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매경한고와 한·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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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30 14:32
지난번 이 난에 매경한고(梅經寒苦)의 출전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한자성어를 공부하는 코너인 만큼 그사이에 알게 된 약간의 정보를 보충하고자 한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선 중국 옛 책에 보이는 ‘매화향자고한래’(梅花香自苦寒來)가 매경한고라는 사자성어의 출전으로 볼 수 있는가이다.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거쳐야 향기를 피운다’는 이 말은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각 분야 청년대표들과 좌담할 때 인용한 말로, 명나라 때 편찬된 <경세현문>(警世賢文)이란 책 속에 들어 있다. 송나라 유학자 주희(1130~1200)가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권장하며 한 말로 되어 있다. 책보다 앞선 시기 사람인 명나라 유학자 왕양명도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7자 격언이 중국에서 사자성어인 매경한고로 압축돼 쓰인 사례는 이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매경한고라는 사자성어가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매화(梅)는 추위의 고통(寒苦)을 견뎌야(經) 맑은 향기(淸香)를 뿜어낸다(發 또는 放)는 ‘매경한고발(방)청향’(梅經寒苦發(放)淸香)이란 7자 격언에서 매경한고의 사자성어가 나왔으며, 이 말을 가장 먼저 쓴 사람이 일본 선불교 조동종의 개조인 도겐(道元 1200~1253)이다”라는 주장이 있다. 도겐은 송나라 때 중국 절강으로 유학을 가 명승 여정으로부터 선불교를 배워서 일본 조동종을 새로 세운 유명한 선승이다.
선승들 이외에 매화의 비유를 즐겨 쓴 사람들은 일본 사무라이다. 일본 최초 무사정권인 가마쿠라막부는 선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선불교는 이후 무사도의 성립에도 영향을 미쳤다. 에도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시코쿠의 한 가문에 내린 보검에는 이런 흔적이 뚜렷하다. 이 칼에는 ‘매한고경 청향발’(梅寒苦經 淸香發)이라는 7자의 명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산절철웅(山折哲雄), <신·사국편로>)
이상으로 추정해보건대, 매화를 도의 깨달음과 인내의 수련에 비유한 중국의 선어(禪語)가 송나라 때 절강지방의 선수행자들 사이에서 유행했으며,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특유의 사무라이 문화와 결합해 점차 매경한고라는 사자성어로 압축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비슷한 서예 대련들이 쓰인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 교육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어쨌거나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에게 “싫다고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다.
이인우 선임기자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