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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는 ‘옥탑방 노크’

관악구, 전국 첫 옥탑·지하방 전수조사 서울시 행정 우수 사례 최우수상

등록 : 2017-12-14 14:36
관악구는 올해 전체 21개 동의 옥탑·지하방을 모두 조사해 거주 취약계층을 찾아내고 지원하는 사업을 벌였다. 옥탑방이 많은 난곡동 주택가 모습.

조사 과정서 죽어가는 50대 남성 살려

#3월29일

“똑똑똑, 계세요?” 관악구 난곡동주민센터 노성일 주무관(복지플래너)은 이유종 난곡사회보장협의체 위원과 함께 법원단지7길 2층 다가구주택의 옥탑방 현관을 두드렸다. 집주인이 “세 들어 사는 김씨가 한달 넘게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고, 50대인데도 잘 먹지 못해 80살 넘게 보인다”고 연락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옥탑방을 방문했던 노 주무관은 거주자 김성빈(58·가명)씨를 만나지 못해 ‘어려운 점이나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면 연락해달라’는 내용의 ‘부재중 안내문’을 붙여놓고 온 터였다.

현관문이 20여분 만에 열리자 노 주무관은 눈을 의심했다. 거의 기다시피 하며 문을 열어준 김씨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방 안은 낡은 이불과 생활용품 쓰레기 등으로 어지러웠다. 방 앞 작은 주방에선 음식이 상해 악취가 진동했다.

더 놀란 건 김씨의 몸 상태였다. 김씨는 2월에 화장실에서 뒤로 넘어져 등뼈가 부러진 것 같다 했다. 노 주무관은 “몸이 불편해 음식을 만들지 못하고, 방 안 여기저기 작은 컵에 양파를 키워 양파 순으로 연명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런데도 김씨는 “내가 잘못 살아서 이 고통을 받는 것”이라며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다고 한다. 김씨는 7년 전 이혼한 뒤 가족과 단절된 채 전단 배부, 건설 현장 일용직 등을 하며 홀로 사는 처지였다.


#4월3일

김씨는 난곡동의 병원에 입원했다. 노 주무관이 여러 차례 전 부인 이아무개씨를 설득한 뒤 함께 “우선 치료부터 하자”고 강권한 결과다. 4월12일 부러진 등뼈와 어깨뼈 3곳을 수술했다. 췌장염과 간경화 등 다른 증세까지 확인돼 보라매병원과 한강성심병원에서 추가 수술이 이어졌다.

문제는 병원비. 모두 2000만원이 필요했지만, 김씨 수중에는 한푼도 없었다. 동주민센터가 긴급의료비 300만원을 댔고, 붕어빵 장사를 하는 전 부인이 1700만원을 대출받았다. 김씨는 2달 가까이 입원한 뒤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노 주무관이 부지런히 움직여 최소한의 생계 안전판을 갖춰줬다. 김씨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돼 주거비·생계비 등으로 월 69만원을 받는다. 의료급여 1종 자격도 얻어 치료비 부담도 크게 덜었다. 지역사회도 힘을 보태 포장이사업체인 ‘파란이사’가 세탁기와 선풍기, 냉장고를 지원했고, ‘작은목자들교회’는 매주 수요일 밑반찬과 도시락을 후원했다.

#11월30일

김씨가 이사를 했다. 보증금 200만원, 월세 13만원을 주고 5년 넘게 살았던 옥탑방에서 보증금 500만원, 월세 24만원의 인근 다가구주택 반지하 방으로 옮겼다. 부족한 보증금은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소급분으로 감당했다. 몸이 불편한 김씨를 대신해 노 주무관과 이유종 위원, 동주민센터 복지플래너들이 짐을 날랐다.

영하 8도로 수은주가 떨어진 지난 5일 낮, 노 주무관과 이 위원이 김씨의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세간살이는 단출해도 집 안은 따뜻했다. 김씨는 복대를 하고 누워 있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김씨는 “이렇게 앉는 것만도 다행이다. 늘 생각하는 게 노 주무관이 너무 감사하다. 도움이 없었다면 벌써 죽었을 거다. 빨리 건강해져서 돈도 벌고 싶다”며 고마워했다. 김씨는 이제 지팡이를 짚고 조금씩 걸을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노 주무관은 “나중에 ‘나 월급 탔다’는 소리를 꼭 해줘야 한다”고 응답했다.

