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2일 서울시구청장협의회의 일본 정책워크숍에 참여한 구청장들이 도야마시 이와세지구에서 전통 창틀 ‘스무시코’(격자무늬)로 리모델링한 ‘사토낚시점’을 둘러보고 나와 공간재생사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이해식 강동구청장, 김수영 양천구청장, 유종필 관악구청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성장현 용산구청장, 김기동 광진구청장, 차성수 금천구청장.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제공
“행정 비용은 줄어도 인구밀도가 높아져, 생활환경이나 치안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요?”(도야마시 도심재생정책 ‘콤팩트시티’)
“아동수당이나 아동 의료비 지원이 어떤 효과를 냈나요?”(사바에시의 저출산 문제 대응)
지난 2월21~22일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 시청과 후쿠이현 사바에 시청을 각각 찾은 서울의 구청장 7명(김기동 광진구청장, 김수영 양천구청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성장현 용산구청장, 유종필 관악구청장, 이해식 강동구청장,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두 도시 공무원들의 발표를 듣고 질문을 이어갔다. 방문 시간이 짧아 충분히 질문하고 답변을 듣긴 어려웠지만 구청장들은 각자의 구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지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도야마시와 사바에시가 있는 지역을 ‘호쿠리쿠’라고 한다. 호쿠리쿠는 동해에 면한 중부의 3개 현(도야마, 이시카와, 후쿠이)을 말한다. 도야마현과 이시카와현은 인구 100만 명을 겨우 넘고, 후쿠이현은 79만명 남짓이다. 호쿠리쿠는 도쿄에서 500여㎞ 떨어진 변방이지만, 일본 정부와 대학연구팀의 행복도 조사에서 1~3위를 꾸준히 차지하는 ‘살기 좋은 곳’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구체적인 정책들을 실행해 국내외에서 관심을 받는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가 민선 6기 마지막 정책워크숍 지역으로 이곳을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워크숍에 참여한 구청장들은 21, 22일 오후 도야마 시청과 사바에 시청을 방문했고, 22일 오전 도야마시의 도시정책 현장을 둘러봤다.
구청장들은 두 도시 사례에서, 어떤 방식으로 행복도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지 살펴보았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나라나 지역마다 처한 여건은 많이 다르지만 부딪히는 문제는 비슷해 돌파하는 나름의 방식을 주의 깊게 봤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의 방식에 관심이 많은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과거를 없애기보다 옛것을 살려 침체해가는 지역을 되살리는 지역재생 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새 신생아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는 점을 고민하는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이번 탐방에서 저출산 위기 대책의 필요성을 새삼 확인하고 획기적 개선안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참고가 되었다”고 말했다.
두 도시를 살펴본 뒤 구청장들은 행복도시의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결실을 보는 비결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일자리, 교육, 복지 정책을 기업, 학교, 주민들과 통합적으로 풀어간다는 점이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도록 단순히 수당을 지급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 육아와 교육, 생활 등의 종합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저출산 문제를 제대로 풀어가는 방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저출산 문제는 일자리 해결이 관건으로, 저출산 대책은 원인부터 분석해 대책을 세워야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둘째는 소통 행정으로 정책 효과를 높인다는 점이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사바에시가 상공정책과, 학교교육과, 육아지원과 등이 칸막이 없이 소통하며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라며 “행정 부처 한 곳이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찾아내지 못하기에 부처 간의 유기적 협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태도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주민의 힘’이다. 지역에서 주민 제안으로 시작한 ‘길냥이’ 급식 정책 경험을 한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단체장이 주민의 자발성을 끌어내고, 주민은 단체장이 더 역할을 할 수 있게 참여하고 후원하면서 두 도시가 행복도시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도야마시는 인구 42만 명의 도시다. 급격한 인구 감소에 도야마시는 2000년대 중반부터 도심에 도시 기능을 집중하는 ‘콤팩트시티’정책을 펼쳤다. 먼저 대중교통 체계부터 갖췄다. 시내 전차 ‘센트램’과 경전철(LRT) ‘포트램’ 신설로 대중교통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요금은 내렸다.
