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탐욕스런 벼슬아치

육식자비(肉食者鄙) 고기 육, 먹을 식, 놈 자, 비루할 비

등록 : 2018-01-25 14:29
글자 그대로 풀면, ‘고기 먹는 사람은 비루하다’는 말이다. 고기를 먹기 어려웠던 고대 중국에서 자유로운 ‘육식’은 신분과 벼슬이 높은 사람의 특권에 속했다. ‘비’(鄙)는 속되고 식견이 좁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육식자비’는 “고관대작, 벼슬아치들은 사욕이 많고 식견은 짧은 사람들”을 은유한다.

출전은 <춘추좌전>이다. 노나라 장공 10년에 이웃한 제나라 군사들이 노나라 땅을 침범해 노장공이 응전에 나서자 조귀라는 그 지역의 사(士)가 계책을 내놓겠다며 임금에게 알현을 청했다. 그때 향리 사람들이 “육식하는 자들이 다 알아서 할 텐데 대부(大夫)도 아닌 자가 왜 끼어들려 하는가?”라며 비웃자, 조귀는 “고기 먹는 자들은 욕심만 많지 물정을 몰라 원대한 계책을 세우지 못한다”고 응수했다. 귀족들은 제 앞가림에만 급급해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하니 자기가 나서서 임금을 돕겠다는 것이다.

이때 장공도 신분을 따지지 않고 조귀의 보좌를 받아들여 마침내 제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장공이 승전의 비결을 묻자 조귀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용기로 하는 것입니다. 적의 용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제때에 진군의 북을 쳐서 우리 군사의 용기를 충만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적군의 수레바퀴 자국이 어지럽고, 그들의 깃발이 누웠음을 보고 매복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과감하게 쫓을 수 있었습니다.”

조귀의 ‘출세’ 이야기는 당시 중국이 낮은 계층의 사람도 능력이 있으면 등용되어 지배계급으로 진출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노장공 23년 조에 조귀가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직간하는 신하의 모습이다. 노장공이 제나라에 가서 성대한 열병식을 구경하고 싶어 하자, 조귀가 임금은 함부로 거동하는 것이 아니라며 반대하고 있다. “예는 백성을 정돈하고 법도와 재정을 절도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임금이 먼저 예에 맞지 않는 거동 기록을 남기게 되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고 본받겠습니까!”

10여 년 전 향리의 일개 선비였던 조귀가 임금의 근신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도 소위 출세해서 육식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다만 직간의 내용을 보면 비루한 육식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육식자라는 말은 반드시 비난과 경멸의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점차 탐욕스럽고 무능한 벼슬아치를 지칭하게 되었고, 때로는 벼슬하는 자가 자신의 무능력과 용기 없음을 자괴할 때도 쓰였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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