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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인간의 공존, 솔밭공원 산책로

반려동물 갈등 해소 모범 자치행정 강북구 ‘민원’ 조정관 제도도 눈길

등록 : 2017-10-26 14:57
지난달 28일 강북구의 솔밭근린공원 반려동물 산책로에서 진돗개 ‘진만’의 주인 이용산(맨 오른쪽) 씨가 박겸수 강북구청장(왼쪽 두번째) 등에게 산책로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처음 개 산책로를 만든다고 했을 때, ‘강북구의 개를 다 데려오려고 하느냐, 절대 만들지 말라’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찮았어요.”

지난달 28일 오후 100년 이상 된 소나무 1000여 그루가 솔향을 폴폴 내뿜는 강북구의 대표적 명물인 솔밭근린공원 울타리 옆에 마련된 반려동물 산책로. 2년 전 산책로를 만들 때 겪었던 어려움을 전하는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강북구 개가 다 오면 내가 (산책로 나무데크를) 다 뜯어내겠다”며 산책로 조성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한일관 대표 김아무개(53)씨가 얼마전 가수 최시원씨 가족이 키우던 개에 물린 지 엿새만에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반려동물 1천만 시대 공존 해법 모색이 절실히 요청되는 가운데 강북구의 반려동물 산책로는 반려동물 갈등 해소 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힐 만하다.

“산책로 이전에는 개들이 솔밭공원에 들어가 돌아다니는 바람에 주민들 민원이 많았어요. 무조건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 등 별별 수단을 다 써봤어요. 그러다 개와 사람이 부딪히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까지 생각이 미쳐 개도로를 밖으로 돌린 거죠. 그러니까 주민들 반대가 공존의 길 탄생의 주인공인 셈이에요(웃음).”

2015년 9월 탄생한 솔밭공원 울타리 밖 반려동물 산책로 800m의 일부 구간에는 고급 나무데크가 깔려 있어 개들도 주인과 함께 솔향을 맞으며 쾌적하게 산책할 수 있다.

9개월짜리 진돗개 ‘진만’이를 키우는 이용산(73)씨는 하루 한두 차례 서너 시간씩 이 산책로에서 ‘진만’이 운동을 시키고 있다. 개산책로 들머리의 나무데크에서 박 구청장을 만난 이씨는 “저녁이면 강아지들이 꼬리를 물고 산책로를 다니는데 서로 싸울 것 같지만 안 싸운다. 밖에 나와서 운동을 많이 한 애들(개들)은 스트레스가 적으니까 성질을 부리지 않는다”고 개산책로 효과를 높게 평가했다. 진만이도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집에서도 잘 안 짖는다고 한다. 그러자 박 구청장은 “그런 효과가 있는지 미처 몰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개에게도 인격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진만’이는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고 관련 행정·사회환경 등은 개선되고 있는 데 견줘, 반려동물 양육 에티켓(페티켓)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살짜리 ‘달봉’이를 키우는 강북구 주민 임연수(35·가명)씨는 “개산책로는 정말 좋은 길인데 이용하는 주민 중에는 개똥을 안 치우는 이들이 있어 좀 아쉽다”며 “많은 애견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삼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솔밭공원 개산책로가 개와 인간이 공생하는 길이라면, 강북구가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반려동물 조정관 제도(정식명칭은 ‘동물민원 주민자율조정위’)는 주민 간의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해보는 제도다. 동네 사정을 제일 잘 아는 통장을 중심으로 21명이 조정관(동물보호명예감시원)이 되어, 반려동물의 소음 등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에 출동해 원만히 해결하도록 주선하는 제도다.

강북구 일자리경제과 유통지도팀 김성훈 주무관은 “주민들끼리 해결하게 놓아두면 서로 쌓인 감정 때문에 언성이 높아져 해결하기가 어렵고, 담당 공무원들이 나서기에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 어려운 점이 있다”고 조정관 제도를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강북구에 따르면 조정관 제도가 시행된 뒤 대부분 문제는 원만히 해결됐다고 한다. 실제 민원 사항의 80%가량은 반려동물이 짖는 소리 등 소음 문제인데 조정관을 맡은 통장이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대부분 원만히 해결된다는 것. 인수동의 조정관을 맡고 있는 최순남(62)씨는 “민원이 접수돼 현장에 나가면 열에 아홉이나 여덟은 협조가 잘되지만, 가끔 ‘내가 여기서 50년을 살았는데 무슨 소리냐. 누가 민원을 냈느냐. 동물보호협회에 신고하겠다’며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최씨는 “어릴 적 개에게 목을 물려서 개를 상대하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는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일단은 씩씩하게 민원 발생 가구에 들어가서 협조를 부탁한다”며 “봉사라고 생각하고 통장을 그만둘 때까지 열심히 조정관 일을 해나가겠다”고 웃었다.

서지형 반려견 훈련사는 “견주들 분중에는 ‘우리개는 안물어요’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분들이 있다”면서 “개는 기본적으로 물고 짓는 것은 당연한 습성을 보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알고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