정책워크숍 참가 구청장들이 도야마시의 경전철을 탔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제공
대중교통시설을 축으로 주거, 상업, 문화와 복지시설을 모아놓았다. 도심 중심지를 거주추진지구로 지정하고 건설사와 주민에게 보조금을 지원했다. 건설사엔 가구당 100만엔(약 1천만원), 주민에게는 월세나 주택구매비를 50만엔(약 500만원) 보조했다. 도심에 살며 걸어서 문화를 즐기고 장도 쉽게 볼 수 있게 도서관과 미술관, 대형 쇼핑센터를 만들었다. 지난해 4월엔 도심 폐교 터에 보육, 공공 산후조리원 ‘마치나카 종합케어센터’를 열었다.
중심지의 끝자락에 있는 이와세지구에서는 공간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예부터 항구 지역으로 번성했지만 화재와 철도 발달, 인구 감소 등으로 지역 산업이 쇠락해 빈집이 많아졌다. 1990년대 후반 이 지역 출신 인재들이 돌아와 마을 만들기에 나섰다. 마쓰다 주조점, 덴카도 잡화점 등을 열고 일본 전통 창틀 ‘스무시코’(격자무늬)를 살려 집을 고쳐나갔다. 2000년대 후반 도야마시가 스무시코를 사용한 전통 건축에 보조금을 주면서 짧은 시간 안에 100년 전의 멋스러운 마을로 변신했다.
도야마시의 노력은 현재까지 아주 성공적이다. 중심 시가지에 거점 투자를 해 외곽 인프라 건설과 유지에 드는 행정 비용을 줄였고, 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세수는 늘었다. 유키히코 나카타 도야마 도시정책과장은 “도심이 활성화되면 안정적인 재정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도야마시의 도심 면적은 5%이지만 세수는 22%를 넘는다고 한다. 도야마시는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콤팩트시티 정책보고서’에서 멜버른, 밴쿠버, 파리, 포틀랜드 등 유수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사바에시의 인구는 7만 명 정도 된다. 기업 수는 1천 개쯤 되는데, 이 가운데 30%가 안경테를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1900년대 초 농한기에 주민들이 함께할 일거리로 안경테 만들기가 시작된 뒤 ‘안경 산지’로 유명해졌다. 그러다 1990년대 값싼 중국 제품의 공세로 어려움을 겪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지역경제가 붕괴할 지경이었다. 사바에시는 주민들과 위기를 공유했다. 시는 보조금 등을 지역기업에 주고, 기업은 주민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했다. 지금은 일본 안경테의 96% 이상을 이곳에서 생산한다.
사바에시는 어려웠던 경험을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동력으로 삼았다. 사바에시의 초·중·고 교육에서는 체험 교실과 실습으로 지역기업을 이해하고 애향심을 높이는 수업이 이뤄진다.
나카무라 슈이치 사바에시 부시장은 “미래를 담당할 아이들이 애향심과 희망을 갖게 도시정책을 펼치고, 100년 뒤에도 행복한 도시로 남기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사와 가즈히로 학교교육과 교육심의관은 “학생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지역에 남아 일하며 살고 싶게 하는 데 집중하며, ‘모노쓰쿠리’(장인정신으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뜻)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고 전했다.
지난 2월22일 일본 사바에 시청에서 나카무라 슈이치(발표석에 서 있는 사람) 사바에시 부시장과 공무원들이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정책워크숍 참가자들에게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제공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지역 만들기에도 힘썼다. 사바에시의 육아지원과는 시청 건물 1층 민원실 제일 앞에 있어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가사시마 마사노부 육아지원과장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 조성과 여성들이 경력을 잘 이어갈 수 있게 상담하고 지원제도도 알려준다”고 전했다. 시는 2014년 ‘사바에시 일과 생활 균형 상’을 만들어 기업과 개인에게 시상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맞벌이 부부가 늘고,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63만엔(약 630만원)을 넘는다. 사바에시의 노동자 세대의 실수입은 도쿄를 제치고 일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기업, 학교, 지방자치단체, 가정이 서로 힘을 합치는 선순환 모델로 주목해 2012년 백서에서 ‘호쿠리쿠 지방의 맞벌이를 통한 가치창조 모델’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 도야마시·사바에시/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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