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동네 서촌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서촌 사람에게 듣는 사라지는 ‘서촌다움’ 그리고 서촌의 변화로 찾아보는 ‘얻은 것과 잃은 것’

등록 : 2016-04-21 16:04
서촌의 한 골목. 오가는 누구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사는 마을 서촌은 사람들의 발길이 늘면서 사라지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사람 냄새를 간직한 오래된 동네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흔한 대형 마트도 학원도 없는 서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촌의 매력은 술집으로 채워지는 금천교 시장이나 늘어난 카페와 식당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집들과 꼬불꼬불 좁은 골목, 길가에 나와 앉은 화분들을 보면서 인왕산과 이어지는 수성동 계곡을 걷고, 통인시장에서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길을 잃기도 하다가 어느새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궁금해지는 곳이 서촌입니다.

서촌은 다녀가셨겠지만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서촌 사람들의 이야기는 못 들어 보셨을 겁니다.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저 지나치던 서촌의 골목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서촌의 변화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힌트가 되지 않을까요. 서촌 사람 소개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글·사진 이현정 도보여행사 마인드트립 대표

'세탁OK' 최점례씨

"젊은 사람들에겐 잘된 일이지"

효자동 24번지. 26년 동안 ‘세탁 OK’의 간판이 있던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간판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촌의 변화는 가장 먼저 세탁소, 미용실, 철물점 등 생활편의 가게들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주민이 고객인 탓에 여행객의 증가가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게들은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탁OK는 주인 부부의 성실함과 꼼꼼한 솜씨로 한때 청와대 세탁물들을 도맡아 처리했고, 동네 단골도 많았습니다. 일도 여행도 함께 했던 남편이 희귀암으로 투병하면서 세탁소는 부인 최점례(사진) 할머니가 지켰습니다. 곧 가게를 비울 처지인데도 할머니는 서촌의 변화를 젊은 사람들에게 잘된 일이라며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투병 중인 남편에게도 “하늘나라 안 가고 옆에서 지켜 주니 고맙다”던 할머니는 “나가라고 하니 나가야겠지만, 아직 일을 그만두기엔 너무 젊지?” 하셨어요. 그 말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픕니다.

2016년 3월에 다시 가 보니 세탁소는 내부 공사 중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같은 건물의 옆 가게가 올해 초 용역을 동원한 강제집행으로 이슈가 됐던 ‘파리바게트’ 효자점이었습니다.

'손만두분식' 이순자씨

"아직 집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천교 시장에서 7년째 ‘손만두분식’을 꾸려 온 이순자(사진) 씨도 가게를 비워야 합니다. 이순자씨는 61세에 금천교 시장에서 만둣집을 열었습니다. 처음 계약할 때 주인할머니는 기운 다할 때까지 걱정하지 말고 가게를 해 보라며 격려했다 합니다.  

손만두가 일본 잡지와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손님이 늘었지만 2015년 6월 건물주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새 건물주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대신 철거하는 사람과 변호사와 “나가라”는 문서가 왔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일하지 않았다면 집값이 이렇게 오를 수 있나요. 이런 내용을 담아 세번이나 주인에게 답장을 썼어요. 주인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 힘들었죠.” 나갈 때 나가더라도 주인이랑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주인은 연락이 없고 현재 이순자씨는 고소를 당한 상태입니다.  

“임대료 난민을 해결한 서촌 사람들”이라는 신문 보도(<중앙일보> 2015년 7월21일)가 있었지만, 이순자씨는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금천교 시장은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지난 4월 ‘상생 협약’으로 결실을 맺었다. 모든 세입자 240여 명과 건물주 40여 명이 참여해 ‘지나친 임대료 상승을 자제하자’는 협약을 체결했다.”가 보도의 내용이었습니다.

'아담집' 안동숙씨

"여기서 시작해서 여기서 끝나요"

올해 78살인 안동숙(사진)씨는 36년간 백반가게 ‘아담집’을 했습니다. 가게는 이름 그대로 아담합니다. 간판이 없고, 가게도 워낙 작아 지나치기 쉬운 집입니다.

