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를 넘어 분짜까지…서울은 베트남 맛집 삼국지

하노이 출신 서울 유학생이 ‘강추’하는 베트남 맛집 4곳

등록 : 2018-03-01 14:00
서울 유학 8년차 장과 4년차 미안

원 데이 푸드 트립에 동행 취재

바인미·분보후에·짜조 등

북부·중부·남부식 요리로 진화

플러스84 ‘분짜’

‘분짜’ ‘바인미’ ‘분보후에’ ‘짜조’…. 요즘 식객들이 자주 찾는다는 요리다. 모두 베트남 음식이다. 지난 세월 쌀국수와 월남쌈이 평정해온 베트남 음식 열기는 이제 ‘북부식, 중부식, 남부식’으로 삼국지마냥 분화될 만큼 뜨겁다. 2018년 3월 현재 서울 속 베트남 식당은 약 175곳. 이 가운데 식재료를 현지에서 공수해 요리하는 베트남 현지식 식당을 찾아 ‘원 데이 푸드 트립’을 떠났다. 하노이 출신 서울 유학생 장(25)과 미안(22)이 동행해 베트남 향수를 달랬다.

베트남 입맛의 기준


플러스84

“베트남에서는 그 식당의 ‘느억맘’을 먹어보면 음식을 잘하는 집인지 못하는 집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는 말이 있거든요. 서울도 마찬가지예요.”

서울살이 8년 내공, 그동안 크고 작은 서울 속 베트남 식당을 ‘엽렵히’ 기록해온 베트남 유학생 장의 말이다. 유학 4년차에 접어든 미안도 고개를 크게 끄덕여 동감을 표한다. 손님들은 인사동 ‘플러스84’가 만드는 느억맘이수준급이라고 평한다. 느억맘은 생선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킨 베트남 전통 조미료다. 뿌려 먹기도 하고 찍어 먹기도 한다.

장이 추천하는 메뉴는 ‘분짜’다. 따뜻하게 끓인 느억맘에 소고기 완자와 쌀국수와 신선한 채소를 같이 적셔 먹는다. “보통은 쌀국수용 면인 ‘퍼’를 분짜에도 쓰는데, 여긴 ‘분’을 제대로 써요. 분은 퍼보다 좀더 가늘고 잘 만들어야 하는 면이거든요.”

그 밖에 ‘바인꾸온’과 ‘컴수언’(갈비덮밥)은 베트남에서 아침식사로 즐겨 먹는 요리다. 바인꾸온은 쌀가루를 얇게 부쳐 고기, 녹두, 각종 향료를 넣고 돌돌 말아 쩌 먹는 요리다. 여기 베트남식 햄을 얇게 썰어 곁들이면 쫄깃한 식감과 건강한 재료가 주는 포만감이 크다. 컴수언은 레몬 향이 나는 풀, 레몬그라스와 각종 양념으로 숙성시킨 돼지고기를 숯불로 구워 밥 위에 얹어 내놓는 음식이다. 뒷맛도 개운하다.

“뭐든 처음 먹는 맛이 그 음식의 기준으로 남잖아요. 만약 분짜를 처음 먹는다면, 여기서 먹어보라고 추천합니다.” 장의 말이다. 식당은 베트남에서 온 남매가 운영한다. 식당 이름에 있는 ‘84’는 베트남 국가번호에서 따왔다.

매콤한 분보후에와 짜조가 유명한

팜티진

팜티진 ‘분보후에’

입을 헹구며 왕십리로 떠난다. ‘팜티진’은 전부터 베트남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들어서자마자 하얀 국수 삼키는 손님들과 붉은 ‘짜조’(튀김만두) 만드는 사장님 부부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꽉 찬다.

“한국 사람들은 소고기쌀국수와 얼큰쌀국수, 베트남 사람들은 어김없이 ‘분보후에’를 시켜요.” 인상 좋은 사장님 말씀이다. “베트남 중부에 ‘후에’란 도시가 있는데, ‘경주’처럼 오래된 도시거든요. 분보후에는 ‘후에 지방의 소고기쌀국수’라는 말이에요.” 장이 설명을 보탰다.

팜티진의 분보후에는 소꼬리 육수에 소고기 완자를 고명으로 얹고, 생채소를 곁들여 매콤하게 요리한다. 베트남 음식이 낯선 이들도 ‘고수’ 맛에 눈뜬다는 소문이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여름 내내 물처럼 마신다는 녹차 병음료 ‘영도’를 한 잔 곁들이면, 입도 시원하고 향미도 배가 된다는 것. 또한 비빔국수와 짜조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성비 좋은 쌀국수와 바인미를 자랑하는

사이공리

사이공리 ‘바인미’

햇살 부서지는 한강을 가로질러 노량진 ‘사이공리’로 간다. ‘가성비 좋은 메뉴’와 ‘바인미’로 뜬 음식점이다. 바인미는 바게트에 ‘빠데’(베트남식 버터)를 바르고, 햄이나 숯불 고기, 채소와 양념을 끼워 먹는 베트남 샌드위치다. 원조 바인미는 돼지 간을 갈아 넣지만, 사이공리에서는 미트볼로 대신했다. 장은 “베트남의 새벽 출근길, 다들 길거리 노점에 멈춰 즉석에서 만든 바인미를 먹는데, 굉장히 맛있죠”라 한다.

사이공리가 문 닫는 공식 시각은 밤 9시지만, 평일에는 저녁 7시, 주말에는 6시 반이면 재료가 떨어져 일찍 문을 닫는다.

“재료를 더 만들어두면 좋지 않을까요?” 하고 물으니 식당 주인 부부가 고개를 저었다. “하루 만들 수 있는 재료가 한계가 있어요. 육수 내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순간 옆에서 바인미를 오물오물 먹던 부부의 네 살배기 딸이 “안 돼. 우리 엄마야!”라며 대화를 막기도 한다. 긴 노동은 좋지 않다는, 명백한 표현이었다.

봄비 내리는 날 ‘반 세오’에 맥주 한잔

안 ‘반 세오’

밤 8시30분. 양화대교를 건너, 연남동 ‘안’으로 날아간다. 수다에 집중한 사이, 서울을 시곗바늘 방향으로 한 바퀴 돈 셈이다. 신촌 대학가와 가까운 안은 ‘베트남 가정식’을 자랑으로 내세워 일찌감치 인근 학생들의 인기를 얻었다.

베트남계 캐나다인 두 형제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차려주던 밥상을 추억하며 식당을 냈는데, 워낙 ‘순둥’하고 친절해 손님들 호감도가 높다. 밤 손님들은 베트남식 빈대떡 ‘반 세오'에 사이공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벅찼던 한 주를 달랜다.

안의 인기 메뉴인 반 세오는 베트남 쌀가루 반죽에 숙주와 새우 등 재료를 넣어 부친 후, 느억맘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안 1호점이 도심 속 지하에 터 잡은 베트남 가정집이 콘셉트라면, 15분 거리에 있는 2호점은 2층으로 올라 창밖 풍경을 훤히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봄비 오는 날 반 세오 한 접시에 맥주를 마시는 별식은, 도시 미식 여행의 마무리로 제격이다. 안은 밤 9시까지만 주문을 받는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