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석의 좋은 건축 나쁜 건축 이상한 건축
시인을 닮은 섬세한 고뇌의 흔적 드러낸 건축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
등록 : 2017-09-14 15:31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시인
용도 폐기된 콘크리트 구조물과
물탱크 2개를 과감하게 재활용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버려
올해는 윤동주(1917년 12월30일~1945년 2월16일) 시인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1955년에 시인의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발행한 증보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시)>를, 지난해에 원본 그대로 본떠 만든 책을 선물 받고 한동안 설레고 기뻤던 기억이 난다. 오늘 다시 시집을 펼쳐 보니 ‘서시’ 위로 시인의 고요한 눈매가 겹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수도가압장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개조 후쿠오카의 옥에서 숨을 거둘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조용히 세상을 성찰하던, 고운 심상을 지닌 푸른빛의 스물일곱 청년이었다. 오늘의 27살이라면 가벼운 하루하루의 일상에 울고 웃거나, 현실의 무게에 매몰된 꿈을 부여잡고 허덕이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가 그리도 험난했던 여정을 무서운 집념과 온화한 용기로 깊디깊은 발자국을 새기며 한걸음 한걸음 걷다 외마디 비명으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새삼 가슴 저민다. 건축가는 영원을 꿈꾸지만 건축물은 시간 앞에 무력하다. 건물은 낡고 흉해지고 무거운 몸으로 새로운 기술과 기능적 요구의 잰 뜀박질을 따르지 못한다. 하지만 상처를 만져주고 새로운 기능이 가능하도록 살펴주면 건물의 쓸모는 훨씬 더 오래 지속되고 공간이 시간을 품어 그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요즈음 들어 낡은 건물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사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은 지구를 위해서도, 우리네 살림이나 우리 곁에 남겨질 이야기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종로구도 윤동주 시인이 얼마간 기거했던 지역 인근의 고개에 버려진 수도가압장을 시인의 생과 문학을 기리는 문학관으로 개조하는 박수 받을 일을 벌였다. 수도가압장이라는 것은 높은 지대로 오르며 약해진 수돗물의 압력을 다시 높여 지역에 공급하는 일을 하는 시설이다. 1970년대에 지은 주거시설들이 철거되어 사라지자 수압을 제공하던 가압장도 함께 쓸모를 다했고 그 후로는 마냥 잊힌 채 버려져 있었다. 뭐하던 건물인지 있는 듯 없는 듯 모퉁이에 놓여 있던 작고 낡은 가압장 시설이 흙 속의 돌멩이를 의미 있게 깎아낸 건축가의 노력과 소중한 자료 제공자인 시인의 조카 윤인석 교수의 도움에 힘입어 2012년에 윤동주 문학관으로 되살아났다.
시인의 삶을 따라간 제1전시실
윤동주 문학관은 서울이 한눈에 펼쳐지고, 세워놓은 송곳 같은 롯데타워까지 멀리 보이는 고갯길에 면해 있다. 용도 폐기된 철근 콘크리트조의 수도가압장과 그 옆에 딸린 물탱크 2개를 개축한 것이니, 워낙에 규모도 작고 용도도 달라 전시장이나 박물관 기능을 함께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기념관으로 쓰기에는 애초에 어림도 없었다.
짙은 회색 파석 기단 위에 하얗게 놓인, 도로에서 처음 손님을 맞는 건물이 가압장을 개축한 제1전시실이다. 안내 데스크와 화장실 등의 기능적인 입구부에서 한켠에 가압장의 파이프가 기둥처럼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전시실이 바로 모습을 나타낸다. 시인의 친필 원고들과 시집들이 가지런히 벽과 전시대를 지키고 있다. 이 전시실에서 눈길을 끄는 전시물은 한가운데 놓인, 시인의 본가에서 가져왔다는 나무로 된 우물이다. 그 우물을 둘러싼 투명한 케이스에 쓰인 시 ‘자화상’이 중첩되어 보인다. 제1전시실은 시인의 물적 증거들을 짚고 만지며 그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는 방이다.
문학관 성격 잘 살린 제2·3전시실
윤동주 문학관의 독특한 성격을 가장 잘 정의하는 건축적 장치는 가압장 곁의 물탱크 두개를 개조한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이다. 이들은 55㎡의 크지 않은 면적에 비해 물탱크 구실을 하느라 층고가 7m나 되는 직사각형의 깊은 콘크리트 박스이다. 두 탱크를 가르는 가운데 벽 꼭대기에는 각각의 물탱크로 내려가는 작은 점검구와 아래로 이어지는 철제 사다리가 하나씩 있다. 건축가는 이 콘크리트 물탱크 중 하나는 지붕을 완전히 터내서 빛이 가득한 외부 공간으로, 다른 하나는 깊은 어둠을 그대로 간직한 내부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들을 ‘열린 우물, 닫힌 우물’이라 한다. ‘자화상’에서 언급된 자신을 들여다보는 우물이 모티브가 된 것이다.
열린 우물(제2전시실)에서 올려다보는 파란 가을 하늘은 시인이 닦아놓은 거울인 듯 서글프게 맑았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선 닫힌 우물(3전시실)은 출구 없이 막막하던 무서운 고독과 슬픔이 내린 형무소 방을 닮았고, 높은 천장 구석의 작은 구멍으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을 희망처럼 보였다. 벽을 따라 놓인 경사로, 바닥의 깬 자갈과 웃자란 풀, 남겨진 개구부에 매달린 녹슨 사다리, 벽에 붙은 물때의 흔적까지…. 이 모든 장치들이 시인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으면서도 마치 생전의 그를 안다는 듯 제자리를 지키며 그저 시인의 심상을 대변하고 있다.
