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 핫 플레이스

성수동의 시간이 뒤섞여 있는 골목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등록 : 2018-03-01 14:35

연무장길은 지하철 2호선 뚝섬역부터 성수역을 지나 성수사거리에 이르는, 성수동을 가로지르는 긴 골목이다. 어른 키만 한 가죽 원단을 가득 실은 자전거가 묘기 하듯 지나고, 모터쇼에서나 보던 고급 차가 구겨진 채 수리를 기다리는 연무장길은 대한민국 수제화의 자존심이 피어나고, 상처 입은 자동차들이 새로 태어나는 일터다.

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로 조선의 병력이 모여 무예를 연습하던 곳이라 ‘연무장’(演武場)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1960년대 후반 국내 제화업계의 양대 산맥인 금강제화, 에스콰이어 생산 공장이 입주한 뒤 이들을 따라 가죽, 액세서리, 자동차·구두 부자재 등 300여 개의 협력업체가 밀집하며 국내 신발의 80%를 제작하는 구두 거리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중국의 값싼 제품들에 밀려 하락세를 거듭하며 많은 업체가 떠나버리면서 인적이 드문 거리로 변했다. 그러나 최근 1960년대 지은 빛바랜 붉은 벽돌 건물, 오래된 낡은 공장과 창고에 예술가들이 입주해 갤러리, 작업장, 카페 등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성수동은 맵시 있고 매력적인 동네로 바뀌고 있다. 2011년 성수동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대림창고’(사진)는 정미소와 창고로 50여 년간 쓰였던 붉은 벽돌 건물을 개조해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라이프 숍이 융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림창고 맞은편 봉제공장 건물 안에 자리한 패션디자이너 편집숍 ‘수피’, 구두공장을 리모델링해 카페와 전시·세미나 공간으로 운영하는 ‘오르에르’ 등은 새롭고 오래된 성수동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크게 바뀐 것 없이 예술가들의 손을 살짝 거쳤을 뿐인데 건물과 거리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압구정이나 홍대의 매끈한 분위기와 달리 기존의 낡은 공장과 녹슨 철문, 공장 담벼락, 오래된 얼룩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감각과 특색으로 꾸려낸 공간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연무장길을 돌아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다.

또 성수역 2번과 3번 출구 앞에는 카페거리가 있다. 오래된 공장 건물에 들어선 세련된 카페, 수십 년 된 방앗간 자리에 들어서는 찻집, 주택가 골목 틈에서 묵묵히 커피를 볶는 로스터리 등 성수동만의 독특한 매력이 살아 있는 카페들이 모여 있다.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성수동 골목골목에서 나만의 카페를 찾는 즐거움을 가득 누리다보면 성수동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커피임을 인정하게 된다.

수십 년 자리를 지킨 인쇄소가 매끈한 패션 편집숍으로 바뀌고, 커다란 봉제공장이 카페가 된다. 나뭇가지처럼 제멋대로 난 좁은 골목길 안 풍경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연무장길의 매력은 새로 들어서는 ‘핫 플레이스’들에만 있지 않다. 성수동을 지켜온 오래된 사람과 공간들, 그 사이사이 성수동에서 가능성을 찾은 새로운 사람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낯선 풍경이 서울 어느 곳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연무장길만의 매력을 만든다.

이런 매력을 소개하기 위해 성동구가 최근 제작한 <성수여행> 안내책자에는 연무장길 말고도 뚝섬골목길, 서울숲길, 수제화거리 등 핫한 골목과 여행 정보를 담았다. 안내책자는 언더스탠드에비뉴, 성수동 골목가게, 도서관, 주민센터 등에서 받을 수 있다. 성동구는 성수동의 붉은 벽돌로 지은 공장, 창고 등을 산업유산 건축자산으로 보전하고 마을을 명소화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도 세웠다.


글·사진 남기남 성동구 경제정책추진단 주무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