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저장강박 할머니, 7시간 정리 봉사에 “대만족”
‘콩알봉사단’ 정리수납 봉사 현장 안 버린다던 할머니 “고생 많았다”
등록 : 2017-11-16 14:33 수정 : 2017-11-16 14:39
정리수납 전문가들의 봉사단 ‘콩알’ 회원 16명이 지난달 26일 방배동의 한 어르신 집 정리정돈 봉사에 나섰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때 지난해까지 콩알 회장이었고 지금은 고문이며 100회 넘게 봉사한 베테랑 이정민 팀장이 나서서 정리한다. “할머니 말씀대로 해요. 철 지난 것은 수납박스에 넣어서 정리하고 서랍에는 지금 입을 걸 넣어주고요.” 봉사자들이 다시 부지런히 움직인다. 점심 뒤 오후엔 수납작업이 이뤄졌다. 큰방 봉사자들은 이불을 4단으로 접어 공간을 덜 차지하게 해서 계절별, 색깔별로 이불장에 넣었다. 포장도 뜯지 않고 ‘모셔둔’ 새 이불은 꺼내 쓰게 정리해준다. 부엌에서는 자주 쓰는 양념통, 접시 등은 찬장 아래 둬 키가 작은 할머니가 편리하게 쓸 수 있게 정리했다. 간장 등 액상 조미료, 집에서 담근 포도주 등은 작은 페트병으로 옮겨 담았다. 뚜껑에 이름을 적거나 병에 이름표를 붙여 사용 뒤에도 제자리에 정돈할 수 있게 했다. 다니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참가한 황정순씨는 “작게 나눠 담아야 덜 상하고, 공간도 덜 차지한다”고 말한다. 오후 5시 집 정리가 끝났다. 봉사원들의 손길에 집안이 말끔하게 변신했다. 재활용 봉투 100ℓ 7개, 20ℓ 5개에 담긴 잡동사니, 의자, 자전거 운동기구 등이 차지했던 집에 이제는 여러 사람이 앉아도 될 만한 바닥이 생겼다. 할머니가 “고생 많았어”라며 봉사자들 손을 잡는다. 취재를 마다하던 할머니가 마지막엔 “대만족이라고 써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봉사자들은 “할머니, 쓰고 난 뒤에는 그대로 그 자리에 두세요”라고 신신당부하며 집을 나섰다. 정리수납 자원봉사자를 길러내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주민들의 정리수납을 돕고 있는 자치구도 늘어나고 있다. 13일 오전 10시께 동작구 사당동의 한 연립주택 1층. 정리수납 전문교육을 받은 동작구자원봉사센터 봉사원 7명이 집 문을 열자 아이들 옷가지 등이 담긴 대형 비닐봉지 꾸러미 수십여개가 눈앞에 펼쳐졌다. 집주인 김수경(38·가명)씨가 원래 문간방이던 곳을 창고처럼 사용한 탓이다. 12살, 11살, 9살 등 세 아이와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며 살고 있는 김씨는 다음 달이면 넷째 아이를 낳는다. 배우자도 없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김씨는 14.5평 크기의 작은 집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습관 때문에 2014년에도 정리수납 봉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작은 집에서 7식구가 함께 살기도 했는데, 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해 우울증을 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작구 복지정책과 희망복지지원팀에서 일하고 있는 송인란 통합사례관리사는 “다음 달에 출산 예정이지만 지금 김씨 집안 상태로는 어린 아기를 키울 환경이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리정돈 도움을 받길 권했다”고 했다. 김씨는 “언니가 정리수납을 도와줄 것”이라고 몇 차례 송 관리사의 제안을 거부하다 뒤늦게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날 집안 대청소는 ‘버리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곤 했다. 김씨는 자원봉사자들이 버려야 할 것으로 분류한 비닐봉지를 일일이 열어보곤 “이 물건은 아직 쓸 수 있다”며 아이들이 쓰던 방수요와 털모자 등을 도로 챙겼다. 송 관리사는 “버려야 정리수납이 진척되는데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정리하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되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꼼꼼히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씨는 자원봉사자들이 원활하게 정리수납할 수 있도록 일단 ‘버리는 물건’으로 분류된 봉투에는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김씨는 정리수납 봉사에 “한때는 어머니와 남동생 등 7식구가 좁은 집에서 살았다”며 “이렇게 정리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현숙·김도형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