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기차 기다리며 고독 속에서 시상 가다듬어
철도건널목 지키는 늦깎이 시인 김영한씨
등록 : 2018-02-22 15:23
“정년퇴직 뒤 학창 시절 꿈 시인 되려
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에 입학
등단 도전은 인생 후반전 최고의 선택
더 깊어진 시로 두 번째 시집 낼 것”
정년퇴직 뒤 오히려 청운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최고의 인생 2막 주인공이다. 더욱이 그 이룬 꿈이 시인이라면 얼마나 멋진가? 백발의 늦깎이 시인이 레일마크가 붙은 안전모를 쓰고 매일 철도건널목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또한 얼마나 의미로운 일상인가?
한강 북단과 경부선 그리고 경의중앙선 철길이 삼각을 이루는 섬 같은 서부이촌동에서 용산으로 건너가는 철도건널목이 ‘백빈건널목’이다. 용산역에서 이촌역 방향으로 6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백빈(백씨 성의 빈이 궁궐에서 나와 산 곳이라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건널목의 김영한(64·필명 김유) 관리원은 문학지 계간 <문예춘추>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은퇴 후 용기를 내 등단 과정에 도전한 것이 내 인생 후반전 최고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2012년 전국택시공제조합 감사실장으로 정년퇴직한 김씨는 이듬해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에 입학해 학창 시절의 꿈이었던 시인의 길에 다시 나섰다. 타고난 문재와 오랜 습작에 힘입어 2014년 등단에 성공했고, 지난해 여름에는 소망하던 첫 시집 <귀뚜라미망치>(시와표현)를 펴냈다. 표제시 ‘귀뚜라미망치’는 그가 재취업 일터로 철도건널목을 택한 ‘속셈’을 잘 드러낸다. ‘귀뚜라미망치’는 레일이나 열차 바퀴를 직접 두드려 소리를 듣고 안전점검을 하는 공구다. “귀뚜라미망치로 레일을 두드리다 보면/땡땡 철길 속에선/무수한 별들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같은 구절은 철도 일을 해보지 않고선 건질 수 없다. “철길과 열차는 흔히 인생에 비유되지 않나요? 날마다 철도건널목에서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며 저 스스로는 고독과 고립 속에서 시상을 가다듬고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으니, 시를 쓰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백빈건널목은 서소문건널목, 돈지방건널목, 서빙고건널목 등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땡땡 거리’다. 종소리로 열차가 들어오는 경고음을 내기 때문에 철도건널목에 붙은 별명이다. 백빈건널목은 경원선과 전철, 고속열차까지 하루 360번 열차가 통과한다. 심야 시간을 빼면 1~2분에 한 번 꼴로 쉴 새 없이 열차가 지나가고 차단기가 오르내린다. 철도건널목에는 보통 관리원 6명이 3조 2교대로 24시간 근무하며 건널목 사고를 예방한다. 철도건널목 일대는 철길로 지역이 나뉘는 탓에 개발이 정체돼 옛 동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기 일쑤다. 백빈건널목 주변도 옛날식 방앗간, 선술집, 철물점 등이 자리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0~80년대로 돌아간 듯하다. 파주가 고향인 김씨는 가난한 형편에 대학 영문과 입시에 연거푸 실패하고 군대를 다녀와 공무원이 됐다. 군청과 병무청 등에서 근무하다 택시공제조합으로 자리를 옮겨 30여 년을 주로 회계와 감사 분야에서 일했다. 방송대에서 경영학·경제학·법학을, 한양대 대학원에서 보험 경영을 전공해 석사까지 마쳤다. 정작 하고픈 문학 공부는 “가장으로서 가족 부양의 의무를 마친 후에나” 시작할 수 있었다. 회계감사 경력을 살려 재취업할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철도건널목관리원을 선택한 것은 늦게 이룬 문학의 꿈이 노년의 치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시인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4년 5월 먼저 은퇴한 직장 동료의 소개로 철도건널목에 선 그가 지금까지 쓴 시는 무려 650여 편. 그 가운데 400여 편이 정년퇴직 이후에 쓴 것이라고 한다. ‘귀뚜라미망치’ 같은 작품은 “한 천 번쯤 고쳐 썼다”고 할 만큼 좋은 시를 향한 열정이 대단하다. 철도건널목관리원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을 묻자, 김 시인은 돈지방건널목에서 일할 때의 일화를 들려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지, 매일같이 새벽 2~3시면 백발의 할아버지가 자전거 뒤에 할머니를 태우고 건널목을 건너갑니다. 자전거가 언덕길에 이르면 허리가 90도로 휜 할머니가 내려 자전거를 뒤에서 밀며 언덕을 올라갑니다. 언덕길을 다 올라가서는 할아버지가 다시 할머니를 태우고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새벽어둠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저것이 인생인가 싶어 볼 때마다 눈물이 나더군요.” “어스름 달빛 아래/동행과 언덕을 기는 동그라미/고비를 못 넘긴 시간이/뒷걸음을 친다//동(同)은 앞바퀴가 되고/행(行)은 뒷바퀴가 되어/밀고 당기는 금슬에/고달픔이 선뜻 물러나고/저 혼자 우직이 길을 오르고 있다/깔딱! 고개에 이르러/갈 지(之) 자 하루를 내리고/동행을 다시 태우고 가는 동그라미//새벽을 가르는 멀어지는 실루엣/다가오는 애잔함(‘동행’ 전문) 철길에서 다시 인생을 배우며 나를 찾아간다는 김 시인은 내년이면 두 번째 정년(관리원 정년이 65살이다)을 맞이한다. “그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보다는 지금 일에 더욱 충실하고 싶습니다. 철길 안전을 잘 지키고, 시도 많이 쓰고요. 내년에는 두 번째 시집을 내서 동인들에게 한결 더 깊어진 제 문학을 자랑하고 싶기도 합니다. 욕심인가요? 하하.” 웃음 사이로 또 땡땡 소리가 울리고 열차가 지나간다. 글·사진 이인우 선임기자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용산역과 이촌역 사이에 있는 백빈건널목에서 관리원으로 일하는 김영한(64)씨는 정년퇴직을 하고 예순의 나이에 등단해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늦깎이 시인이다. 열차가 하루 360차례나 오가는 철도건널목은 그의 소중한 일터이자 시상을 캐는 문학의 현장이다.
