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세운상가 사이, 건축 사진 포인트
전현주 기자, 건축물 촬영 답사 행사 동행
등록 : 2017-11-09 14:00
마주한 종묘와 세운상가는
전통과 근대의 상징물
재개장한 세운상가, 새 볼거리
사진 기록은 건축 자산 보존 바탕
“여유와 생각, 이 두 가지를 먼저 기억합시다.” 임정의(72) 건축사진가의 말에 학생들 긴장도 풀린다. 서울의 건축물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난달 2 8일 오후 2시부터 늦은 밤까지, 안양 ‘김중업건축박물관’ 주최로 종묘와 세운상가 권역 건축물 촬영 답사 행사가 열렸다. 박물관에서 진행한 <사진, 건축을 담다> 9 주차 강연에 참여했던 시민 20여명이 모여 서울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종묘와 세운상가로 떠나는 공간 여행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근대 건축 기행> 등을 썼던 김정동(69) 목원대 건축과 명예교수가 ‘건축가’의 시선으로 건축물 몸체와 속셈을 설명하면, 3대째 가업으로 서울을 기록해오고 있는 임정의·임준영(41) 부자가 ‘사진가’의 시선으로 건물 질감과 조화를 그리는 법을 안내했다. ‘건축사진’이란 말 그대로 건축물을 찍은 사진을 말한다. 건축물의 생김새를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시대에 따라 건축물을 비롯한 주변 경관이 변하기 때문에, 건축사진 자체로 중요한 기록물이나 작품으로 남곤 한다.
종묘와 세운상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선 서울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한눈에 보여준다. 김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가 한국에서 가장 장엄한 건축물 중 하나라면, 세운상가는 60년대 도심재개발사업의 하나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국내 최초 주상복합단지”라고 운을 뗐다. 전통과 근대의 상징물이 공존하니 촬영 실습 장소로 최적이다.
더구나 세운상가는 지난 9월 과거의 옷을 벗고 재개장해 서울의 새로운 볼거리로 떠오른 참이다. 2015년부터 시작한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구조와 콘텐츠가 변화했다. 답사팀이 찾은 오후, 마침 옥상에선 장터가 열려 시민들이 볕을 쬐고 있었다.
“청년들이 이 주변에 와글와글 모이는 건 좋은 일이에요. 쇠퇴했던 터에 다시 활기가 도는 거죠. 자주 찾아와 두 건축물 사이를 왔다 갔다 걸어 보세요. 주변 관계도 보고요.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아주 많아요.” 김 교수가 활짝 웃으며 한발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유와 생각’은 건축물 촬영의 기본
종묘 정전에서 세운·청계·대림 상가까지 잇는 선을 큰 축으로 두고, 건물 일대를 지그재그 걸어나갔다. 이는 보물을 찾는 ‘놀이’ 같기도, 잃어버린 의미를 구하는 순례자들의 ‘고행’ 같기도 했다.
광장을 거쳐 세운상가로 들어서 9층 ‘서울옥상’에 오르면 종로 도심이 한눈에 담긴다. 북쪽으로 종묘와 북한산이, 반대편으로 남산과 남산타워가 시원하다. 청계천 따라 우뚝 선 고층빌딩과 따개비처럼 납작한 집 무리가 어수선하게 뒤엉킨 풍경도 보인다. 낡고 부서진 지붕을 보면 큰 파도가 일대를 덮치고 지나간 것 같다. 다사다난했던 시간의 흔적이다.
바로 ‘다시세운교’를 건너 청계천을 지나 청계상가로 들어가 입주 작업실을 구경하다가 ‘공중보행길’을 건너 대림상가 옥상에 오른다. 1㎞ 남짓한 길이 공중에서 이어진다. 문제는 체력이다. 카메라와 장비를 몸에 두른 채 십여층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어깨가 당겼다. 임정의 사진가는 ‘여유와 생각’, 동시에 ‘부지런함’을 여러번 강조했다.
“그래도 계속 걸어야 해요. 이제 웬만한 건 기계가 다 하지요. 많이 찍으면 좋다는 말이 있지만, 건축물 사진은 여유를 가지고 신중하게 한컷 한컷 찍을 때 좋아진다고 봐요. 내가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지 생각을 많이 하고, 발을 놀려 부지런히 걷는 게 방법이에요.”
서울 건축물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의미
건축물을 중심으로 서울을 본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인 최초로 ‘2018 독일 디자인 어워드’ 건축사진 부문에서 ‘위너’(winner)로 선정되기도 한 임준영 사진작가는 “서울은 동서양의 조화와 획기적이고 실험적인 건축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라고 한다.
“옛 모습을 간직한 전통 건축물과 현재 사람들의 삶에 쓰이고 있는 건축물을 함께 기록하는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개발하고 변화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사진 기록은 건축 자산을 잘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건축사진의 중요한 부분은 ‘관심’이에요. 이 건축물이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주변의 모습은 어떤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등을 보는 거지요. 건축물과 사람, 혹은 주변과의 관계를 잘 보고 같이 담으면 좋습니다.”
건축물은 입체지만, 사진은 평면이다. 입체를 만들어주려면 빛과 그림자가 필요하기에, 건축사진에 좋은 빛의 방향은 ‘앞쪽 45도 즈음의 사광과 뒤쪽 45도 즈음의 반 역광’이라는 것도 임 작가가 전하는 팁이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서울의 건축물이에요. 건물을 촬영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어쩌면 인물보다도 다가가기 쉽죠. 건물은 말을 안 해도 그 자리 그대로 있고, 내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잖아요.” 임 작가의 말이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대림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대림, 청계, 세운상가가 일직선으로 뻗어 종묘를 향해 달려간다. 멀리 북한산 줄기와 종묘 정전의 기와도 보인다. 남쪽으로 진양상가까지 걸어가면 조금 더 극적인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
세운상가 옥상장터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근대 건축 기행> 등을 썼던 김정동(69) 목원대 건축과 명예교수가 ‘건축가’의 시선으로 건축물 몸체와 속셈을 설명하면, 3대째 가업으로 서울을 기록해오고 있는 임정의·임준영(41) 부자가 ‘사진가’의 시선으로 건물 질감과 조화를 그리는 법을 안내했다. ‘건축사진’이란 말 그대로 건축물을 찍은 사진을 말한다. 건축물의 생김새를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시대에 따라 건축물을 비롯한 주변 경관이 변하기 때문에, 건축사진 자체로 중요한 기록물이나 작품으로 남곤 한다.
오후 3시 종묘 정전에 가을 햇살이 내려앉아 음영을 만들었다.
오후 5시 세운상가 옥상 부근에서 바라본 종로 일대 풍경.
오후 8시 학교과제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러 세운상가 공구가게를 찾은 대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