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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과 아파트 노동자 사이, 관리소장의 동분서주

경력 15년 이상임 관리소장의 하루 김보근 선임기자 동행 취재

등록 : 2018-02-22 15:42
이상임 송파구 ㅍ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지난 8일 오후 아파트 내에 있는 경비초소를 방문해 경비반장에게 근무일지를 전달하고 있다. 근무일지에는 ‘주차단속 강화’ 등 관리소장의 지시사항과 이에 대한 경비원들의 이행사항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설을 앞둔 지난 8일 아침 9시. 송파구의 호젓한 곳에 자리한 ㅍ아파트 관리사무소에 40대 여성이 들어선다. ‘누군가?’ 싶은 것도 잠시, 그는 익숙한 자세로 책상 앞에 앉더니 여러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아파트의 관리를 책임진 이상임(47) 관리사무소장이다. 15년 경력의 이 소장은 일과를 이렇게 다양한 서류를 처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아파트 생활이 전기·상하수도나 장기수선계획에 따른 건물 보수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주차·택배·분리수거 등 주민생활 관련 소프트웨어에 이르는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유지되기 때문에 관련 서류들도 다양합니다.”

이 소장은 이런 다양한 분야에 대응하기 위해 주택관리사는 물론 공인중개사, 전기기사, 소방기사와 같은 전문 자격증도 땄으며, 2013년 고려대 공학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단다.

이날 기자는 이 소장의 ‘일과’를 좇았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최저임금 문제 등 아파트 노동자 문제’를 ‘아파트 노동자의 시각’에서 취재하기 위해서다. 주택관리사협회 부설 한국주택관리연구원(원장 하성규)의 소개로 첫 통화를 했을 때, 그는 흔쾌히 “찾아오라”고 했다.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의 입김이 아파트 노동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는 현실에서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라 생각하며 약속을 잡았다.

이 소장의 책상 옆 벽에는 ‘아파트 관리기구 조직표’가 걸려 있다. 아파트 규모는 10개동 625세대, 노동자는 모두 18명이다. 이 소장과 함께 관리사무실에 상주하는 관리과장과 경리대리, 그리고 시설관리를 책임진 기전(기계·전기)팀이 3명, 경비원 6명, 미화원 6명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조직표에 표시된 경비원과 미화원 이름표가 둘씩 비어 있었다. 경비원·미화원은 6명씩인데, 이름표 자리는 8개씩이라니?

“임금 상승 등에 대비하느라 미화원은 2016년, 경비원은 2017년 용역업체 바꿀 때 이미 2명씩 감원했어요.”

이 소장은 아파트 경비노동자 감원 문제는 2009년쯤부터 진행돼온 문제라 한다. 한국주택관리연구원이 올해 초 펴낸 <아파트 노동자의 현실>(부연사 발간)에서 정수영 연구원은 “경비 인력이 2014년 기준 아파트당 평균 7.42명에서 1년 만인 2015년 5.87명으로 1.55명이나 줄었을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올해 ㅍ아파트에서는 다행히 경비원이나 미화원 해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임금이 문제였다. 지난해 월급이 185만여원이었고 올해 최저임금이 16.4% 올랐으므로, 단순 계산을 해도 올해 30만원쯤 올라야 정상이다. 그런데 실제 인상액은 이의 10%에도 미치지 않는, 2만4천원 정도에 그쳤다.

야간 휴게시간을 길게 늘였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4시간이던 야간 휴게시간을 올해부터는 7.25시간으로 늘렸다. ‘휴게시간 늘리기 꼼수’가 적용된 것이다.

이 소장은 “올해 초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대상을 월 보수액 190만원 미만으로 설정한 것이 이런 결정에 큰 악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85만여원에서 4만여원만 올라도 190만원이 넘어, 경비원 1인당 월 13만원(연 156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못 받을 상황이 되자, 190만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오르도록 휴게시간을 조정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이런 문제점을 의식한 정부는 지난 6일 청소·경비원 등의 일자리 안정자금 상한액을 210만원으로 높였다. 하지만 이 소장은 ㅍ아파트의 경우 “그 이전에 결정된 올해 임금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전 업무를 마친 낮 12시. 점심시간이지만 이 소장과 관리소 직원들은 사무실을 뜨지 않는다. 대신 사무소에서 지은 밥과 집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점심시간에도 주민들의 문의전화가 적지 않게 걸려와 식당에 가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은 분명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휴게시간이지만, 아파트 노동자는 제대로 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오후 1시30분. 이 소장은 근무일지를 전달하려고 이날 근무조 중 경비반장이 있는 초소를 찾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경비반장에게 “임금이 너무 적게 올라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대답은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설사 섭섭한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는 처지인 것도 사실이다. 경비반장은 이미 지난해 7월 경비용역업체가 바뀌면서 ‘해고의 고비’를 한 차례 넘겼다. 당시 경비용역을 새로 맡은 업체는 8명이던 기존 경비원을 면접을 봐서 3명만 고용승계했다. 경비반장은 ‘다행히’ 승계자에 속했다. 용역업체는 여기에 3명을 새로 채용해 6명 체제로 만들었다. 경비반장은 살아남았지만, ‘8인 경비원 체제’에서 ‘6인 경비원 체제’가 되면서 노동강도는 그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현재 ㅍ아파트는 1초소와 2초소에서 경비원이 수동으로 자동차 차단기를 올려주는 ‘수동 차량차단기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동차단기가 앞으로 ‘자동 번호인식 차단기’로 바뀔 수 있다. 자동 번호인식 차단기 두 대 설치 비용은 6천만원 상당인데, ㅍ아파트에서는 주차료 등을 적립해 이미 2억원쯤 관련 기금을 마련해놓았다. 차단 시스템이 자동으로 바뀌면 경비노동자가 더 줄어들 수 있다 한다.

