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나에게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물어보세요”
18년차 주부 “결혼 전 자상했던 남편, 결혼 뒤 비난만 해요”
등록 : 2016-04-28 20:52 수정 : 2016-05-20 12:12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A. 고통의 시간을 꿋꿋이 견디고 감내하며 저력을 키워온 사람들을 저는 존경합니다. 그사이 그들에겐 고통을 직면할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상처로 생긴 굳은살이 훈장처럼 보입니다. 나무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문제와 제대로 직면해야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남편이 왜 그랬을까, 내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내용의 질문은 사실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들이죠.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 결혼하는 게 아니고, 결혼해서 어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나무님 부부도 그랬을 겁니다.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어린, 그래서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소녀와 소년이 만난 것이지요. 부모님의 지지와 사랑에 보답하려는 착한 소녀와 엄마를 지키느라 유년기를 잃어버린 소년이 결혼했습니다. 소녀는 인간의 삶에서 밝음의 영역에 속해 있었고, 소년은 세상의 어둠을 너무 많이 지켜본 아이였습니다. 특히 소년은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엄마를 지키면서 격심한 분열을 겪게 됩니다. 하나는 엄마의 시선이고, 하나는 아빠의 시선이지요. 엄마와 동일시됐을 때 소년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아빠의 시선으로 보면 엄마는 혐오스럽고 답답한 사람이었겠지요. 소년의 마음속에도 무능력한 엄마에 대한 분노가 자라고 있었을 겁니다. 어린 아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그 보호가 필요했으니 말이지요. 엄마에 대한 염려와 분노는 그대로 아내에게 향했습니다. 소년은 아내가 엄마처럼 노력하지도, 문제를 직면하려고 하지도 않고, 무능력하다고 길길이 뜁니다. 늘 술취한 아빠가 집에 들어올 때 아들이 느꼈던 심정으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엄마, 피해요. 아빠에게서 도망쳐요. 그렇게 무기력하게 굴지 말고, 혼자 나가서 씩씩하게 살아 보란 말이에요! 반면에 소녀는 세상의 어둠이 두려웠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건 옳지 않고 나쁜 것이니까요. 그래서 소년이 하는 말이 아득하게 느껴졌고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소년도 자신이 왜 아내를 괴롭히는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잘 몰랐을 거예요. 알았다면 그렇게 오래, 자기 아내를 비난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상대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끝없이 상대를 비난합니다. 불편한데 그 불편함을 해소할 방법을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상대에게 그 책임을 떠넘깁니다. 자신의 문제가 자기 안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튼 착한 소녀는 수많은 시간을 남몰래 울었을 겁니다. 자기희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굴욕도 감내했습니다. 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문제와 직면할 힘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특유의 강한 힘과 저력으로 소녀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어느덧 어른이 되었습니다. 나무님, 우선 남편의 말을 들어 보세요. 그가 당신을 비난하거든 말을 중단시키세요. 나를 비난하지 말고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게 뭔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말해 봐요 하고 말하세요. 그의 말을 충분히 듣고, 당신이 놓쳤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당신도 이야기하세요.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외롭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그 많은 시간들을. 그에 대해 길고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으세요. 그리고 그를 더 지켜보세요. 그가 진짜 변한 건지 아닌지. 그다음 전적으로 당신의 판단으로 미래를 결정하세요. 그가 요구한 것들을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와 기꺼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말입니다. 오롯이 당신의 행복과 존엄을 위해 결정하세요. 이제 남편의 불행한 과거도, 당신의 부모님도, 자식도 그 결정의 주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박미라 심리상담가·<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 상담을 원하시는 독자는 박미라님 이메일(blessmr@hanmail.net)로 연락해 주세요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