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척! 이 조례

접종 첫날 보건소 앞 100m 줄서기

동대문구 ‘취약계층 어르신 대상포진 예방접종 지원 조례’

등록 : 2018-03-08 15:37
동대문구 의사협회 등 설득 끝에

서울 자치구 중 최초 조례 제정

시중 15만~19만원…5만원에 접종

한 달여간 대상자 60% 접종 완료

지난 2월26일 오후 동대문구 보건소를 찾은 김윤계(왼쪽)씨에게 의사 유국영씨가 대상포진 예방 접종의 예후를 묻고 있다. 동대문구 제공

“주사 맞은 데는 괜찮으세요?” “예. 우리 경로당에서 8명이 맞았는데, 한 분만 몸살 난 것마냥 이틀인가 그러다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1월15일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한 김윤계(72)씨가 2월26일 오후 동대문구 보건소를 다시 찾았다. 의사 유국영씨는 대상포진 예방접종의 부작용에 대해 “주사 맞은 부위가 붓고 아플 수 있고 몸살 기운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아주 드물다”고 설명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주로 어린아이에게 수두를 일으킨 뒤 잠복기에 들어갔다가 면역 기능이 떨어지면 재발하는 질병이다. 발진과 수포가 피부에 띠를 두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또 대상포진을 앓고 난 뒤 생기는 신경통은 1개월 이상 통증이 계속되는 고통스러운 합병증이다. 박인순 동대문구 지역보건과 팀장은 “10년 전에 친언니가 대상포진을 앓았는데, 지금도 비만 오면 그 다리가 쑤신다고 한다. 신경을 건드리기 때문에 잘 낫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대상포진에 걸리면 종기처럼 톡톡 불거지고 칼로 살을 에는 듯 아프다고 하더라. 다른 할머니들은 예방주사를 맞는데도, 나는 비용 부담에 걱정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경로당에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방문간호사가 “올해부터 구청에서 접종비를 지원해줘 저렴하게 맞을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동대문구는 지난해 10월27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만 65살 이상 취약계층 어르신 대상포진 예방접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든 건 동대문구가 처음이다. 동대문구에 1년 이상 주민등록을 하고 거주하는 만 65살 이상 어르신 가운데 의료급여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는 예방접종 비용의 50%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서울시 단가에 의한 약품비의 50%를 지원받아 5만2250원만 낸 김씨는 “우리 경로당에서 개인적으로 병원에 가서 15만원 주고 맞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19만원 주고 맞았다는 사람도 있었다”며 “혹시라도 늦게 가면 주사약이 떨어져 못 맞을까봐 접종을 시작하는 첫날 보건소에 갔다”고 한다.

이진선 주무관은 “1월15일 오후 2시부터 예방접종을 시작했는데, 1시간 전부터 어르신들이 줄을 서기 시작해 2시에는 100명이 넘게 줄을 서 있었다. 반응이 그 정도로 폭발적일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고 했다. 접종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대상자 575명 가운데 약 60%가 접종을 마쳤다.

대상포진 예방접종 지원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주민들이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도록 하겠다는 민선 6기 동대문구의 공약사항이다. 대상포진을 50~60% 예방하고, 신경통 등 합병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예방접종은 평생 한 번만 맞으면 된다.

그러나 조례 제정까지 어려운 점도 많았다. 이진선 주무관은 “15만~19만원이나 하는 접종인데, 보건소에서 반값으로 해준다고 하면 주변 의료기관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서울시 단가가 나오면 약값이 공개되는 거라 가장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초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먼저 지원한 인천시 옹진군과 강원도 철원군이 약품비를 공개하면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박인순 팀장은 “동대문구 의사협회에 찾아가 취약계층 500여 명에게 혜택을 주자고 설득했고, 지역 의사와 구의원이 취지에 공감하고 필요성을 이해해준 덕분에 조례가 구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례를 제정해 취약계층에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지원하자 전국의 지자체 10여 곳에서 문의가 왔다. 서울의 다른 자치구에선 “동대문구에서는 저렴하게 맞을 수 있다는데, 우리 구는 지원하지 않느냐는 항의도 많다”고 전했다. 이 주무관은 “현재 대상포진은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신경통 등 합병증이 워낙 심해 비싼 예방주사를 맞는 어르신이 많다. 우리 구처럼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지원하는 지자체가 늘어나면 언젠가는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정되지 않겠느냐”고 바람을 나타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예방접종은 예방 가능한 질환 때문에 초래되는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앞으로도 경제적으로 취약한 주민들을 위한 예방적 건강관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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