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전 그날의 함성을 따라가보자

조계사~천도교중앙대교당~승동교회~탑골공원까지 두 시간 반 코스

등록 : 2018-02-22 14:28 수정 : 2018-02-22 15:02
3·1 운동 100주년 앞두고

서울은 운동 흔적 재정비 한창

그길을 따라 새 봄을 느껴보자

종로구 조계사는 옛 보성사(왼쪽 아래 흑백사진) 터에 자리 잡았다. 보성사는 1919년 2월27일 ‘독립선언서’ 2만1천 장과 3월1일 <조선독립신문> 1호 1만5천 부를 비밀리에 인쇄했던 인쇄소다.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같은 해 6월 일제가 불을 질러 사라졌지만, 마당에 회화나무 한그루가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굽어본다.

“여기 ‘3·1운동’ 터가 있다는데, 어딥니까?” 미리 답사를 했어도 능청스레 묻는다. 수위실 담당자들마다 뿌듯하게 웃으며, 문을 활짝 열어주는 환대가 재미난 덕이다. 교회, 교당, 사찰까지 종교를 가로질러 거리 속 굳은 빗장이 풀려나갔다. 99년 전 독립 열기의 함성을 몸으로 느끼며 걷기 좋은 새봄을 미리 만끽해본다.

‘독립선언서’ 따라 걷는 봄날의 서울 여행


3·1운동 100주년을 한 해 앞둔 지금, 서울은 3·1운동 흔적을 재정비하는 데 한창이다. 도시 여행자들과 답사객들, 주말 나들이를 계획하는 가족들에게도 길 하나가 더해진 셈이다.

3·1운동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보통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우뚝 선 회화나무 앞에서 시작한다. 1919년 2월27일 오후 6시, 막 조판을 끝낸 ‘독립선언서’ 2만1천 장을 비밀리에 인쇄한 ‘보성사’가 있던 자리다. 2층짜리 근대식 벽돌건물로 지은 보성사는 3·1운동이 한창이던 6월에 일제가 불을 질러 없애버렸다. 보성사 바로 옆에 있던 회화나무 한 그루가 백년 몸집을 키워 살아있는 표식이 됐다. 현 조계사 뒤편 수송공원으로 가면 보성사 표지석과 보성사 사장 이종일 동상, 독립선언서 기념조형물 등을 볼 수 있다.

종로경찰서 뒤편에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은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처음으로 배포한 지점이다. 입구의 ‘독립선언서 배포처’ 표지석이 그날의 긴장과 열망을 생생히 알린다. 1919년 당시 조선 인구 1900만 명 중 천도교인이 300만 명이었다. 일제의 살벌한 감시 속에서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거금은 독립운동 자금과 훗날 상해임시정부, 만주독립운동자금으로까지 쓰였다.

1912년 세운 승동교회

인사동거리 골목 깊숙이 15분쯤 걸어 들어서면 학생단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알려진 ‘승동교회’가 있다. 3·1운동 학생단이 만세시위에 앞서 조직 체계를 정비하고, 독립선언서 배포 등 역할을 분담한 곳이다. 1912년에 세운 승동교회는 수리와 증축을 거쳐 옛 모습을 지켰고, 한켠에 ‘역사관’을 마련해 3·1운동과 교회의 100년 역사를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다시 큰길가로 나와 ‘홰나무길’(구태화관길)로 방향을 잡으면 ‘태화빌딩’(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 바로 보인다. 1919년 3월1일 오후2시,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삼창을 외친 ‘태화관’ 터다. 오늘날 건물 앞에는 ‘3·1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과 기미독립선언서 전문을 새긴 동판이 놓였다. 1층 로비에 걸린 ‘민족대표 33인의 기록화’가 날마다 답사객을 맞는다.

태화빌딩 1층 로비에 걸린 ‘민족대표 33인의 기록화’

탑골공원으로 향할 차례다. 1919년 3월1일, 잇따라 모여든 학생들과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 출발지다. 공원 중심에는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과 3·1운동 부조물, 3·1독립선언기념탑, 한용운 기념비가 놓였다. 스물넷 청년 한위건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탑골공원에서 보신각 광장과 덕수궁 대한문까지 시가행진을 펼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보신각에서는 3월1일마다 그날의 타종을 재현한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써내려간 독립선언서 글귀대로 ‘봄기운 가득한 천지’가 왔음을 해마다 알리고 있다.

탑골공원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인사동거리를 중심으로 3·1운동 주요거점을 묶어 천천히 걸으면 약 두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손병희, 한용운, 김성수 선생 등 독립운동가 집터가 있는 북촌 권역과 독립운동가들이 3·1운동 거사를 논의한 중앙고등학교 숙직실(중앙고보 숙직실 터),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 특파원의 집 ‘딜쿠샤’까지 돌아보려면 넉넉히 한나절을 잡으면 된다.

3·1운동 99주년 맞아 곳곳 행사 열려

3·1운동 99주년을 맞아 서울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종로구는 2월28일 ‘3·1운동 독립선언서의 길을 걷다’ 행사를 열어 서해성 교수와 3·1운동 중심지를 탐방한다. 3월1일에는 보신각까지 시가행진을 펼친다.

인사동거리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

강북구는 우이동 봉황각 일원에서 ‘3·1독립운동 재현 행사’를 연다. 오전 10시 북한산 도선사에서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추모 타종을 시작으로, 도선사에서 봉황각까지 2㎞ 구간에서 길놀이와 태극기 거리행진, 독립선언문 낭독, 만세 삼창 등 독립운동 기념행사가 이어진다.

은평구는 3월1일까지 ‘진관사 태극기’(등록문화재 제458호)를 가로기로 게양한다. 또한 3·1절 특집으로 다음 웹툰에서 이현세 화백이 그린 백초월 스님 일대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그 밖에 서울도서관에서는 박건웅 작가의 <제시이야기> 특별전을 연다. 박 작가의 그림과 손글씨가 어우러진 만화 <제시이야기>는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독립운동 중 딸 제시의 성장 과정을 기록한 육아일기 <제시의 일기>(1938.7~1946.4.29)를 만화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 공군기 공습을 받으며 이동한 과정과 실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3월11일까지.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