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애정 어린 비판도 때론 숙성의 시간이 필요

인생의 ‘똑똑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등록 : 2017-09-14 14:00
토론회 때 살짝 거론한 비판이

창으로 되돌아올 때 당혹감

인정욕구도 지나치면 병

유대감 깊어지길 기다리는 게 현명

‘옥시모론’(Oxymoron)이란 표현 들어보셨나요?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의 소리’ ‘어두운 빛’처럼 서로 반대되는 단어를 배치해 특정한 상황을 더욱 강조하거나 읽는 독자의 관심을 끄는 문학적 기법을 말합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모순어법’입니다. ‘쓸수록 번다’라는 카드 회사의 카피 문구처럼 광고에서도 가끔 쓰입니다. 서양에서는 카페나 식당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그만큼 이 시대는 상호 모순되는 생각과 행동이 지배한다는 증거겠지요. 하지만 가끔 그런 모순적 생각이 지나쳐 주변을 괴롭히는 상황으로 만들 때도 없지 않습니다.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다가 혹독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30대 여성의 사연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약 두달 정도 강좌를 들은 뒤, 각자 글을 써서 참가자들 앞에서 합평회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석자 가운데 상담자가 ‘왕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지낸 분의 글을 합평할 차례가 되었는데, ‘왕언니’는 활달한 성격에다 명문대학 출신으로 아는 것도 많아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분이었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느낌과 의견을 말하는 순서가 찾아왔습니다.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 낯 뜨거운 칭찬과 공치사를 주로 늘어놓았지만, 실제로는 글을 꼼꼼히 읽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그 왕언니는 상담자를 지목하며 “다른 분들의 애정 공세가 심하니 이제는 진정한 애정으로 예리한 비평을 해달라”고 했다 합니다. 상담자는 먼저 잘된 것을 주로 언급한 뒤, 발언을 끝맺기 전 특정한 문장과 글의 결말이 조금 아쉬워 보였다고 살짝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지적하고 싶은 것의 10분의 1정도만 말할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전혀 예상치 못한 그 언니의 반응이었습니다.

“참 많이 아시는군요?”


똑 쏘아붙이더니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합니다. 늘 옆자리에 앉아 있기에 자매간 아니냐는 농담을 들을 정도였지만, 그 이후 상담자는 왕언니와 말을 섞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몇번이나 다가가서 설명하고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지만 얼음장 같은 차가움만이 되돌아왔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군대에서 ‘소원 수리’를 잘못했다가 얼차려 당한 경험, 직장 초년병 시절 사장님이나 본부장님이 주재하는 모임에서 ‘청년의 기백으로 회사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얘기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했다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전설 같은 일화들을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조직의 소통 부재가 문제라고 하면서 정작 그 문제점의 당사자가 리더 자신이라는 것은 모릅니다. 그리고 애써 다른 데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이란 기실 자기의 얘기를 들어줄 일방적 통로였던 것입니다. 아랫사람이나 상대방이 전하려고 하는 언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애정 없는 사랑고백’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모순어법 인생인 셈입니다. 들을 준비가 조금도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 ‘애정 어린 비판’을 조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순어법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는 ‘열등한 우월감’입니다. 그 왕언니는 늘 자신이 모임을 지배하고 관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우월감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지배욕구 한편으로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인정받기를 원하는 인정욕구 역시 강한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받고, 모임에 가면 인기가 있는 사람 가운데 의외로 인정욕구 중독자들이 있습니다. 적절한 인정욕구는 발전의 좋은 동기로 작용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병이 됩니다. 어느 때나 어디서든 인정을 받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큼 괴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장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무대 증후군’을 앓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연예계, 방송사 등에서 종종 목격하는 일종의 ‘스타병’이라는 겁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왕자병’ ‘공주병’에 걸려 있습니다. 나이를 먹고, 덩치가 커졌지만 ‘우쭈쭈, 우쭈쭈’ 하면서 자신의 응석을 받아주길 원하는 거죠.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를 열심히 왕복달리기합니다. 정치인, 경영자, 지식인들이 특히 심하지만 일반인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평소 가깝다고 생각했던 후배의 가벼운 코멘트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보면, 그 왕언니 역시 그중 한명인 듯싶습니다. 내면에 뭔가 결핍이 가득해, 열등감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겠죠. 우월감에 상처를 입었고, 자신의 지배에 대한 항거로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친구와 팔로워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끔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런 성향을 가진 분들에게는 예리함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우정 어린 코멘트를 공격이나 자신을 무안하게 만들 의도로 오독합니다. 사랑과 애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조언은 무력합니다. 오히려 적을 만들기도 합니다. 토론회에서 승자가 될수록 인간관계에서는 패자가 되는 이치입니다. 인생의 ‘똑똑 바보’들이죠.

사람 관계에는 때가 있습니다. 장이나 술을 담글 때도 발효 시간이 필요하듯 정서적인 깊은 유대감이 형성될 때까지 또는 두터운 신뢰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관계마다 그 시간 길이는 다릅니다. 과장된 표현에 주의해야 합니다. ‘형 동생 사이로 지내자’ ‘우리 오늘부터 말 놓고 친구로 지내자’는 사람일수록 빨리 헤어지는 이유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기의 유무입니다. ‘친구랑 빨리 헤어지고 싶다면, 솔직하게 다 말해줘라’는 서양 격언이 있는 이유입니다. 비판하고 싶은 욕구를 잠시 누르고 기다려주는 것이 현명합니다. 뭔가 애정 어린 비판을 원한다면, 한번 더 침을 삼키고 기다리세요. 적절한 때가 올 겁니다.

글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 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