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상가 아파트 중정에는 평화로운 낙원을 상징하는 두 쌍의 벽화가 마주 보고 있다. 건축 당시 새겨졌으나 작가가 전해지지 않고 있어 낙원상가 쪽은 지금도 이 작가를 찾고 있다. 안준석 제공
일제가 공습으로 인한 화재 피해를 줄이려 건물을 없애고 비웠던 직사각형 구역에 꾸역꾸역 판자촌이 들어섰다. 이 판자촌은 시장에, 주거에, 사창가까지 끼어든 그야말로 가난하고 힘든 시절의 땟국물 흐르는 삶의 터전을 형성했다. 1960년대 가난했던 정부는 부족한 예산을 축내지 않으면서도 빼곡하게 난립한 무허가 건물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퇴계로에서 종로를 잇는 남북향 도로를 율곡로까지 시원하게 연장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서, 판자촌을 털어내고 도로를 내면서, 그 위에 고층 주상복합건물까지 넣은 계획안!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멱까지 감은 그 안이 바로 1969년 준공된 낙원상가였다.
낙원상가는 이후 도로 사용에 대한 이견으로 서울시와 오랫동안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50년이 다 되도록 한자리에서 별다른 물리적 변화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삼일대로 선상에서 지척에 있는 31빌딩과 함께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건축계의 전설이자 은퇴를 모르는 상업시설계의 살아 있는 화석이다. 둘러싼 주변 환경은 뽕밭이 바다가 될 지경으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무슨 일이 있냐는 듯 혼자 저리 무심하게 세월을 스쳐 보내고 있다. 비록 때도 묻고 트렌디하지도 않은 아재스런 모양새이지만, 멀쩡히 기능하는 튼실한 건물이다. 소문으로 돌 듯 한강에서 퍼다 나른 골재가 사용된 것이 실제로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최근의 안전진단에서도 너끈히 양호한 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감탄스럽기만 하다.
지하에는 동네 분위기 물씬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지상 1층은 4차선 차량도로인 삼일대로가 지난다. 지상 2층부터 5층까지의 넓은 저층부가 상업시설인데 2, 3층을 차지하고 있는 악기상가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명성이 자자하다. 그 위 15층까지의 고층부는 햇볕 가득한 높은 중정을 가진 주거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반백이 되도록 서울 시민과 신산을 함께해온 낙원상가를 위한 바람직한 내일은 어떤 걸까? 이 건물의 나이가 40이 넘으면서 구조가 불안하고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며 당장에라도 철거해 새로운 환경으로 꾸며야 한다는 주장이 일었다. 마음 급한 양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안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나오고, 서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미와 기억을 지닌 장소이니 잘 다듬어 계속 쓰자는 의견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저층은 기둥과 슬래브로 이루어진 구조라 칸나누기가 자유롭다. 따라서 웬만한 용도는 모두 수용이 가능할 만큼 까다롭지 않은 순둥이다. 이러한 구조는 외관의 변경도 비교적 용이하고, 생긴 모양도 모나지 않아서 재주 있는 건축가만 만나면 깜짝 놀랄 환골탈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정작 구조나 형태보다 더욱 중요하고 우려되는 점은 낙원상가 자체가 아니라, 이 건물이 발을 딛고 선 주변과의 관계이고 사람들이 쉽게 들고 날 수 있는 연결성이다. 이미 서쪽의 인사동은 한국 전통 상업거리의 아이콘이 되었고, 동쪽의 익선동 한옥거리는 젊은이들 몰리는 핫한 지역으로 변신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고궁과 미술관이 널려 있고, 남쪽의 종로통과 청계천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과 춤추듯 어울리며 어깨 겯고 중재하는 낙원상가, 차도 사람도 밝고 편하고 안전하게 안팎으로 드나드는 낙원상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어본다.
안준석 공학박사·건축가(AIA)·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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