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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소셜벤처 사장의 촛불램프, 전기 없는 세상을 비췄다

개발도상국 주민 도우며 글로벌 조명 브랜드 꿈꾸는 박제환 루미르 대표

등록 : 2017-09-07 13:24
촛불에 램프 씌워 원래 빛보다

60배 밝은 LED 조명 개발

제품 수명 5만 시간으로 반영구적

“양적인 성과 평가 아쉬워”

루미르는 촛불 등으로 최대 60배 밝은 엘이디 조명 제품을 개발한 소셜벤처다. 선진국 시장 모델(오른쪽)에서 거둔 이익으로 전기가 부족한 개발도상국 주민들에게 램프(왼쪽)를 더 많이 보급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루미르 제공

박제환(29) 루미르 대표는 어린 나이에 ‘사장’이 됐다. 루미르는 촛불램프를 개발해 제작하는 소셜벤처다. 회사 이름 루미르는 ‘세상을 밝힌다'라는 뜻이다. 박 대표는 개발도상국(개도국)의 전기 부족 문제를 풀며, 빛 이상의 가치를 전하는 글로벌 조명 브랜드를 꿈꾸고 있다.

2014년 인도 여행을 다녀온 뒤 박 대표는 전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구촌 사람들이 무려 13억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등 대신 촛불이나 등유 램프를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고민했다. 대학에서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하는 그는 촛불로만 작동하는 발광다이오드(LED) 램프 ‘루미르C(candle, 양초)’를 개발했다. 촛불에 램프를 씌워 원래 빛보다 최대 60배 밝은 엘이디 조명을 작동하게 하는 제품이다. 박 대표는 “촛불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빛이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제품 수명은 5만 시간으로 반영구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동남아의 여러 현장을 탐방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두 가지 모델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개도국 시장에는 현지 상황에 맞춰 부담 없이 구할 수 있는 폐식용유를 연료로 하는 램프 ‘루미르K’, 선진국 시장에는 깔끔한 디자인에 친환경 램프 ‘루미르S’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선진국 시장에서 나오는 수익을 활용해 개도국 시장에서 램프를 더 싸게 보급하려 한다.


제품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이다. 지난 6개월간 국제 엔지오(NGO)와 협력사업으로 ‘루미르K’ 시제품을 만들어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 100가구에 나눠줬는데, 만족도가 90% 넘게 나타났다. ‘루미르C’는 세계 최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13만달러(1억6000만원가량)를 모금해 사전 주문을 받았다. 박 대표는 “제품의 독창성과 기능성,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소셜벤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로 사회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창업한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이다. 돈을 버는 과정 그 자체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박 대표도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현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 지향이란 점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인증하는 ‘사회적기업’과, 혁신·모험이라는 점에서는 ‘벤처기업’과 교집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셜벤처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한 민간투자기관이 서울대 등 일부 대학들과 함께 소셜벤처대회를 열었는데, 함께일하는재단(옛 실업극복국민재단)이 대회 규모를 키워 2년간 운영했다. 그 뒤 고용노동부의 소셜벤처 경연대회로 이어졌다.

당시 함께일하는재단에서 이 업무를 총괄했던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청년실업 대책을 세워야 했고, 막 시작한 사회적기업 정책을 국민에게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미래세대 잠재 풀을 넓혀야 했다”고 추진 배경을 전했다. 2012년 이후에는 현대차 등 민간기업들이 ‘씨즈’ 등 비영리기관들과 청년 소셜벤처 아이디어팀들의 창업 지원에 잇따라 나섰다.

지난 5년간 소셜벤처의 사업 주체나 모델에도 변화가 있었다. 소셜벤처 창업에 나서는 주체들이 다양해졌다. 기존에는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이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지방 청년들의 참여가 점점 늘고 있다. 사업 모델도 초기에는 외국 소셜벤처 모델의 모방 사업들과, 앱을 만들어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사업이 많았다면, 최근엔 공유경제, 플랫폼 사업을 내세운 소셜벤처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 센터장은 “자연스러운 변화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회를 끌어내면서 사라져가는 일자리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영역들이 같이 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청년 소셜벤처 사업가들은 고민이 많다. 김가영(32) 대표는 도농 직거래 사업을 펼치는 ‘생생농업유통’의 창업자다. 그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제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 때 소셜벤처를 창업해 10년째 꾸려오고 있다. 김 대표는 그간의 성과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10년 동안 농업, 먹거리, 농촌의 고령화 등에 대해 사회의 관심을 끌어낸 점은 성공이고, 더 많은 일자리와 수익을 내는 점에선 실패했다. 여전히 일자리를 더 만들고,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창업 3년 차인 루미르 박 대표는 소셜벤처에 대한 국내의 평가 잣대에 대해 아쉬워한다. “국내, 아시아, 글로벌 소셜벤처 대회를 골고루 참석해보면서 안팎의 소셜벤처 개념에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사회적 가치 측면이 강조돼, 취약계층에 얼마나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적 혜택을 줬는지 양적인 성과를 중시한다는 것. 이에 견줘 외국에서는 벤처기업의 측면을 중시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업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탄탄한 수익 모델을 갖췄는지를 본단다. 박 대표는 “소셜벤처가 지속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도록 판로 개척 등의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