이상임 송파구 ㅍ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지난 8일 오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변전실에서 특고압 변전기를 살펴보고 있다(사진 왼쪽). 이 소장이 가장 많은 시간 동안 근무하는 관리사무소 벽면에는 ‘취업규칙’ ‘안전보호구지급대장’ 등 각종 서류들이 걸려 있다.(사진 오른쪽).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 소장과 대화를 마치고 얼마 뒤 경비반장이 아파트를 순찰하려고 초소를 나섰다. 그의 손엔 길쭉한 쓰레받기가 들려 있다. ‘규정’상 그의 업무는 단순 순찰만 하는 것이지만, 그는 순찰하며 휴지 등을 줍는 일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자동 번호인식 차단기가 할 수 없는 일을 경비노동자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호소’처럼 느껴졌다.

오후 2시30분. 이 소장이 이번에는 관리과장 등과 함께 아파트 건물 지하에 있는 변전실을 찾았다. 관리과장은 관리소장 유고 때 관리소장 업무를 대신하며, 평소에는 설비 등에 대해서도 책임진다. 키가 제법 큰 50대 후반의 관리과장은 변전실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한전에서 오는 2만2천 볼트 전기를 220볼트짜리 가정용 전압으로 바꿔주는 복잡한 설비를 익숙하게 다루었다.

변전기를 다루는 관리과장을 보면서 이 소장은 “현재 최저임금과 관련해 경비원들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돼 있지만, 사실 관리 업무에 종사하는 간부들 처우 문제가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ㅍ아파트는 최저임금을 적용받기 시작한 2009년만 해도 관리과장과 기전주임의 임금은 상당히 차이가 났다. 그러나 현재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인 관리과장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인 기전주임과 전기·소방 선임 자격수당을 제외하면 4만원 정도로 좁혀졌다.

이 소장은 “경비와 기전팀 노동자들 임금은 최저임금 인상 등에 힘입어 최근 몇 년 사이 100% 가까이 빠르게 올랐지만, 최저임금보다 많이 높았던 관리과장이나 경리 등의 임금은 동결되거나 해마다 1~3% 정도씩만 올랐다”며 “책임자급인 관리소장과 관리과장은 그 책임이 크고 업무양이 많은데, 이렇게 격일제 기전팀 직원들과 임금 차가 거의 없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 소장은 이런 전문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임금 저하는 유능한 관리직 노동자들의 이직을 부르고, 이는 장기적으로 책임자 직급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아파트의 소프트웨어 부문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소장은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뿐 아니라 책임자급 전문직 노동자들에게도 처우 개선의 ‘신뢰’를 보여주면, 그들도 서비스 향상과 관리비 절감으로 보답할 것”이라 한다. 이 소장도 3년 전 현재의 ㅍ아파트에 관리소장으로 부임한 뒤 건설사를 상대로 하자보수 소송을 제기해, 3억원의 하자보수비를 추가로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변전실에서 관리사무소로 돌아온 이 소장은 곧 다가올 입대의 회의자료 준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차례 열리는 입대의 회의는 관리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소통하는 중요한 장이면서, ‘긴장의 현장’이기도 하다. 입대의와 관리사무소 사이에 불신이 있으면, 아파트 주민 전체가 큰 손해를 보기도 한다.

이 소장은 지난해 4월 입대의에서 결정한 ‘아파트 외벽재 도장 및 옥상 방수 공사’를 이런 불신이 낳은 대표적 피해 사례라 한다. 당시 공개 프레젠테이션에서 한 업체가 1위를 했다. 관리사무소는 그 업체가 이전에 시공한 아파트에 평판을 물었다. “프레젠테이션 내용과 달리 평판이 매우 나빴다.” 입대의에 보고한 뒤 임시 입대의를 열었지만, 몇몇 동대표가 강하게 해당 업체를 옹호하는 바람에 결국 그 업체에 사업을 맡겼다. 그런데 애초 3개월 만에 공사를 끝내겠다던 업체는 지난 1월 말까지, 10개월이 지나도록 공사를 채 20%도 진행하지 않고 있단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파트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입대의와 관리소장 등의 상호 불신을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이 소장은 “관리소장이나 입대의 동대표들은 대부분 선량한 사람들인데, 단지 1%가 문제 인물”이라고 한다. 그 1%의 악행 때문에 나머지 선량한 99%마저 의심받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소장은 관리소장 중에서 배임 등을 저질렀거나, 입대의 간부 중 월권 행사로 과태료를 받은 사람 등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자료를 확보해두었으면 좋겠다 한다. 입대의나 관리사무소가 요구할 경우 이런 범죄경력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1% 때문에 99%를 의심하는 폐단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 한다.

‘신뢰 문제’는 입대의 동대표들과 관리소장 사이에만 있지 않다. 아파트 노동자 전체와 주민들 사이에도 있다. 자기 업무도 아닌 ‘휴지 줍기’에 나선 경비반장은 몸으로 그 ‘신뢰’를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런 신뢰가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ㅍ아파트 경비원들이 비록 올해는 넘긴다 해도 5년 뒤, 10년 뒤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반대로 주민들의 신뢰가 아파트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아파트 기술직 간부로 남아 있으려 할까?

이 소장도 아파트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던 걸까? 퇴근 무렵이 되자 이 소장이 “아파트 노동자들의 서비스 질이 떨어지면 그 아파트는 겉은 괜찮을지 몰라도 ‘내장’은 썩는다” 한다.

짧은 겨울 햇살이 쥐꼬리 감추듯 사라지는 시각, 그 말이 ‘어쩌면 지금은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 논란에 머물지 말고 아파트 공동체 전체의 신뢰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울림이 돼 다가왔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