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떤 마을결혼식, 동네 잔치가 됐다

정릉 교수단지에서 화촉 올린 4월의 신부가 직접 쓴 결혼식 이야기

등록 : 2016-04-28 19:13 수정 : 2016-05-03 17:15
4월23일 정릉 교수단지에서 열린 정원결혼식에서 신부 최연희씨와 신랑 홍수만씨가 결혼선언문 낭독에 앞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이날 결혼식이 열린 ‘하모니가 있는 집’ 정릉 교수단지는 꽃길로 2014년 ‘서울, 꽃으로 피다’ 경관 조성 사업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나는 그동안 그대가 여인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꽃이었구나, 눈부신 꽃이었구나.’

 흐드러지게 피어난 노랑 매화꽃과 철쭉이 어우러져 눈부신 4월, 손으로 수놓은 시구가 마당에 내걸렸다. 활짝 열린 대문으로 모두를 위한 결혼식이라는 무지개 펼침막이 보인다. 4월23일 정릉 마을 교수단지에서 열린 ‘마을결혼식’ 풍경이다.

 주민들이 부산하게 결혼식 준비에 한창인 것이 마을결혼식답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의자를 나르고 요리를 나눠 담는다. 잔치 음식은 가까운 시장에서 거의 마련하고, 잡채 등 몇 가지는 신부 어머니가 손수 만들었다.

 결혼식이 열리는 정원 바로 윗집에서는 하객에게 대접할 부추전을 부지런히 부쳐낸다. 전 부치는 손놀림이 재빠른 ‘금낭화’ 집주인 송홍자씨는 “우리 어릴 적에는 결혼을 하면 으레 이렇게 동네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라며,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이날 결혼식 주인공 신랑·신부가 동네 곳곳을 배경으로 찍은 결혼사진 옆에는 50년은 돼 보이는 이웃들의 흑백 결혼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1965년 서울대 교직원들이 조합을 결성해 정릉동 599번지 일대에 주택단지로 조성한 정릉 교수단지는 1980년대 후반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 왕릉 정릉 옆에 자리한 교수단지는 2008년 재개발 바람이 불기 전까지 단독주택 특유의 정서로 이웃간 정이 돈독했다.

정릉마실 김경숙 대표의 정원 ‘도도화’에서 주민들이 결혼식 하객에게 대접할 부추전을 부치고 있다

결혼식장 대문에는 교수단지 곳곳에서 찍은 신부·신랑 사진이 걸려 있다. 박용태 기자


 재건축 소식에 마을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다. 재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정사모)을 만들었다. 이들은 마을의 특징인 정원을 살려 대문에 화분을 거는 방식으로 재건축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주민이 직접 참여한 인터뷰 영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보내는 등 마을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을 재건축을 막기 위해 시작한 주민운동은 2014년 정릉 마을 역사를 기록하는 ‘정릉마을기록사업’과 정원을 개방하는 축제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로 이어졌다. 일반 대중에게 내 집 대문을 열어 정원을 공개하는 일이니만큼 쉽지 않았다. 첫해 여덟 집이 참여해 문을 열었다. 세 차례 정원 축제가 열리면서 열한 집으로 늘었고, 이 중에는 재건축으로 서로 소원해진 마음이 축제로 풀어진 이웃도 생겼다.

 이날 마을결혼식이 열린 ‘하모니가 있는 정원’ 집주인 방수자씨는 “이 집에서 40년 살았지만 우리 집 대문을 연 건 정원축제가 처음”이라며, “사람들이 평범한 집이라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좋아하는 반응에 가슴이 벅차고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릉은 마을만들기 활동 사례에 단골로 등장한다. 인구 10만명. 내부순환로와 북한산이 교차하고, 30년 거주한 주민이 오래 살았다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만큼 주민 정주성이 높다. 국민대학교와 서경대학교가 있고, 주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월세가 저렴해 신혼부부와 대학생들도 많이 산다.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자연, 골목, 사람, 역사, 이야기가 골고루 갖춰진 정릉은 마을공동체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15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정릉 공동육아는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동안 마을 카페를 차리고 방과후 교실도 꾸렸다. 북한산 정릉계곡 물이 흐르는 정릉천에서 개울장이 열리고, 아이들은 청수도서관 선생님과 함께 하천을 탐방한다. 정릉도서관에서 고사리손으로 마을지도를 그리던 여덟살 아이의 엄마는 “우리 애가 오늘 학교는 안 갔는데 도서관에는 꼭 가야 한다고 했다”며 웃는다.

 마을 주민들이 기자로 참여해 4년째 발행하고 있는 마을미디어 <능말 이야기>가 있고, 서울 1번 버스 종점이던 정릉의 옛이야기를 발굴한 ‘정릉마을기록사업단’은 2013년 서울광장에서 ‘버스 타고 정릉으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주민들이 안내양 복장을 하고 “오라이!”를 외치기도 했다.

 자유롭게 활동하며 필요한 경우 협력하던 정릉 지역 주민모임은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2015년 ‘정릉마을네트워크’(정말넷)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매월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고 활동을 공유하고 있다. 아이 셋의 엄마로 자연스럽게 부모 커뮤니티 일을 시작한 고경남씨는 현재 정릉신시장사업단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다.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 같이 고민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고,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며 정말넷이 힘이 된다고 말한다.

 다양한 마을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정릉은 주목받는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마을만들기 등 다양한 마을공동체 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중복 사업도 생긴다. 지원사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지속가능성과 자생력도 고민할 문제다. 비슷한 활동을 하는 주민모임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성과를 내기 위한 조급함으로 활동이 엉뚱한 데로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도 역시 주민이어야 한다. 지금의 살기 좋은 동네, 공동체가 살아 있는 정릉을 만든 주체가 주민의 열정과 힘이기 때문이다.

 골목에 앉아 있는 어르신을 위해 차 한잔 내오는 동네 찻집 주인할머니가 있고, 마을버스 기다릴 때 앉아 있으라며 의자를 내주는 동네 빵집과 서점이 있다. 아파트 놀이터와 승강기를 동네 주민에게 개방한 중앙하이츠 2차 아파트 김희자 입주자 대표는 “우리 아파트 애들과 함께 공부하는 애들이니까 같이 놀아야 한다. 주차장도 동네에서 필요하면 개방한다”고 말했다. 마을공동체는 지자체의 지원 정책과 예산이 아니라 마을과 이웃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한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4월23일 정릉 교수단지 정원결혼식에서 나는 신부였다. 나는 마을 활동 5년 경력의 정릉동 동주민센터 코디네이터다. 결혼식이라는 개인 의식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잔치로 치르고 싶었다. 이를 통해 정원축제와 정릉 마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도 싶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안 서울에 정릉 같은 마을이 곳곳에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다음 달 20~21일까지 정릉 교수단지에서 네번째 정원축제가 열린다. 마을결혼식을 함께 준비하는 그런 이웃이 궁금하다면 오실 만하다.

최연희 정릉동 마을코디네이터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