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엔 이걸 가르치는 걸 수치스러워했어요. 잘못하면 경범죄로 잡혀가 3일 구류 살고 나오고. 그렇게 세번 잡혀갔어요. 당신 직업이 뭐요? 하면 대답을 못 했다니까요.”
댄스스포츠의 ‘원로’ 박영택(73·사진 가운데) 회장을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났다. 한국프로댄스스포츠연맹 이인정(35·오른쪽) 위원장도 동행했다. 서로 부녀지간이자 사제지간이다. 이 위원장이 아버지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제는 정말 자랑스러워하시죠.” 현역에서 은퇴한 지금 박 회장은 학원에서, 이 위원장은 동덕여대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박 회장은 1974년 국내 첫 댄스플로어이자 교습소가 삼각지에 생겼던 때를 회고했다. 라틴댄스를 하던 박 회장의 전성기였다. 당시 무도인들 중에서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이가 없어, 직접 외국 자료를 공수해 번역하고 연구했다. ‘볼룸댄스’로 알려져 있던 댄스스포츠를 한국에선 처음으로 체계화·정형화해 선수 저변 확대에 공을 들였다. 박회장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이지만, 현행법상 댄스스포츠는 다른 여타의 스포츠와 달리 제약이 많은 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위원장은 “유소년 선수를 키워 국제대회에 내보내려고 해도 일반 성인사설학원에서 18세 미만 학생을받지 못한다. 1999년 무도장과 무도학원법에 대한 정책이 완화되고 2008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 되며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전문 무도인들의 ‘교습법’이 춤을 일상생활에 바르게 정착시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기본’이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춤을 춰도, 기본이 바르면 어긋나지 않는다. 가족들이 대를 물려가는 문화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춤은 특히 노인 운동으로 최고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들으면 뇌운동에 좋고, 이성 간에 엔도르핀이 돌고, 근육이 단련되어 건강해져요. 춤은 체중을 한발 한발 옮기는 것이 기본인데, 어디든 장소가 있다면 재능기부로 찾아가 제대로 된 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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