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포항 지진 뒤 예약 폭주 “반복교육으로 몸부터 반응해야”

국내 최초 5축 지진체험장 운영하는 성동생명안전배움터 강성호 주무관

등록 : 2017-11-30 14:41
이라크 파병 때 안전교육과 인연

프로그램 차별화로 배움터 알려

세월호 참사 뒤 선박 탈출도 교육

출장교육까지 2년 동안 2만명 만나

지난 11월23일 성동구 마장동 성동생명안전배움터 지진체험장에서 강성호 주무관이 방석으로 머리를 보호하도록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성동구 제공

진도 7.8을 선택하자 주방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란하지 않지만 불규칙한 움직임이라 가만히 서 있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놀이기구를 타는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지난달 11월23일 성동구 마장동 성동생명안전배움터에서는 송정동 행복가득어린이집 어린이 12명이 안전교육을 받았다. “집 안에 있다가 갑자기 지진이 났어요. 우리 친구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강성호 주무관이 묻자 몇몇이 “식탁 밑에 숨어요”라고 대답했다. “맞아요. 방석이나 책가방으로 머리도 보호해야 해요.” “베개는 안 돼요?” “베개도 돼요. 그리고 식탁 다리를 재빨리 잡아야 넘어지지 않아요.” 김수진 행복가득어린이집 원장은 “매주 안전교육을 하는데, 포항 지진이 난 뒤 별도로 지진 대피 요령을 복습해 아이들이 기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탁 밑으로 내려간 아이들이 방석을 챙기지 못하자 강 주무관이 외쳤다. “머리, 머리, 머리를 보호하세요.” 방석을 잡으려다 식탁 다리를 놓쳐 주저앉는 아이도 있었다. “지진은 길어야 1, 2분이에요.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진이 오기 전에 탈출하는 거예요.” 진동이 멈추자 아이들을 문밖으로 내보냈다. “집에서 나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위에서 떨어질 게 없는 운동장이나 공원으로 가야 안전해요.” 하지훈(6)군이 손을 들고 “두 손으로 식탁 다리를 잡으면 방석을 놓치는데 어떻게 해요?” 하고 묻자 강 주무관은 “한 손으로는 머리를 보호하고 다른 한 손으로 식탁 다리를 잡으면 된다”고 답했다.

성동생명안전배움터는 2015년 6월 성동구가 만들었다. 종합안전체험교육장은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처음이다. 심폐소생술, 소화기, 완강기, 승강기, 대중교통 안전수칙 등 12가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소화기 사용법은 모니터 화면의 불꽃을 향해 연기를 제대로 쏘면 불이 꺼지는 방식이라 아이들은 게임을 하듯 몰입했다. 강 주무관은 “어린이들에게 ‘소화기를 누르면 뭐가 나가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물이 나간다’고 대답한다. 대부분 체험장의 소화기에서 물이 나가기 때문”이라며 “이를 바로잡고 싶어서 분말 가루와 시각적 효과가 비슷한 수증기가 나오는 소화기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에는 지진체험장과 선박탈출체험장을 새로 만들었다. 강 주무관은 “경주 지진과 세월호 참사 뒤 주민의 요구가 많았는데, 다행히 서울시 지원을 받아 증설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닥을 떠받치는 축이 5개인 5축짜리 지진체험장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축이 많아서 위아래뿐 아니라 앞뒤 좌우로 흔들려 실제 지진 파형과 가깝고 3.6, 5.5, 7.8 등 다양한 진도를 구현할 수 있다. 선박탈출체험장에서는 배가 심하게 요동치다가 한쪽으로 기울면 승객 한명씩 바른 자세로 뛰어내리도록 안내했다. 바닥에 고무공이 가득해 어린이들은 신나게 뛰어내렸다. “초등학생만 돼도 세월호 때문에 선박탈출체험장이 생긴 걸 알더라고요. 탈출 교육을 할 때마다 세월호 참사가 떠올라 마음이 무겁고, 학생들에게도 더 진지하게 임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 포항 지진 뒤 신청이 폭주해 연말까지 예약이 이미 끝났지만, 초기에는 주민들의 관심이 거의 없었다. “성동구의 어린이집에 일일이 전화하고, 상가에서 전단까지 돌리며 ‘영업’하느라 고생했죠. 바로 옆 마장국민체육센터에 수영장이 있는 걸 보고 광진소방서에 몇번씩 찾아가 소방관님께 재능기부를 부탁드려서 여름철에는 생존 수영도 가르칩니다.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차별화하니까 그때부터 조금씩 예약이 들어오더군요.”

2015년 말에는 배움터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성동구민종합체육센터 직원이 헬스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60대 여성의 생명을 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봄에는 가족이 교육받으러 오셨는데, 집에 있는 소화기를 10년 동안 한번도 쓴 적이 없다고 하셔서 교체를 권해드리고 매장까지 소개해드렸죠. 나중에 새 소화기를 가져오셨길래 사용법을 가르쳐드렸는데 두세달 뒤 고맙다고 연락이 왔어요. 멀티탭 누전으로 집에 불이 났는데 배운 대로 소화기를 이용해 무사히 껐다고 하시더군요.”

강 주무관이 안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군대에서다. 우연히 작전병을 맡아 부대 안전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몇달 뒤 이라크 파병이 시작되자 담당자한테 ‘이라크에 가서 부대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편지를 6통이나 보내 2004년 자이툰부대원으로 가게 됐다. 평화유지군이라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않지만, 작전지역에서 예상되는 상황별 대처법 등 안전교육을 7개월 동안 지원했다.

“구호활동을 나갈 때 본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장갑차에서 밖을 보는데, 한손으로 아이를 안은 이라크 여성이 다른 손으로 소총을 들고 있는 겁니다. 교육과 실제 상황은 정말 다르구나,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지 않으면 실전에선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걸 느꼈어요. 재난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반복교육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1만6000여명이 배움터를 방문했고, 복지관·경로당·아파트·전통시장·학교 등으로 ‘찾아가는 안전교육’까지 합치면 2만명 넘게 교육했지만 아직도 부족해요. 30만 성동구민을 모두 만나는 게 목표입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