한 신문에 가게가 소개되고 2년 정도 손님이 많이 와서 아주 바빴다고 합니다. 금천교 시장은 ‘세종마을 음식문화의 거리’로 간판이 바뀌었지만 장사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 밥 먹으러 통인시장으로 가요. 식당도 많이 생기고 사람들 입맛도 고급이 되니까 장사가 잘 안돼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덕에 단골이었던 공사장 인부들도 발길이 끊기고, 지인들과 함께 찾아 주던 동네 단골들도 동네를 뜨거나 나이가 많아 외출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내 나이도 많으니 이제 그만두려고 가게를 내놓았어요. 여기서 시작해서 여기서 끝나요.” 곧 가게 주인이 바뀌면 36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할머니의 밥은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됩니다.

'아톰부동산' 강만규씨

"기존 공방들은 거의 다 떠났어요"

서촌의 임대료는 수성동 계곡이 복원된 2012년부터 올랐습니다. ‘박노수 가옥’, ‘이상의 집’ 등이 공개되고, 통인시장의 ‘도시락 카페’가 화제를 모으며 ‘대오서점’, ‘영화루’ 같은 오래된 음식점이 입소문을 탔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서촌을 서촌답게 하던 여러 가게들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 있던 공방들은 거의 다 떠났어요. 통의동에서 15년 동안이나 장사하던 수제 액자집 ‘애화’도 익선동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빈티지 소품숍 ‘동양백화점’을 운영하다 ‘아톰부동산’을 운영하는 강만규(사진)씨의 설명입니다.  

애화의 김요셉 사장은 서촌 배경의 웹드라마 <서촌 일기>에 출연하기도 했던 서촌의 대표 인물 중 한분입니다. 서촌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던 공방들이 떠나고 그 자리를 카페나 옷가게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서촌을 서촌답게 하는 곳 10


주민을 위한 공간에서 방문객을 위한 공간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서촌이지만, 골목 구석구석을 느리게 걷다 보면 시간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있는 서촌다움을 만날 수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촌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금 무겁지요? 서촌을 찾는 사람 수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합니다. 북촌에서 서촌으로 이동한 상권이 익선동으로 넘어가고 있다 합니다. 상권이 죽은 지 오래인 이대 앞과 신촌의 모습이 서촌의 풍경과 겹칩니다. 도시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늘 있기 마련입니다. 지난 몇년 큰 변화를 겪은 서촌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도 있습니다. 인왕산 아래 오래된 동네 서촌은 여행지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커 가고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는 동네라는 것이지요.

서촌에 오시면 서촌 사람들의 사연도 한번 생각해 주세요. 여행지와 주거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날씨 좋은 날 서촌에서 뵙고 싶어 서촌을 서촌답게 하는 장소 10곳을 추천합니다.

1 황학정(黃鶴亭) (사직로9길 15-32)

고종의 명으로 1898년에 세운 황학정은 경희궁 북쪽에 있었지만 1922년 일제가 경희궁을 헐면서 지금 자리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벤치에 앉으면 양궁과는 다른 국궁을 즐기는 동호회원의 모습과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와 과녁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네칸으로 구성된 황학정 정자가 운치 있고, 주변 나무들도 아름답다. 화살이 날아다니므로 종로도서관 방향으로는 출입이 안 되고 인왕산 산책길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2 종로도서관(사직로9길 15-14)  

1920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도서관이다. 95년이라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이 많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물섬 같은 곳이다. 고문헌은 손으로 만져 볼 수는 없으나 데이터베이스화가 되어 있어 ‘종로도서관 고문헌 검색시스템’을 이용해 열람할 수 있다. 책을 보다 지치면 인근의 사직단과 인왕산 산책길로 나서면 좋다.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게 해 주는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3 환경운동연합의 앞마당 (종로구 필운대로 23) 

사직단에서 통인시장 쪽으로 필운대로를 걷다 보면 에코생활협동조합 매장이 나온다. 가게 옆으로 난 계단에 올라서면 예상치 못한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설립된 지 30여년이 된, 아시아 최대 규모의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의 마당이다. 단체의 마당이라 들어가도 되는지 쭈뼛거리게 되지만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도록 개방한 곳이다. 근처 유치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서촌만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배화여대 쪽문 골목

