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시민정치’가 시대정신으로 반영됐다

기고ㅣ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등록 : 2018-01-04 14:49

서울시 25개 자치구 구청장들이 제시하는 2018년 역점 사업은 실로 다채롭다. 사업 내용을 보면 개발과 일자리 창출, 도시재생 활성화와 균형발전, 마을민주주의와 자치분권, 사회적 경제, 역사문화 관광, 교육, 복지, 건강, 여성과 아동, 도서관, 그리고 치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치와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 이슈들을 담고 있다. 이는 바람직하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고 각 지역의 비교우위를 살려 구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고자 하는 모습이다. ‘다양성 안에 창의성’이 있을 수 있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서로 배우고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시민정치’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광장의 촛불집회가 웅변하듯이, 이제 일반 시민이 정치의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다. 하지만 ‘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시민정치’는 동네 안에도 있다.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관과 함께 협치하며 동네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점에서 성북구가 일단 눈에 띈다. ‘마을민주주의 정착’을 역점 사업으로 제시하면서 “주민의 일상생활 공간인 마을 안에서 민주주의가 작동되면 자치분권과 균형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이는 지역의 내생적 발전과 대한민국 전역이 골고루 잘사는 균형발전으로 선순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은평구는 2018년을 자치분권 원년으로 삼고 “주민들이 마을공동체에서 예산을 분배하고, 직접 마을의 환경·복지·교육 등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세금 내는 주민들이 내가 사는 마을에 도서관을 만들고, 아이들 등하굣길을 안전하게 가꾸고, 어르신들을 부양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참여해서 토론으로 결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치분권”이라고 선언한다. ‘협동조합 도시’를 내걸고 “주민을 포함한 지역사회부터 공공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협동조합을 지속해서 육성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서대문구도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다른 자치구들은 이러한 ‘시민정치의 정신’을 등한시한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그동안 학생들과 함께 서울시 여러 자치구의 시민정치 사례를 주의 깊게 참여하고 관찰하며 분석해왔다. 구로구 엄마들의 시민정치, 도봉구의 환경 시민정치, 관악구의 관악주민연대와 협력적 거버넌스 사례, 성동구와 종로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한 자치와 협치 사례, 강동구와 금천구의 사회적 경제 사례, 마포구와 동작구 그리고 노원구의 밑으로부터 꿈틀거리는 각종 시민정치 사례 등 곳곳에서 소위 ‘동네 안의 시민정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2017년 10월에 펼쳐진 제2회 마을민주주의 축제 ‘마을민주주의는 협치다-제2회 협치성북 공론회의’ 장면. 성북구 제공

이번 2018년 자치구 역점 사업 조사를 봐도, 비록 성북구와 은평구같이 시민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시민정치 친화적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보인다. 가령 협치(강서구·금천구·강남구), 시민의식 함양(강북구), 사람 중심의 도시(영등포구), 상생과 균형 발전(동대문구·양천구·강서구), “복지, 문화, 환경 등 구정 전 분야에 ‘사회적 건강 개념을 반영한 건강”(종로구), 시민들을 위한 거점도서관(구로구), 도시재생·공익 기여 연계 일자리 창출(금천구)과 같은 개념과 담론이 등장하는 것은 시민참여 제도와 인프라를 마련하고 시민 의식과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정치보다 민생이 우선인가?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고, 개발과 성장 그리고 일자리 창출이 급선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민정치는 시대정신이자 그 자체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나아가 시민정치가 잘돼야 민생도 나아질 수 있다. 시민이 구정에 참여해 건설적인 비판과 감시의 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구 역점 사업의 실현을 돕는 협치를 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진정한 혁신도 시민의 참여·관여·협조가 있을 때 가능하다. 청와대와 여의도의 정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시민정치, 우리의 삶터일터배움터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정치도 중요하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