주말이면 혼잡스런 동선은 아쉬워
아쉬운 점은 관람객의 입장 반영이 부족한 기능적 문제에 있다. 입구에서 시작해서 순서대로 제1전시관-열린 우물-닫힌 우물로 진행되는 입장 동선은 닫힌 우물에서 관람을 끝내고 반대순으로 되돌아나오는 퇴장 동선과 그대로 겹친다. 평일 오전 혼자 이곳을 찾은 이는 조용히 시인의 정신세계로 초대받는 행운을 만끽할 수도 있겠지만, 주말에 단체 학생 관람객에 등산객들에 어린이들까지 겹치는 시간이면…. 간결해지려던 의도의 동선이 중복되면서 고요히 시인의 내부로 젖어들어야 할 공간이 소란스럽고 번잡한 움직임과 부딪침 가득한 장터가 된다. 아무래도 공간 흐름의 클라이맥스인 닫힌 우물에서 여행을 마친 관람객을 바로 내보내는 출구가 마련되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래야 용도 불분명한 도로 쪽의 삼각형 데크도 제 몫을 하지 않을까?
워싱턴, 베트남 참전 기념관 연상케 해
이 건물은 1980년대 초반 워싱턴에 세운 ‘베트남 참전 기념관’을 생각나게 한다. 디자인 공모에는 엄청난 크기의 전투병 조각상이나 철모 모양의 건물, 공원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성조기 등 즉물적인 형태와 정치적 주장을 담은 1400여 안이 참가했다. 그중 한 조각의 과장된 구호나 제스처도 없는 20대 여학생 마야 린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당선작은 방문자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치는 검은 대리석 벽 위로 새겨진 전사자의 이름만으로도 전몰자를 기리고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며 화해를 이끌어낸다.
건축물의 가치는 근사한 디자인 개념이나 주장이 아닌, 그 개념이 표현된 실제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다. 건축가 자신의 수사만 가득한 요란한 빈 깡통 같은 건축물들이 그득한 요즘, 윤동주 문학관은 적은 예산에도 무거운 주제를 번잡하지 않은 감정으로 정리해냈다. 지울 것과 남길 것을 결정하는 데 섬세한 고뇌의 흔적이 보인다.
건물 통해 시인의 이미지가 투사하는 공간
윤동주 문학관은 남겨진 흔적을 따라 우리가 시인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건물을 통해 시인의 이미지가 우리들 마음으로 투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을 둘러싼 공기가 우리 가슴 깊은 곳에 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고마움으로 녹아들어 혈관을 타고 돌며 우리 몸속에서 영원히 시인을 살게 한다.
그의 시에는 항상 쓸쓸한 부끄러움이 스민다. 이준익 감독의 흑백영화 <동주>(2016)에서 윤동주와 만나는 정지용은 계속해서 부끄럽다, 부끄럽다고 반복하다 겨우 말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게지.” 부끄러움은 그들을 희생하고도 여전한 흙탕물 속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몫이었다.
가신 지 오랜 시인의 아픔을 보듬고 쓰다듬을, 육첩방은 벗어난 말쑥한 거처가 마련되었으니 이제 여기서 마음 쉬는 화해의 악수를 하셨으면 좋겠다.
글·사진 안준석 공학박사·건축가(AIA)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위에서 찍은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전경
수도가압장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개조 후쿠오카의 옥에서 숨을 거둘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조용히 세상을 성찰하던, 고운 심상을 지닌 푸른빛의 스물일곱 청년이었다. 오늘의 27살이라면 가벼운 하루하루의 일상에 울고 웃거나, 현실의 무게에 매몰된 꿈을 부여잡고 허덕이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가 그리도 험난했던 여정을 무서운 집념과 온화한 용기로 깊디깊은 발자국을 새기며 한걸음 한걸음 걷다 외마디 비명으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새삼 가슴 저민다. 건축가는 영원을 꿈꾸지만 건축물은 시간 앞에 무력하다. 건물은 낡고 흉해지고 무거운 몸으로 새로운 기술과 기능적 요구의 잰 뜀박질을 따르지 못한다. 하지만 상처를 만져주고 새로운 기능이 가능하도록 살펴주면 건물의 쓸모는 훨씬 더 오래 지속되고 공간이 시간을 품어 그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요즈음 들어 낡은 건물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사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은 지구를 위해서도, 우리네 살림이나 우리 곁에 남겨질 이야기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종로구도 윤동주 시인이 얼마간 기거했던 지역 인근의 고개에 버려진 수도가압장을 시인의 생과 문학을 기리는 문학관으로 개조하는 박수 받을 일을 벌였다. 수도가압장이라는 것은 높은 지대로 오르며 약해진 수돗물의 압력을 다시 높여 지역에 공급하는 일을 하는 시설이다. 1970년대에 지은 주거시설들이 철거되어 사라지자 수압을 제공하던 가압장도 함께 쓸모를 다했고 그 후로는 마냥 잊힌 채 버려져 있었다. 뭐하던 건물인지 있는 듯 없는 듯 모퉁이에 놓여 있던 작고 낡은 가압장 시설이 흙 속의 돌멩이를 의미 있게 깎아낸 건축가의 노력과 소중한 자료 제공자인 시인의 조카 윤인석 교수의 도움에 힘입어 2012년에 윤동주 문학관으로 되살아났다.
가압장 파이프
나무로 된 우물
닫힌 우물(3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