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4월, 시인의 계절

쌍둥이엄마의 베를린살이

등록 : 2016-04-21 17:16 수정 : 2016-04-22 10:31
후드득후드득 빗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시작인가 보다. 어제까지는 찬찬히 온도를 올려서 겨우겨우 20도를 넘어가나 했더니 역시 4월답게 물 한 바가지 확 부어 버린다. 4월 비다. 4월이 드디어 게임을 시작했다.

오늘은 티셔츠 차림으로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을 내일은 파카에 목도리를 두르고 거리에서 만난다. 베를린의 4월 모습이다.

독일 베를린의 4월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악명이 높다.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져 우중충한 베를린 풍경

베를린뿐 아니라 독일의 4월은 악명이 높다. 만우절에 거짓말로 사람들을 놀려 주고 “April April”(아프릴 아프릴) 하며 깔깔 웃는다. 유치원 아이들까지 “4월아 4월아, 제멋대로야. 비 왔다가 해났다가 우박까지 곁들이지…”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4월의 날씨가 이렇게 변화무쌍한 데는 물론 까닭이 있다. 아직 더워지지 못한 북유럽 쪽의 찬 공기와 남쪽의 더운 공기가 교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어른들은 거의 없다. 그러한데도 이토록 원성이 자자한 이유는 날씨가 우리의 일상과 그만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로 옷을 입기가 너무 힘들다. 봄이라고 날씨가 며칠 따뜻해져도 마음 놓고 얇은 옷을 입고 나갈 수가 없다. 독일풍의 우중충한 옷차림새의 이유가 여기 있다. 4월의 하루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종종 시인들의 소재가 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이 있다.

“4월은 4월은 어쩔 줄을 모르네. 통쾌하게 웃던 하늘은 금세 흐리고 비가 오는가 하면 햇살이 비추네. 울다가 웃는 너의 야단법석을 나는 이해할 수 없네. 4월은 4월은 어쩔 줄을 모르네.”

“제비꽃도 떨고 있다. 어제 핀 제비꽃이. 되새도 숲 속에서 숨을 죽인다. 4월 너를 사랑한다. 내 기분도 너와 같다. 오늘은 따뜻하고 내일은 차갑다.”

“안타깝다 안타깝다. 눈까지 내린다. 눈이 내린다 꽃나무 위로. 꿈꾸는 모든 어린 봄 위로.” “마음대로 입어라. 무엇을 입든 4월에는 어차피 잘 못 입었을 테니.”

 

이렇기 때문에 베를린 사람들은 옷을 겹쳐 입는 데 아주 능숙하다. 더우면 하나씩 벗어 던지고 추우면 하나씩 껴입으며 카멜레온처럼 모습을 바꾼다.

한편 농부들의 고충을 생각해 보면 옷 이야기는 꺼내기조차 창피하다. 그런데 4월에 부는 비바람과 눈보라가 농부들에게 꼭 밉상만은 아닌 것 같다. ‘4월의 눈보라는 5월의 꽃보라, 메마른 4월은 방앗간을 멈추게 한다’는 말도 있다. 4월 비가 많을수록 수확량이 많아져서 4월에 치는 천둥은 덕담을 하는 중이고, 4월의 변덕은 신의 은총이라고도 한다. 아무래도 4월의 횡포를 가장 가까이서 견뎌내는 분들인 만큼 우리도 그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시련이 내일의 창고를 넉넉히 채워 줄 거라는 확신만 가져도 아무도 일희일비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천둥까지 가세했다. 덕담을 하나 보다. 그나저나 내일 아침 아이들 학교 갈 때는 또 세 겹씩 입혀 보내야겠네.

글·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