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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급식판에 오른 홍성 무농약 사과

서울시 ‘도농상생 공공급식’ 현장 “공장 아닌 농장…유통 아닌 교류를”

등록 : 2017-11-30 14:51
지난 11월14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젊은협업농장’ 정민철 이사(가운데)의 너스레에 노원구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시는 ‘도농상생 공공급식’을 12월부터 노원구-홍성군 등 5개 지역으로 확대했다.

“우리 농장은 농업을 해보겠다는 젊은이들이 농사가 어떤 일인지, 농촌이 어떤 곳인지 배우는 곳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한국에서 가장 젊은 사람들이 키우는 유기농 쌈채소를 받을 것입니다.”

지난 11월14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젊은협업농장’ 정민철 이사의 말에 수십명의 여성들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일반 재배 채소는 비쌀 때 엄청 비싸죠? 그런데 우리는 1년 내내 똑같은 값입니다.” “오!” “리액션 좋아요. 게다가 365일 수확해요. 설날도, 크리스마스도….” “와!” “역시 노원구랑 통하는 게 있다니까요.” 정 이사의 너스레에 깔깔깔 웃음을 터뜨린 여성들은 노원구의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들이다. 12월부터 시작되는 홍성군과의 ‘도농상생 공공급식’을 앞두고 산지 탐방을 온 것이다.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일대일로 손잡은 서울 자치구와 산지 기초지자체가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로 서울의 어린이집·지역아동센터·복지시설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여러 채소가 줄지어 자라고 있다. 유럽 상추의 한 종류인 생채, ‘로마인의 상추’라는 뜻을 지닌 로메인, 뾰족한 외모와 쓴맛이 인상적인 치커리, 떡갈나무 잎을 닮아 이름 붙여진 오크린 등을 차례로 설명하던 정 이사는 “적색 오크린은 녹색 오크린 수확량의 반밖에 안 된다. 빨간색이 섞여 있는 채소가 식욕을 자극하는지 적색 오크린만 원하는데 우리는 수확량이 적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생산해도 버려지는 게 너무 많아요. 딱 그 크기 아니면 안 된대요. 우리가 공장도 아닌데 똑같은 채소만 나올 수가 없잖아요. 통계를 봐도 농산물 30%는 수확해놓고 버리고, 20%는 음식해놓고 버리고…. 그러니 나중에 농산물이 도착하면 자로 재려고 하지 마세요. 다 신경 써서 보내드리는 거니까….”

현재 젊은협업농장은 홍성군 학교급식에 채소를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농사일을 배우고 있는 21살의 한 예비 농부는 “이사님이 학교급식용으로는 항상 좋은 것만 따라 하고, 500g 주문이 들어오면 520g 보내라고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학교급식에 나가는 채소는 마을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서 가장 좋은 채소에 손이 간다”고 말했다.

체험관으로 자리를 옮긴 일행은 무농약 사과와 모히토를 시식했다. “쌈채소 농장에선 고기를 구워야 제격”이라는 원장들의 농담에 정 이사는 “안 그래도 우리 농장 이름 지을 때 ‘정육점 가는 길’을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면 그런 게 다르다”며 여유 있게 받아넘겼다. 모히토는 근처 행복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허브로 만든 것이다. “허브는 아직 유기 재배 인식이 부족해 일반 재배와 가격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도 행복농장은 ‘허브는 생으로 먹는다’며 유기 재배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행복농장은 정신질환자에게 농사일로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는 치유 농장입니다. 유기농 허브를 사면 치유농업을 지원할 수 있고, 쌈채소를 산 돈은 청년들이 시골에 정착하는 종잣돈이 됩니다.”

무농약 사과는 작고 모양이 볼품없지만 맛은 정말 일품이다. 정상진 홍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사과는 무농약으로 재배하기 가장 어려운 농산물인데, 우리 조합원이 도전 3년 만에 재배에 성공한 귀한 것이다. 농약을 안 친 사과가 저 정도 나온다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홍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은 가장 크고 좋은 채소(오른쪽)를 학교 급식에, 그다음 좋은 채소를 마트에 납품하고 있다. 한 조합원이 도전 3년 만에 재배에 성공한 무농약 사과(왼쪽)는 작고 볼품없지만, 맛은 일품이다.


그러나 김경숙 홍성군 주무관은 “무농약 사과가 지난주부터 학교급식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겉에 까만 점도 있고 보잘것없다며 항의가 들어와 생산자가 엄청 낙담했다. 노원구와의 ‘도농상생 공동급식’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한줄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정상진 대표는 “홍성은 1958년부터 농업학교인 풀무학교를 졸업한 분들이 유기농업을 꾸준히 하면서 유일하게 민간 주도로 지정된 ‘유기농업 특구’다. 또 귀농 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로 지금도 30, 40대 젊은 분들이 계속 귀농하고 있다. 농가의 63%가 60살 이하라 우리 조합은 30년 이상 망하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배옥병 서울시 먹거리정책자문관은 “한국에서 유기농업을 가장 앞장서서 해온 홍성군은 지역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공급하는 시스템도 가장 모범적”이라며 “그런 곳과 일대일로 맺어진 노원구는 복 받은 지역”이라고 말했다.

“귀농하고 싶은데, 빈집 좀 알아봐주세요.” 월계2동 아가랑어린이집 조선희(56) 원장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김율배 홍성군 급식지원팀장이 “그러면 서울 아이들은 누가 지키냐”며 농담으로 받았지만, 조 원장은 진지했다. “퇴직 후 남편과 함께 귀농할 계획이라 오늘 유심히 살펴봤는데 홍성이 참 좋네요. 특히 농장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이 건전한 생각을 하고 있어 미래가 밝고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가격이야 조금 비싸긴 하겠지만, 아이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먹이고 싶고, 도농상생의 가치도 느끼지만 보육료는 계속 동결되고 친환경 농산물 단가는 비싸 현실적인 부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주저하는 원장들도 많았다. 이에 대해 배옥병 자문관은 “어린이집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시는 한끼 식비마다 차액 500원씩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며 “급식을 하는 일선 학교들을 보면, 제일 크고 상태 좋은 것만 찾으면서 가격은 비싸다고 한다. 사실 유기농을 하면 벌레 먹은 배춧잎, 울퉁불퉁한 호박처럼 다양한 크기와 모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에 유기농을 공부한 원장님들은 크지 않은 농산물도 살 테니 가격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미숙 노원구 교육복지국장은 “오늘 같이 온 원장님들은 못난이 과일이 오더라도 믿고 쓸 것 같다. 이런 구매가 확산되면 도농상생과 먹거리 안전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구 국공립 어린이집연합회 강점연 회장(합동마을어린이집 원장)은 “홍성에 오기 전에는 ‘지금도 급식 잘하고 있는데, 왜 도농상생 공공급식을 새로 하라는 건지' 의구심이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와서 보니 이해가 되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깨닫고 간다”고 말했다.

정민철 이사는 ‘도농상생 공공급식’을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을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노원구도 마을 만들기에 열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농산물을 유통하자’가 아니라 ‘마을을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을 나누자’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어떨까요? 노원구 청년들이 여기 와서 배우고, 우리 청년들도 노원구로 배우러 가는 그 길에 농산물도 함께 오갔으면 좋겠습니다.”

홍성/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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