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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출신 밴드, “이제 공연 중 울지 않기로 했어요”

라이나전성기재단의 중장년 지원 드림콘서트 최종 8팀에 오른 ‘봄날밴드

등록 : 2017-12-14 14:22
2013년 결성한 3인조 밴드

노숙인 벗어나 봄날 맞자는 취지

멤버 이탈 있었지만 작사도 해

경험 우러난 노랫말에 공연 중 울컥

지난 11월 용산구 보광동 에이엠 실용음악학원에서 노숙인 출신 ‘봄날밴드’ 멤버 3명이 연습하고 있다. (왼쪽부터)서명진씨, 이동진씨, 구영훈씨. 라이나전성기재단 제공

‘봄날밴드’는 노숙인 지원 잡지 <빅이슈> 판매원들로 이뤄진 그룹사운드다. 이동진(49·보컬·기타), 서명진(45·베이스), 구영훈(51·드럼) 3인 밴드다. 여기에 밴드 활동의 많은 부분을 지원하는 드림트리빌리지(예비사회적기업)의 뮤지션 주현경(키보드)도 함께한다.

지난 8일 저녁 광화문 케이티(KT)스퀘어 드림홀에서 열린 드림콘서트에서 봄날밴드가 첫 팀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날 콘서트는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중장년 아마추어 음악인의 꿈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드림콘서트’의 최종 무대다. 42팀 가운데 입상한 8팀은 공연에 앞서 옴니버스 음반 녹음과 앨범 재킷 촬영도 했다. 이씨가 “꿈이 현실이 되어 행복하다”고 200여명의 관객에게 인사말을 했다. 멤버들이 공동으로 가사를 쓴 <꽃피다>와 가수 하림이 작곡한 <활보> 두 곡을 신나게 불렀다.

이날 봄날밴드는 처음으로 ‘두 탕 뛰기’를 했다. 탈노숙 지원주택 ‘행복하우스’ 입주민들과 함께하는 ‘길리언 토크 콘서트’와 시간이 겹쳤기 때문이다. 광화문에서 공연을 끝내고 바로 중구 명동의 한국 YWCA 연합회 회관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토크 콘서트의 사회자는 “요즘 핫한 팀이다. 광화문에서 공연하고 바로 왔다. 얼마 전 필리핀에 가서 음악 봉사를 하며 사랑을 나누는 활동도 하고 있다”고 봄날밴드를 소개한다.


봄날밴드는 2013년 세상에 나왔다. 벌써 5년차다. 매니저인 윤건 ‘달팽이소원’ 대표가 당시 노숙인 자립지원단체 ‘거리의천사’ 총무로 일했는데, 노숙인들이 공공근로 방식이 아니라 좀더 재미난 방식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한다. 색소폰 연주자였던 노숙인을 만나 의기투합해 음악모임을 만들었다. 8명이 차례로 모였다. 악기도 없었고 만나면 먹는 것만 했다. 이때 동두천에서 중고악기상을 하는 이지성씨가 악기 후원을 해줬다. 밴드 이름은 노숙인 삶에서 벗어나 다시 봄날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봄날’로 지었다.

막상 밴드를 만들었지만 대부분 악기를 제대로 배우는 건 처음이었다. 음악적인 수준 차이도 컸다. 연습과 공연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적잖았다. 5명이 활동하다 그사이 2명이 나갔다. 한명은 음악 실력이 좋았는데 중이염이 심해져 청각 장애가 와 그만뒀다. 또 다른 멤버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음악으로 이겨내려 애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멤버 보강이 필요하지만 이들이 다시 돌아올 여지를 남겨놓으려 빈자리를 아직은 채우지 않고 있다”고 윤 매니저가 전했다.

봄날밴드 음악의 특징은 ‘인간성(聲)’, 사람의 목소리이다. 멤버들의 테크닉은 좀 떨어지지만 진솔한 음악을 하려 한다. 박자 하나하나를 짚어 소리를 만든다. 사실 본인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노랫말을 연주하며 자주 울컥해져 눈물을 흘린다. “올 6월 4회 정기공연하면서 이제는 울지 말자고 약속했다. 우리가 아니라 관객들이 울며 힐링할 수 있게 하자고 다짐했다”고 서씨가 말했다.

봄날밴드 활동 5년간 멤버들에게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대인기피증으로 사람들 앞에 서면 사시나무 떨듯 떨고 눈도 맞추지 않았던 서씨는 이제 토크쇼에 나와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졌다. “한때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 자체를 거부했는데 밴드 활동을 하면서 다시 마음의 문이 열렸다”고 한다. 멤버들은 임대주택과 탈노숙자 지원주택에 살면서 연락이 끊겼던 가족들과 소식을 전하며 지내기도 한다.

가장 큰 변화는 ‘꿈’을 얘기한다는 점이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은 이씨를 빼고 서씨와 구씨는 주 5일 하루 7시간 <빅이슈>를 팔면서 시간을 쪼개 연습한다. 구씨는 “5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오니 인정도 받고 공연 의뢰도 와 뿌듯하다”며 “천천히 가고, 혹여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밴드로 남으면 좋겠다”고 한다.

봄날밴드는 그들이 느끼는 마음의 울림을 전달한다. 지금까지 70회 정도 공연했다. 처음엔 협업 공연이 대부분이었다. 연습곡도 30여 곡으로 늘고 직접 작사한 곡도 5곡이 생기면서 요즘은 단독 공연도 늘었다. 오는 19일에는 서교동 레드빅스페이스에서 5주년 감사콘서트를 연다. 그동안 도와준 분들에게 보답하는 자리다. 이날 콘서트는 국내 유일 소아 조로증 환자인 홍원기군 치료를 위한 후원의 뜻도 있다. 멤버들이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나눔에 대해 더 간절하다.

봄날밴드 활동에는 여러 기관의 후원이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아직 차가 없어 지방공연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차 없이 악기와 장비를 싣고 옮겨다니기가 힘들다. 서씨는 “차가 생겨 지방공연도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래도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의 힘이 닿는 한 계속 봄날밴드를 할 것이다”라고 했다. 봄날밴드가 함께하는 노숙자 자립지원단체 달팽이소원은 내년에 시민청이나 노숙인 쉼터에 있는 이들에게 악기 교육을 할 계획이다. 봄날밴드 2, 3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