노성일 난곡동주민센터 주무관(왼쪽)이 지난 5일 거동이 불편한 김성빈(가명·오른쪽)씨를 방문해 살피고 있다.

노 주무관은 김씨의 임대주택 입주를 신청한 상태다. 월 69만원의 소득에서 월세 24만원은 아무래도 부담이 크다. 노 주무관은 “월 임대료가 7만원인 임대주택으로 옮기면 큰 걱정을 덜 텐데, 치아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65살이 되지 않아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에서 치과 치료를 도와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워낙 건강을 챙기지 못한 김씨는 썩은 이 4~5개밖에 남지 않았다.

차가운 옥탑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김씨가 새 삶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관악구의 ‘옥탑방·지하방 전수조사’ 덕분이다. 관악구는 지난 3~6월 전체 21개 동에서 옥탑방·지하방을 모두 조사해 위기가정을 찾아내고 지원하는 사업을 벌였다. 이런 대규모 전수조사는 시·군·구 통틀어 전국에서 처음이다.

관악구는 1인 청년 주거빈곤율(55.5%)과 1인 거주 세대 비율(51.8%) 등이 서울 자치구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주거 취약계층 문제가 심각하다. 이은희 관악구 희망복지팀장은 “지하방·옥탑방에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신 현실을 잘 알면서도 조사 대상이 너무 많아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조사를 마치고 나니 큰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전수조사에선 우선 조사 대상 규모를 확인하는 게 문제였다. 지하방 경우엔 1차 자료로 건축물대장에서 2만847호의 주소를 구했지만, 옥탑방은 불법 건축물이라 아무런 자료가 없었다. 이은희 팀장은 “방법은 ‘맨땅에 헤딩’하듯 모든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는 것뿐이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일일이 살핀 결과, 관악구 전체 3만2467개의 지하방 중 2만8079곳에 사람이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옥탑방 경우엔 조사된 1456개 중 1284곳이 주거용이었다.

조사 인력도 만만치 않은 고민거리였다. 동주민센터의 복지팀장과 복지플래너, 우리동네주무관 등 공무원 279명이 총동원됐지만, 전수조사를 벌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욕심을 낼 수 있었던 건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 차원에서 2016년에 사회복지직 공무원 117명이 관악구에 신규 채용된 덕분이다.

인력 부족을 통반장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직능단체 위원, 자원봉사 상담가 등 옥탑방·지하방의 ‘이웃’들이 메웠다. 이들 지역주민 794명은 공무원들과 ‘2인 1조’를 이뤄 동네를 샅샅이 돌았다. 거주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는 ‘부재중 안내문’을 붙여 두 차례 방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전수조사에 참여한 권진숙 신림동 자원봉사캠프장은 “지하방을 다녀보니 우리 이웃 중에 복지정책이나 서비스를 모르는 분이 여전히 많이 계신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관악구는 옥탑방·지하방 거주자 가운데 5394가구를 대상으로 상담을 해 위기가정 2691가구를 찾아냈다. 이들에게 민간과 함께 7월 말까지 3억7490만원의 현금·현물을 지원하고, 국민기초수급 등 1381건의 복지급여 신청을 도왔다. 이런 위기가정 발굴 건수는 2016년에 견줘 520%나 되는 규모다.

관악구는 전수조사 경험을 모아 지난 10월 <희망을 나누는 관악 이야기> 사례집을 냈다. 그리고 서울시가 지난달 주최한 ‘2017년 서울시 자치구 행정 우수 사례 발표회’에서 1등 상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관악구는 발표회 때 전수조사 사업을 ‘옥탑방은 불법이지만 사람은 불법이 아니잖아요’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큰 곤란을 겪었을 이웃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민관 합동조사를 통해 주민들이 지역사회 복지 생태계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도 주요한 성과”라고 밝혔다.

관악구의 ‘노크’는 옥탑방·지하방 사람들에게 희망과 온기였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