 올립니다. 엄마들 마음을 읽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싶은 마음에 제 닉네임은 ‘보건지소 친정언니’예요.” 온라인 카페 회원 수는 현재 1300명에 이른다.

아동전용 보건지소의 인기에는 원활한 소통이 큰 몫을 한다.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시로 살펴 반영한다. 커뮤니티룸 이용 시간인 2시간이 짧다고 해 1시간 더 늘렸다. 지난 7, 8월 무더위 때에는 한낮에 있는 프로그램 시간을 서너시로 늦췄다. 무료 강좌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신규 신청자 먼저 받고, 중복 신청자는 대기순번을 받는다. 이용자들도 이런 점을 가장 마음에 들어한다.

이 주무관은 요즘 아침에 눈 뜨면 밤새 올라온 온라인 카페 글부터 읽는다. 감사와 응원의 글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처음에 서먹서먹해하며 외톨이로 프로그램에만 참석하던 엄마들이 엄마모임 활동도 하며 밝게 변해가는 모습에 보람도 느낀단다. 이 주무관은 “간호직 공무원 생활 14년에 지금 가장 즐겁고 재미나게 일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2017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