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대지진에도 아베 총리 비난 없는 이유
[유재순의 도쿄라이프]
등록 : 2016-04-28 21:19 수정 : 2016-05-18 17:37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근 잇단 지진으로 1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구마모토현의 미나미아소 피난소를 23일 방문해 몸을 낮추고 무릎을 꿇은 채 이재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마모토현/AP 연합뉴스
일본인들은 웬만해서는 남 탓을 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선 자신에게 어떤 과오가 있는지부터 점검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과실이 있으면 이내 모든 것을 자기 책임으로 돌린다. 산 사태와 도로 유실로 식량 운송이 안 되면 헬리콥터를 이용하면 된다. 아마도 대통령 말 한마디가 곧 법이 되는 한국 같았으면 즉각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그런 결단 대신 정식 절차를 밟았다. 정식 절차는 체계를 밟아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현재 헬리콥터 보급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일본 정부의 결정에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때, 일부 산골 지역이 산사태로 도로가 꽉 막혀 한동안 고립무원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으로 이 뉴스를 본 일본 국민들은 격앙돼 왜 빨리 헬리콥터를 띄우지 않느냐고 정부를 비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드러난 사실이 자위대의 헬리콥터가 민간인을 위해 활용하려면 그 절차가 꽤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그후로 이런 비난은 수그러들었다. 일본인들은 눈물이 많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타인 앞에서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2001년 1월26일,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당시 일본어 어학연수를 와 있던 이수현씨가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일본 열도는 충격과 감동으로 당시 총리와 장관이 공식적으로 감사와 애도를 표할 만큼 고 이수현씨의 살신성인에 일본 전 국민이 슬퍼했다. 그런데 당시 살신성인을 행한 이가 또 한명 있었다. 세키네 시로라는 카메라맨이었는데 고 이씨와 함께 취객을 구하려다 참변을 당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세키네씨의 어머니는 한일 기자들을 향해 “제 자식 일로 인해 여러분을 번거롭게 해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머리를 연신 조아렸다. 그리고 자식이 취객을 구하고자 했는데 구하지 못해 오히려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세키네씨의 어머니는 기자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표정 또한 담담한 듯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취재 도중 빠뜨린 질문이 있어 그의 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였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홀로 앉아 꺼억꺼억 숨죽여 우는 그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혼자 있어 대성통곡을 해도 보는 이가 없으련만 그 어머니는 우는 소리마저 억누르려는 듯 숨죽여 꺼억꺼억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간절하고 절절해 필자는 혹여 그 슬픔에 방해가 될까 봐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돌아온 적이 있다. 현재 구마모토 재해 주민들도 그럴지 모른다. 한국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냉정한 사람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화장실에서 혹은 무너진 가옥 한쪽에 숨어서 거부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서 비롯된 절망감을 꺽꺽 토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사진 유재순 일본 전문 온라인매체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