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장 곳곳서 “아이고”…스톤 쳐낼 때 ‘짜릿’

전현주 기자의 컬링 체험기

등록 : 2018-03-15 14:36
평창겨울올림픽 때 ‘팀킴’에 매료된

컬링팬들 태릉 빙상장에 몰려

동호회 회원 한 달간 1천 명 늘어

컬링장 미끄러워 균형잡기 중요

지난 10일 오후 5시30분,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빙상장을 찾은 시민들이 컬링을 배우고 있다.

컬링이 붐이다. 전국에 단 하나인 컬링동호회, 서울컬링동호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수는 지난 2월 한 달 동안 1000여 명이 늘었다. 주말마다 열리는 컬링 강습도 공지와 함께 빠르게 마감된다. 3월에만 약 300명 가까운 시민이 동호회 강습을 예약했다. 지난 10일 토요일 공릉동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 열린 동호회 모임 현장을 찾았다.

컬링장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


‘스위핑’을 배우는 회원들. 무호흡 상태로 ‘브룸’을 밀며 빠르게 전진하기 때문에 상당히 숨이 가쁘다.

현재 서울에서 일반인이 컬링을 배우려면 서울시컬링연맹 카페에 가입하고 서울컬링동호회가 마련한 강습을 받는 방법밖에 없다. 올해 10년차를 맞은 서울컬링동호회는 창단 이래 가장 바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주말 저녁 시간을 내어 태릉선수촌까지 찾아온 새내기 회원들은 평창겨울올림픽에서 활약한 컬링 국가대표팀, 일명 ‘팀킴’의 활약에 고무됐다는 이들이 절대다수였다. 대기실에서 만난 정현모(27)씨는 “올림픽 당시 ‘영미, 영미!’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김경애 선수 팬이 됐을 정도”라고 했다. 김자홍(34·배우)씨도 “나 역시 김경애 선수 팬이다. 직업상 틈틈이 많은 운동을 배워둬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올림픽 때 경기를 재밌게 봐 꼭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온 김경민(30·체육 교사)씨, 유종건(30·사업가)씨도 올림픽을 보고선 호기심이 생겨서 왔다며 웃었다. 최아무개(36·간호사)씨는 육아휴직 중 도전해 오늘이 두 번째 수업이라며 “아이 키우면서 힘든 점도 있지만, 배울수록 재밌는 운동이 컬링이더라”고 했다.

“20~30대 문의가 가장 많고, 선수가 되고 싶다며 찾아오는 중·고등학생들 문의도 좀 있어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 가족 단위 방문 문의, 회사 단체강습 문의도 부쩍 늘었고요. 마감된 수업이라도 ‘대기’로 넣어달라는 요청도 정말 많아요.” 박성욱 컬링동호회장의 말이다.

초보자도 금방 빠져드는 컬링 손맛

컬링에 입문한 새내기 회원들이 훈련 전 준비운동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컬링에 막 발을 들인 입문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대기실에서 연습용 신발과 ‘브룸’(빗자루)을 받으면 바로 빙상장으로 들어가 다 함께 가벼운 준비운동을 한다. 그 뒤 7~8명씩 조를 나눠 담당 코치 지도 아래 컬링의 이모저모를 배운다.

“스톤 무게가 몇 킬로그램 될까요?” 코치의 질문에 “19.9킬로그램이요.” 정답이 바로 나올 정도로, 수업에 참여한 회원들 열의는 높은 편이다. 이어서 장비 교육과, 경기장·경기규칙을 익힌 뒤, 약 45m 되는 빙상장을 왕복하며 ‘슬라이딩’(미끄러짐) 등 컬링 기본 동작을 반복해 연습한다. 입문자가 스톤을 ‘제대로 굴리려면’ 최소 3개월에서 5개월 정도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김재원 코치의 ‘아웃턴’ 시범

컬링 전용 빙판은 예민하고 미끄럽다. 티브이 속 선수들이 쉽게 하던 동작도 직접 따라 해보면 영 어색하다. 넘어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여기 저기서 “아이고!” 소리가 터진다. 수업을 진행한 김재원 코치는 “컬링을 처음 하면 몸이 긴장해 무겁게 느껴지고 더 잘 미끄러진다. 미끄러져도 절대 두려워하지 마라”며 회원들을 독려했다.

무엇보다 컬링은 매너가 중요한 팀 스포츠다. 한 시간 반 정도 기초교육을 마치면 팀을 짜서 미니게임에 들어간다. 비록 어설픈 동작으로 하는 연습 경기지만, 스릴만큼은 올림픽 경기 못지않다. 오늘 처음 만난 어른들이 돌 하나에 집중해 얼굴이 벌게지도록 ‘스위핑’(빗자루질)을 하고, 이글이글 눈빛을 빛내고, 승부에 연연하는 모습은 그대로 유쾌한 볼거리다.

팀대항 게임에서 ‘서드’로 참여한 전현주 기자가 스톤을 던지고 있다.

팀의 ‘서드’(컬링은 한 팀 4명의 선수로 이루어진다. 리드, 세컨드, 서드, 스킵)를 맡아 직접 브룸을 잡았다. 카메라는 뒷전으로 밀어낼 정도로 금방 몰입했다. 스톤을 잘못 굴리면 고개를 들지 못했고, 상대편 스톤을 뻥 쳐내면 희열이 차올랐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톤이 빙판을 굴러가는 시원한 소리, 손끝에 남아 있는 돌의 감각 등이 몸에 오래 남았다. 같은 팀 ‘스킵’(주장)으로서 잠재한 재능을 보였던 배아름(30)씨는 “다음 주 수업에 또 참여하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팀킴’ 키즈들이 나올 수 있을까

현재 전국 컬링장은 태릉경기장을 포함해 6군데(강릉·의성·진천·인천·의정부)에 있다. 오는 29일 개장하는 의정부 컬링장이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몰려드는 관심에 비해 컬링장 수와 운동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정혜숙(45)씨는 “아이가 먼저 컬링을 배워보고 싶다며, 스스로 정보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많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서울컬링동호회 박 회장은 “올림픽 영향으로 인기 종목이 되어도, 관심이 금방 식는 경우가 많다. 컬링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려면 가까운 곳에 컬링장이 많아야 한다”고 했고, 김 코치도 “지금 초등학생들에게 컬링을 가르치고 있는데, 컬링 꿈나무들이 꿈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