2012년 전국택시공제조합 감사실장으로 정년퇴직한 김씨는 이듬해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에 입학해 학창 시절의 꿈이었던 시인의 길에 다시 나섰다. 타고난 문재와 오랜 습작에 힘입어 2014년 등단에 성공했고, 지난해 여름에는 소망하던 첫 시집 <귀뚜라미망치>(시와표현)를 펴냈다. 표제시 ‘귀뚜라미망치’는 그가 재취업 일터로 철도건널목을 택한 ‘속셈’을 잘 드러낸다. ‘귀뚜라미망치’는 레일이나 열차 바퀴를 직접 두드려 소리를 듣고 안전점검을 하는 공구다. “귀뚜라미망치로 레일을 두드리다 보면/땡땡 철길 속에선/무수한 별들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같은 구절은 철도 일을 해보지 않고선 건질 수 없다. “철길과 열차는 흔히 인생에 비유되지 않나요? 날마다 철도건널목에서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며 저 스스로는 고독과 고립 속에서 시상을 가다듬고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으니, 시를 쓰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백빈건널목은 서소문건널목, 돈지방건널목, 서빙고건널목 등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땡땡 거리’다. 종소리로 열차가 들어오는 경고음을 내기 때문에 철도건널목에 붙은 별명이다. 백빈건널목은 경원선과 전철, 고속열차까지 하루 360번 열차가 통과한다. 심야 시간을 빼면 1~2분에 한 번 꼴로 쉴 새 없이 열차가 지나가고 차단기가 오르내린다. 철도건널목에는 보통 관리원 6명이 3조 2교대로 24시간 근무하며 건널목 사고를 예방한다. 철도건널목 일대는 철길로 지역이 나뉘는 탓에 개발이 정체돼 옛 동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기 일쑤다. 백빈건널목 주변도 옛날식 방앗간, 선술집, 철물점 등이 자리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0~80년대로 돌아간 듯하다. 파주가 고향인 김씨는 가난한 형편에 대학 영문과 입시에 연거푸 실패하고 군대를 다녀와 공무원이 됐다. 군청과 병무청 등에서 근무하다 택시공제조합으로 자리를 옮겨 30여 년을 주로 회계와 감사 분야에서 일했다. 방송대에서 경영학·경제학·법학을, 한양대 대학원에서 보험 경영을 전공해 석사까지 마쳤다. 정작 하고픈 문학 공부는 “가장으로서 가족 부양의 의무를 마친 후에나” 시작할 수 있었다. 회계감사 경력을 살려 재취업할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철도건널목관리원을 선택한 것은 늦게 이룬 문학의 꿈이 노년의 치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시인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4년 5월 먼저 은퇴한 직장 동료의 소개로 철도건널목에 선 그가 지금까지 쓴 시는 무려 650여 편. 그 가운데 400여 편이 정년퇴직 이후에 쓴 것이라고 한다. ‘귀뚜라미망치’ 같은 작품은 “한 천 번쯤 고쳐 썼다”고 할 만큼 좋은 시를 향한 열정이 대단하다. 철도건널목관리원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을 묻자, 김 시인은 돈지방건널목에서 일할 때의 일화를 들려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지, 매일같이 새벽 2~3시면 백발의 할아버지가 자전거 뒤에 할머니를 태우고 건널목을 건너갑니다. 자전거가 언덕길에 이르면 허리가 90도로 휜 할머니가 내려 자전거를 뒤에서 밀며 언덕을 올라갑니다. 언덕길을 다 올라가서는 할아버지가 다시 할머니를 태우고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새벽어둠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저것이 인생인가 싶어 볼 때마다 눈물이 나더군요.” “어스름 달빛 아래/동행과 언덕을 기는 동그라미/고비를 못 넘긴 시간이/뒷걸음을 친다//동(同)은 앞바퀴가 되고/행(行)은 뒷바퀴가 되어/밀고 당기는 금슬에/고달픔이 선뜻 물러나고/저 혼자 우직이 길을 오르고 있다/깔딱! 고개에 이르러/갈 지(之) 자 하루를 내리고/동행을 다시 태우고 가는 동그라미//새벽을 가르는 멀어지는 실루엣/다가오는 애잔함(‘동행’ 전문) 철길에서 다시 인생을 배우며 나를 찾아간다는 김 시인은 내년이면 두 번째 정년(관리원 정년이 65살이다)을 맞이한다. “그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보다는 지금 일에 더욱 충실하고 싶습니다. 철길 안전을 잘 지키고, 시도 많이 쓰고요. 내년에는 두 번째 시집을 내서 동인들에게 한결 더 깊어진 제 문학을 자랑하고 싶기도 합니다. 욕심인가요? 하하.” 웃음 사이로 또 땡땡 소리가 울리고 열차가 지나간다. 글·사진 이인우 선임기자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