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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대부업의 디지털 범죄, 꼼짝 마”

지자체 최초 ‘디지털 포렌식 센터’ 연 강필영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장

등록 : 2017-08-31 16:49
스마트폰 문자 등 증거 복구·추출

검·경과 수사 전산시스템 공조도

수사기관 이전에 ‘특사경’ 정책기관

사명감 갖고 새로운 도전 계속

강필영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장이 지난 8월24일 중구 예장동 서울시청 남산별관 3층에 있는 ‘디지털 포렌식 센터’에서 디지털 증거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스마트폰은 현대 수사에서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함께 핵심 증거자료로 꼽힌다. 특히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민사경)이 주력하고 있는 불법 대부업 등 민생침해범죄는 피의자가 거래한 사람들과 주고받은 문자나 메시지를 확보하는 게 필수다. 그러나 중요한 문자는 대부분 지워진 상태라 원본 그대로 복구할 수 있느냐가 수사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게 된다.

서울시 민사경은 지난 8월22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스마트폰의 자료는 물론이고 컴퓨터(태블릿 포함)와 각종 디지털 기기에서 삭제된 자료를 원 상태로 복구·추출할 수 있는 ‘디지털 포렌식 센터’를 열었다. 강필영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장은 “지속적인 수사기법 개발과 전문수사 인력 양성을 통해 정보화 시대의 스마트 환경에 걸맞은 범죄 대응 능력을 확보해 다른 지자체의 특별사법경찰 수사 업무까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말이 무척 낯설다. 무슨 뜻인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우리가 평소 스마트폰이나 유에스비(USB) 드라이브를 사용하면서 썼다 지우기를 얼마나 자주 반복하느냐. 그걸 복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최신 스마트폰일수록 메모리가 커지면서 복구가 까다롭다. 하드디스크보다 더 어렵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마다 복구 방법이 다르고, 안드로이드는 버전마다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래서 신제품이 출시되면 그걸 입수해서 그에 맞는 복구 방법을 연구하는 게 일이다.”

전문 인력이 있나?

“올 상반기에 수사관 2명이 대검찰청이 주관하는 ‘디지털 포렌식 수사관 양성 전문교육’을 3개월 동안 이수했다. 이 과정을 이수한 지자체는 서울시가 처음이다. 디지털 포렌식뿐 아니라 수사관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년마다 부서를 옮기는 ‘순환 보직’으로는 전문성이 쌓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3년 동안 근무할 수 있게 바꾸려고 한다. 10년 이상 근무한 ‘수사전문관’도 현재 10명에서 20명으로 늘려 전문성을 강화할 예정이다.”

디지털 자료를 복구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얼마 전 업무용 유에스비를 시범적으로 복원한 적이 있는데 7시간이나 걸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무려 1500개가 넘는 파일이 원래 파일명은 사라지고 일련번호만 매겨진 상태였다. 그걸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원하는 문서를 찾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복원한 파일들 속에서 범죄의 증거를 찾아내는 게 거의 막노동 수준이다.”

디지털 포렌식 센터가 생겨 좋아진 점은 무엇인가?

“복구가 훨씬 빨라졌다. 예전에는 자체 장비가 없어 대검찰청에서 빌려서 하드디스크 복원에 사용했고, 스마트폰은 거의 할 수 없었다. 이제는 디지털데이터 분석 서버와 포렌식 소프트웨어, 디스크 복제기 등을 갖춰 자체적으로 가능해졌다. 또 센터 안에 참관실도 만들어 피의자나 변호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증거자료 수집과 분석이 이뤄짐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자료 복구 과정에 피의자의 참관이 왜 필요한가?

“지난해 5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디지털 자료도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변조가 쉬운 만큼 수사 과정에서 조작될 수 있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해졌다. 증거의 동일성과 무결성을 담보해야 한다. 분석에 성공한 디지털 자료를 검찰에 송치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유에스비에 담아 직접 전달했는데 그 과정에서 조작이나 분실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대검찰청의 협조로 지난 7월부터 ‘국가 디지털증거 송부 시스템’을 설치해 증거자료를 온라인으로 전송할 수 있게 됐다.”

지난 5월부터 경찰청으로부터 ‘범죄수사자료 온라인 조회’ 단말기도 받았다고 들었다.

“피의자를 심문하려면 범죄 경력을 알아야 하는데, 서울시 민사경에는 조회할 단말기가 없어 담당자가 경찰서를 오가며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범죄 경력 조회가 2000건이 넘고 직원이 115명이나 되는 큰 조직인데,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그래서 경찰청에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더니 선뜻 해줬다. 지금은 경찰서를 방문하지 않고도 조회할 수 있어 행정력 낭비가 없어졌다. 대검찰청과 경찰청 두 기관에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서울시 민사경은 2008년 출범한 지자체 최초의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조직이다. 책임감이 클 것 같다.

“지금은 ‘특사경 특수 시대’인 것 같다. 급식, 애완견, 부동산 등 사회문제가 터질 때마다 지자체에서 특사경을 만든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특사경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서울시 특사경이 실증적인 롤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 민사경은 수사기관이기 전에 특사경 정책기관이라는 사명감으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나가겠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