4 배화여대 쪽문 골목 (필운대로5길 19)

골목이 많은 서촌에서도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유난히 좁고 짧은 골목이다. 1920년대 서울에 들어서기 시작한 도시형 한옥과 일본인이 살던 적산가옥, 최근에 들어선 한옥 등 세월을 두고 지어진 여러 집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모여 있다. 세월의 간격을 두고 들어선 다양한 집들의 서로 다른 지붕과 벽, 처마를 보는 재미가 있다. 골목이 워낙 좁고 주민들이 사는 곳이니 골목에서는 목소리를 낮추는 게 예의다.    

5 딸기소보루 (필운대로5길 19-10)

배화여대 쪽문 골목에 최근에 생긴 점토 작업실. 공방의 위치를 알리는 골목 어귀의 안내판과 현관의 그림이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귀엽다. 한옥을 수리해 작업실로 쓰는데, 한달씩 예약제로 운영되며 일일교실도 연다. 기념일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알맞은 귀여운 점토 작업물을 직접 만들 수 있다. 블로그(http://ddalso.kr)에서 상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는 ‘딸기소보루’로 검색하면 나온다.    

6 옥인6가길 (옥인6가길 11)

인왕산 아랫마을 서촌은 막상 동네에 들어서면 집과 건물들에 가려 산과 마을을 보기 쉽지 않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옥인길을 벗어나 비탈진 옆골목으로 들어서면 비탈과 계단은 더욱 가팔라진다. 헉헉대며 올라가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탄성이 나올 만큼 시야가 탁 트인다. 서촌을 조망할 수 있는 옥인6가길이다. 종로의 빌딩숲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땀을 시원하게 식혀 준다. 오는 길에 만나게 되는 사람 사는 풍경은 덤이다.    

7 묘한 술책(옥인길 71)

수송동 계곡 아래의 레스토랑 겸 바. 자리 잡은 건물은 1920년대에 지어진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속 군수 공장 인부들의 기숙사로, 근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촘촘한 창문 하나하나마다 방이 하나씩 있었다고 하니 일제 때 인부들의 열악했던 처우를 짐작할 수 있다. 3층 중 2층에 자리 잡은 가게 내부 벽 한켠으로 커다란 바윗돌이 튀어나와, 산의 일부가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미트볼과 피클, 오랜 시간 끓여 만드는 미트볼 소스가 맛있다.  

8 수송동 계곡 (옥인동 185-3)

서촌 소개에 빠지지 않는 곳.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은 옥인길 가장 끝에서 만나게 되는 계곡이다. 2010년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면서 그동안 복개되어 있던 계곡이 되살아나, 겸재 정선의 비 온 뒤 인왕산 풍경은 제모습을 찾았다.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길 중 하나로 동네 주민들의 운동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은 나무가 울창하지 않지만 도심의 산이 주는 정취와 잘 정비된 산책로가 매력적인 곳이다.    

불국사

9 불국사 (옥인5길 7)

불국사는 경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 인왕산에는 불국사뿐 아니라 심지어 석굴암도 있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서촌 불국사는 동네 사찰로서 규모 면에서는 경주 불국사에 비할 바 아니지만 주지 스님이 정성 들여 가꾸는 대나무밭이 일품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 언제든 들어가 대나무를 감상하고 쉴 수 있다. 대나무는 제법 숲을 이뤄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를 내어 깊은 산 속에 든 듯한 느낌을 준다.    

Flower & cafe do

10 Flower & cafe do (옥인길 44)

수송동 계곡 아래 한옥을 고쳐 만든 꽃향기 가득한 카페. 처음 들어서면 다소 어둡게 느껴지지만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천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실내가 이색적이다. 10여년 전에 서촌에 자리 잡은 플라워 디자이너인 주인의 작업실이면서 동네 사랑방이다. 10년 동안 하나씩 둘씩 만들고 모은 접시, 장식품들이 서촌다운 정감을 준다. 올해 안에 사라질 예정이다. 주인장이 직접 만든 차와 과일주스가 신선하고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