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70살에 중학생 된 할머니 “공부 욕심은 특상”
영등포구 직영 ‘늘푸름학교’ 중등 과정 입학한 최기자씨
등록 : 2018-03-08 15:21
5일, 60~90대 백발성성한 학생 입학식
최씨, 초등 마치고 중등 과정 진학
봉건적 아버지 때문에 학교 못 갔지만
혼자서 한글 깨치고, “대학까지 가겠다”
지난 5일 영등포구청 별관 제2평생학습센터 지하 1층 교실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영등포구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문해교육을 직접 하는 ‘늘푸름학교’의 입학식이 열린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50여 명의 학생 앞에서 최고령 이순섬 할머니가 학생을 대표해 포부를 밝혔다.
“공부에 한이 많았는데, 저는 한을 풀었어요. 여기에 나오면 소원이 다 풀려요.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세요.” 입학식 포부를 밝히는 이 할머니의 정정한 목소리에 92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이 할머니에게 나이란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했다. 이 할머니는 91살 나이에 초등학교 2단계 과정에 입학해 1년 동안 한글을 완전히 깨치고 3단계 과정으로 진급했다.
이 학교 입학생 평균연령이 워낙 높다보니 젊은 축에 드는 최기자(70)씨는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초등학교 3단계 과정을 다닌 최씨는 공부에 재미를 붙여 올해 신설된 중등학력 과정(정원 30명)에 입학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될 때 공부하는 재미를 제일 많이 느껴요. 지난 2일 학교에서 중등 과정 입학생에게 수학 문제를 냈는데, 10문제 중 1문제를 틀려서 너무 아쉬웠어요.”
늘푸름학교에서 초2 단계 과정과 중등 과정 영어를 담당한 이미애 교사는 “최 할머니는 열 번 쓰라고 숙제를 내면 백 번을 써 온다”며 “상중하로 성적을 나눌 때 최 할머니의 성적은 상이고, 공부 욕심은 특상”이라고 전했다. 최씨는 “기억력이 떨어져 열 번 써서는 모르니까요”라고 말한다. 척추 협착증과 무릎 관절염이 있는데도 워킹맘인 두 딸을 대신해 중학생과 고등학생 손주들 뒷바라지와 살림을 도맡아 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제13회 서울평생학습축제 ‘성인문해 골든벨’에 나가 참석자 139명 가운데 2등(우수상)을 차지했다. 최씨는 내친김에 대학교까지 진학하겠다는 꿈을 감추지 않았다. “그전에는 은행에 가면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척척 잘해요. 그렇지만 요즘은 실생활에서 영어가 많이 쓰여 영어 공부를 해야겠더라구요. 그래서 중학교 과정까지 진학하게 됐는데, 우리 아들이 대학교 과정까지 진학하라고 응원하네요. 우리 학교에 고등 과정이 생긴다면 대학까지 갈 거예요.” 가난한 집에서 4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최씨는 “자식이 많이 배우면 부모에게 불효한다”는 봉건적 아버지 때문에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다. 하지만 최씨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며 ㄱ, ㄴ, ㄷ을 배우고, 대학생들이 가르치는 야학에 다니면서 공부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대학생 선생님의 추천으로 국민학교 편입시험을 쳐서 합격했지만, “입학금 300원이 없어 다니지 못했어요” 하고 털어놓았다. 가난과 봉건적 부모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학구열을 불태우는 사람은 최씨만이 아니다. 이날 입학식에 참여한 50여 명 중 1명(할아버지)을 뺀 모든 학생이 ‘공부에 한이 맺힌’ 할머니들이다. 늘푸름학교 교장인 조길형 영등포구청장도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뒤 30여 년 만에 고교 과정을 마쳤다. 늘푸름학교가 2015년 10월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서울시교육청 지정 초등학력 문해교육 프로그램 운영기관이 된 것도 조 구청장의 체험이 크게 작용했다. 조 구청장은 이날 입학식에서 “90살 넘은 어머니가 배움 앞에는 나이가 필요 없다는 자세를 보여주었다”며 “100살까지는 끊임없이 배우려는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늘푸름학교가 올해 중등 과정(3년)을 신설하고 입학생 30명을 모집했는데, 예상보다 지원자가 많이 몰려 현재 9명이 대기 상태다. 늘푸름학교의 이미애 교사는 “서울시교육청 학력 인정 중등 과정은 일반 중등 교과서 30%를 반영해야 한다”며 “교과서 수준이 높아서 중등 과정에 진학한 어머니들을 위해 ‘은빛 생각교실’을 열어 1년간 영어·수학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지난 5일 영등포구청 별관에서 열린 영등포 늘푸름학교 입학식에 참석한 ‘70살 중학생’ 최기자(맨 앞)씨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늘푸름학교에서 초2 단계 과정과 중등 과정 영어를 담당한 이미애 교사는 “최 할머니는 열 번 쓰라고 숙제를 내면 백 번을 써 온다”며 “상중하로 성적을 나눌 때 최 할머니의 성적은 상이고, 공부 욕심은 특상”이라고 전했다. 최씨는 “기억력이 떨어져 열 번 써서는 모르니까요”라고 말한다. 척추 협착증과 무릎 관절염이 있는데도 워킹맘인 두 딸을 대신해 중학생과 고등학생 손주들 뒷바라지와 살림을 도맡아 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제13회 서울평생학습축제 ‘성인문해 골든벨’에 나가 참석자 139명 가운데 2등(우수상)을 차지했다. 최씨는 내친김에 대학교까지 진학하겠다는 꿈을 감추지 않았다. “그전에는 은행에 가면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척척 잘해요. 그렇지만 요즘은 실생활에서 영어가 많이 쓰여 영어 공부를 해야겠더라구요. 그래서 중학교 과정까지 진학하게 됐는데, 우리 아들이 대학교 과정까지 진학하라고 응원하네요. 우리 학교에 고등 과정이 생긴다면 대학까지 갈 거예요.” 가난한 집에서 4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최씨는 “자식이 많이 배우면 부모에게 불효한다”는 봉건적 아버지 때문에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다. 하지만 최씨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며 ㄱ, ㄴ, ㄷ을 배우고, 대학생들이 가르치는 야학에 다니면서 공부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대학생 선생님의 추천으로 국민학교 편입시험을 쳐서 합격했지만, “입학금 300원이 없어 다니지 못했어요” 하고 털어놓았다. 가난과 봉건적 부모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학구열을 불태우는 사람은 최씨만이 아니다. 이날 입학식에 참여한 50여 명 중 1명(할아버지)을 뺀 모든 학생이 ‘공부에 한이 맺힌’ 할머니들이다. 늘푸름학교 교장인 조길형 영등포구청장도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뒤 30여 년 만에 고교 과정을 마쳤다. 늘푸름학교가 2015년 10월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서울시교육청 지정 초등학력 문해교육 프로그램 운영기관이 된 것도 조 구청장의 체험이 크게 작용했다. 조 구청장은 이날 입학식에서 “90살 넘은 어머니가 배움 앞에는 나이가 필요 없다는 자세를 보여주었다”며 “100살까지는 끊임없이 배우려는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늘푸름학교가 올해 중등 과정(3년)을 신설하고 입학생 30명을 모집했는데, 예상보다 지원자가 많이 몰려 현재 9명이 대기 상태다. 늘푸름학교의 이미애 교사는 “서울시교육청 학력 인정 중등 과정은 일반 중등 교과서 30%를 반영해야 한다”며 “교과서 수준이 높아서 중등 과정에 진학한 어머니들을 위해 ‘은빛 생각교실’을 열어 1년간 영어·수학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