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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성찰’을 논의하다

남산예술극장 올해 시즌 프로그램 공개

등록 : 2018-01-25 14:30

‘블랙리스트 시대’에 연극인들을 위한 굳건한 피난처 구실을 해온 남산예술극장(극장장 우연)이 지난 17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8편의 올해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우연 극장장은 <처의 감각>(고연옥 작가·김정 연출, 4월5~15일)으로 출발하는 올해 8개 작품을 관통하는 말로 ‘성찰’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참혹한 블랙리스트의 광풍은 이제 모두 지나간 상태다. 그러나 ‘성찰’은 ‘블랙리스트 시대’가 남긴 상처를 쓰다듬으면서도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약한 모습도 더 자세히 살펴보자는 의미라고 한다. 우 극장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겪은 블랙리스트 등에 대해 작가 나름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내면적 진상 조사”라고 평가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연극전용극장인 남산예술센터가 성찰을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블랙리스트 시대를 거부하는 상징적 ‘방주’ 구실을 해왔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시대인 2016년, 남산예술센터는 ‘세월호’를 다룬 극 <비포 애프터>의 이경성 연출작을 상연작에 포함했고,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 대상작으로 선정했다가 이후 연출자에게 작품 포기를 강요했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박근형 극·연출)도 끌어안은 바 있다.

올해 상연작을 보면 성찰과 함께 ‘다양성’도 중요한 열쇳말로 꼽을 만하다. 다양성과 관련해서는 남산예술극장에서 처음으로 인형극을 올린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오는 4월27일~5월7일 무대에 오를 <손 없는 색시>(경민선 작가·조현산 연출)가 그 주인공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여인의 손이 더 이상은 하기 싫다고 도망가버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인형극의 장점인 상징표현을 중심으로 표현한다.

이 밖에 <그믐, 또는 당신이 기억하는 방식>(연출 강량원, 9월4~14일)은 장강명 소설가의 동명 소설을 정진세 작가가 각색한 것이다. 또 <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12월5~7일)은 이경성 연출가가 일본·홍콩 연출가와 함께 벌이는 국제공동제작 프리-프로덕션이다. 올해 남산예술극장의 시즌 프로그램이 얼마만큼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연극의 지평을 넓혀갈지 주목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