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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에게 맞는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노인 복지”

반년 만에 126명 일자리 만든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 박기웅 대표

등록 : 2018-01-11 14:28
성동구, 지난해 7월 주식회사 설립

발생한 수익은 일자리에 재투자

선도기업 사명감에 전 직원 뭉쳐

“어르신 경험·소질 살릴 분야 집중”

성동구 언더스탠드에비뉴의 ‘카페 서울숲’과 ‘엄마손만두 소풍’ 매장 앞에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 직원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카페 서울숲’의 서세원·서경애씨, 박기웅 대표, ‘엄마손만두 소풍’의 황정옥·엄기범씨.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3일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에서 서울숲공원 방향으로 나오자 형형색색의 컨테이너들이 줄지어 있었다. 2016년 성동구가 만들어 최근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언더스탠드에비뉴였다. 각 컨테이너는 공정무역, 새활용(업사이클링) 제품을 파는 가게와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 가운데 젊은이들이 가장 많은 곳이 ‘카페 서울숲’과 ‘엄마손만두 소풍’이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어르신들이 인사를 건넸다. 이곳을 운영하는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는 어르신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동구가 지난해 7월 설립한 회사다.

이곳 직원들은 하루 4시간씩 격일로 근무하는 게 원칙이다. ‘엄마손만두 소풍’에서 근무하는 황정옥(64)씨는 “4시간 격일근무가 우리 나잇대에는 딱 맞는 것 같다”며 “무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받아 간다. 삶의 활력소가 되고 성취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카페 서울숲’의 서세원(63)씨는 “여기 취업한 걸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기웅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 대표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차상위계층 등 생활이 어려운 분들은 노인일자리사업, 공공근로 등이 이미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분에게 일자리 혜택이 돌아가도록 격일근무제를 결정했다”며 “어르신들은 체력 부담이 적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격일근무제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최저임금(7530원)보다 훨씬 높은 성동구 생활임금(9211원)을 적용받고 있다. 성동구 생활임금은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는 설립 반년 만에 골목길과 공원 청소용역, 시설관리와 내부 매점 운영 등 모두 14개 사업장에서 126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오는 4월에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 근처에 완공되는 8층짜리 건물 전체를 위탁 관리하게 된다. 부영주택이 성동구에 공공 기여하는 안심상가다. 박 대표는 신규 사업을 계속 발굴하며 해마다 100명씩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올해 말까지 200명, 2021년까지 500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성동구가 공단이나 재단이 아닌 주식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구의 지속적 재정 투입 없이 주식회사가 창출한 수익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청 출자금 2억1000만원과 민간 출자금 9000만원 등 모두 3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는 보건복지부 고령자친화기업 공모에도 선정돼 운영비 3억원을 확보하며 순항하고 있다. 박 대표는 “지방자치단체가 출자한 주식회사는 동작구에도 있지만, 수익사업을 하는 주식회사는 전국에서 우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노인복지의 새로운 실험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서울 다른 자치구는 물론이고,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박 대표는 “다른 지역으로 퍼져 더 많은 어르신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선도 기업인 우리가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직원들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제일 강조하는 건 위생이다. 어르신들이 일하는 매장이기 때문에 더 신경 쓰고 있다. 음식을 파는 분식점과 카페에서는 유통기한 점검을 철저히 하고 마스크와 유니폼 등 복장도 꼼꼼히 챙긴다. 친절교육은 기본이다.

1982년부터 성북구청, 서울시를 거쳐 성동구청 공무원이었던 박 대표가 지자체 출자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를 맡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고, 큰 그림을 새로 그려나가야 한다는 게 부담이 컸지만, 서울시에서 공기업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도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공기업1팀장을 맡아 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시설관리공단 등 3개 공사와 10개 재단을 담당한 바 있다.

앞으로 박 대표는 어르신의 전직 경험과 소질을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분식점은 어머님들이 지금까지 쌓아오신 노하우와 경험을 실현하고 살릴 수 있고, 젊은이들도 ‘엄마가 빚은 손만두 같다’며 반응이 좋습니다. 최근 어르신들은 커피에 관심이 많고, 구청이 운영하는 바리스타 교육과정도 인기여서 ‘엄마손만두 소풍’과 ‘카페 서울숲’은 올해 안에 3호점까지 각각 늘리려고 합니다.”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외부에서 다양한 사업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올해 시범 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는 아이 돌봄 사업도 민간 기업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맞벌이 부부가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겼을 때 아이를 맡아주는 서비스라 업체가 얼마나 믿을 만한 곳이냐가 중요하죠. 우리 회사는 성동구가 설립한 공공기관이다보니 함께하자는 민간 기업이 많습니다. 이 밖에도 어르신들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이 보입니다. 최근 새롭게 뜨는 정리수납 컨설턴트도 꼼꼼하고 경험 많은 어르신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 같아요. 최고의 노인복지는 어르신들에게 맞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고령화 시대의 지속가능한 노인복지 모델을 만드는 데 우리 회사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