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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청에선 ‘민원 핑퐁’ 안 통한다
지난해 3월 공무원배심원제 도입 애매한 민원사항 소관 부처 배정
등록 : 2018-02-01 15:50
1월24일 오후 구로구청 평생학습관에서 올해 첫 공무원 배심원단 업무 조정회의가 열렸다. 배심원단은 책상 앞에, 부서 담당자들은 뒷줄에 앉아 있다. 주택과의 담당 팀장이 손을 들어 가림막이 건축물이 아닌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건설관리과의 생각은 달랐다. 건축법 2조의 건축물 정의에 따르면 건축물은 지붕과 기둥 또는 벽이 있는 것과 이에 딸린 시설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가림막과 같이 공중에 있는 건축 부속시설물은 건축에 부착된 고정시설물로 도로를 점용한 것으로 볼 수 없기에, 이 경우 사유지의 건축물에 있는 부속시설물의 위반으로 사유지를 관리하는 주택과 소관이라고 본다”라고 건설관리과 담당자가 강조했다. 서로 자기 부서 주장을 하다 보니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만 말씀하셔도 되겠다. 일단 나가시고 배심원단에서 논의하겠다”고 배심원단이 단호하게 제지했다. 관련 부서 담당자들은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나갔다. 배심원단은 민원 발생이 도로 사용의 불편함에서 비롯된 점을 주목했다. 민원인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로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든 원인을 처리해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림막이 도로의 공간 일부를 침해해 물건을 판매하므로 점용허가와 무단으로 노상 적치물 판매 행위를 단속하는 부서인 건설관리과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휴식 없이 두 번째 안건 조정회의에 곧바로 들어갔다. 이번 안건은 음식점 악취 민원이다. 아파트 단지 안 치킨집에서 나는 냄새와 소음으로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소음은 환경과에서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라 처리했다. 문제는 냄새였다. 환경과에서는 “음식점 냄새는 악취로 규정한 법이 없어 처리할 방법이 없다”며 악취는 위생과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악취방지법에 명시되어 있는 악취(44개)에 음식 냄새는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악취라고 다 규제할 수 없다. 일정 시설 규모 이상의 요건에 해당해야 한다. “악취방지법에서 명시하지 않은 대상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음식 냄새를 악취로 규정하는 대한민국 법은 어디에도 없다”며 음식점을 지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부서에서 관리하는 게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위생과는 “음식점이라고 무조건 위생과 소관이라고 보는 건 잘못이다”고 주장한다. 주장의 근거를 한 장으로 요약한 자료를 미리 준비해 배심원단에게 배포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위생과 주장의 근거는 세 가지다. 우선 구로구 행정기구 설치 조례에 따르면 생활복지국 안에 환경과가 있고 악취 방지 업무가 명시되어 있다. 또 환경기본조례에서는 생활환경에 대한 정의와 악취 등으로 사람의 건강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상태를 환경오염이라고 정했다. 악취방지법에 따르면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악취 배출시설 외에서 나오는 생활 악취를 줄이기 위해 대책을 세워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민원은 여러 차례 부서 이첩이 되어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관련 부서 담당자들도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대 부서에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위생과 팀장은 “담당자가 이 민원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다”며 “음식점 지도 권한은 식품위생법 권한이지 환경법에 근거한 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 악취는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오염이 되고 있기에 변화하는 민원 욕구를 고려해 배심원단이 현명하게 판단해주길 기대한다”고 읍소했다. 배심원단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음식 냄새는 원인이 식당에 있으므로 위생과에서 맡아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음식점 개업 신고를 할 때 위생과에서 배기시설 강화를 안내하면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것이다. 다만 식품위생 제재 규정이 없어, 현행법으로는 행정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강월명 배심원(여성정책과 여성지원팀장)은 “핑퐁 민원들은 대체로 명확한 법 제도가 없어 생기기에, 배심원단이 주관 부서를 정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법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상급기관에 개선 방향을 건의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구로구 핑퐁 민원의 ‘애정남’, 공무원 배심원단은 현재까지 6건의 민원을 처리했다. 자치구 민원의 대부분은 서울시 응답소(120 다산콜센터)에서 일괄 접수하고 관련 부서를 임의로 지정해 보낸다. 해당 부서가 이의신청하면 감사실에서 재지정한다. 구로구는 지난해 응답소 접수 민원 5만6000건을 처리했고, 이 가운데 2개 부서 이상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 민원이 2200여(4%)건이었다. 이 중 부서 조정이 필요한 민원이 110여 건에 이르렀다. 2~3일에 1건씩 생기는 꼴이다. 감사실의 조정에서도 합의를 못 이룬 6건을 배심원단 회의에서 최종 정리했다. 문 팀장은 “핑퐁 민원의 주관 부서를 위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면 반발도 있는데, 배심원단이 구정 전체의 시각에서 어느 부서가 적정하겠다고 판단해주는 건 효과적이고 납득할 만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