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새벽 3시

새벽에 일어나 나는 쓰고 또 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다시 마음의 알프스산맥에 오르며

등록 : 2018-03-22 14:39
2년 전 ‘내 삶의 주인 되기’ 칼럼 독자

만나기 위해 새벽 3시에 글쓰기

한계를 넘은 괴테와 박지원처럼

가치 추구의 삶에 계속 도전할 것

새벽 3시, 뜨거운 커피를 앞에 놓고 노트북과 마주 앉았다. 글을 쓰고 강연하는 ‘글로생활자'로서 나의 하루는 또 이렇게 시작된다. 2년 전 처음 ‘내 삶의 주인 되기’ 독자들과 만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독자들과 삶의 방식과 길을 함께 고민하는 이 시간은 언제나 버겁다. 격주마다 돌아오는 마감 시간이면 내가 혹시 시시포스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을까 가끔 생각하게 될 정도다. 영원히 무거운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으면서 살아가던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말이다. 이처럼 큰 중압감에 시달리면서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몰입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신문이라는 대중매체에 쓰는 글은 일정한 정보가치가 있어야 하고, 경험을 공유해야겠지만 쓰는 사람이 그 시간을 사랑하지 않고 몰입의 기쁨을 모른다면 절대로 공감은 오지 않는다. 매스(Mass·대중) 미디어이면서도 동시에 딥(Deep·몰입) 미디어로서 이 지면이 가진 특별한 묘미다. 독자들과 감정을 서로 깊게 교류한다는 의미다.


새벽 3시마다 책상에 앉는 이유는 또 있다. 1786년 어느 날 괴테가 홀연히 로마를 향해 아무도 모르게 길을 떠났던 바로 그 결연한 시간이다. 안정된 현실을 뒤로하고 떠난 도전을 의미한다. 비슷한 시기 조선의 연암 박지원도 새벽 여명을 뚫고 압록강의 푸른 물 앞에 홀로 섰다. 난생처음 비좁은 한반도를 떠나 거대한 중원의 땅을 밟기 직전이었다.

새벽은 이렇듯 두려움과 설렘이 팽팽히 맞서는 긴장의 시간이다. 가장 어두운 시간이면서 곧 환한 날이 밝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두 사람에게 삶이란 그 이전까지 알프스산맥과 압록강, 딱 거기까지였다. 단순히 지리적 경계와 공간의 한계가 아닌 인생의 한계였다. 무척 낭만처럼 비치지만 18세기 후반 그들의 여행은 반쯤 목숨을 건 행위였다. 길은 험했으며 인프라도 형편없었다. 가끔 지붕도 없는 곳에서 노숙을 해야 했다. 야생동물과 산도적이 출몰하는 때였다.

이런 상황 앞에서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평소에 목청 높여 꿈을 말하던 사람들도 막상 기회가 왔을 때는 온갖 이유를 대가며 포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후자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속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평생의 장대한 꿈을 찾아 길을 떠났다. 괴테는 37살, 연암은 43살 때의 일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지도가 아닌 심장이 이끄는 대로, 마음속의 지도를 따라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두 사람은 북위 40도에서 함께 글을 쓰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심장과 피부로 써내려간 글이었다. 이 여행 후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바뀌고, 더 나가 독일과 조선의 지식 사회에 전례 없던 신선한 문예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연유로 이 여행을 가리켜 참된 의미의 ‘그랜드 투어’, 위대한 여행이라고 말한다.

내가 괴테처럼 오직 그의 책 한 권 들고 알프스산맥을 넘었던 것도 벌써 4년 전이다. 연암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18세기 후반 두 사람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부터는 내 인생의 여정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이 여행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많은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그것은 수치로만 평가했을 때 생각이다. 연봉, 타이틀, 명함 같은 것을 말한다. 많은 것들을 포기한 대신 얻은 것도 많다. 가장 큰 소득은 인생에서 추구하는 대상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수치 추구에서 가치 추구로 전환했다. 이제는 충분히 그래도 되는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정신없이 남의 뒤만 따라가다 낭떠러지를 만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 기업들의 전략을 분석하며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바라트 아난드 교수가 남긴 명언이다. 이 말은 그대로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도대체 언제까지인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경쟁하고 승진의 사다리를 올라가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낭떠러지를 만난다.

조직 생활의 계단을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 물론 의미 있다. ‘낭만 독립’이란 허상도 조심해야 한다.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하지만 출구전략은 있어야 한다. 그 시점은 과연 언제인가? 모든 선택은 두렵지만, 그 시점의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면 그것처럼 무책임한 인생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내 삶의 의미와 존재 의의를 찾아 고민한다. 결국은 내 인생이고 나의 길이다. 지난해 세계현대미술의 혁신을 이끄는 베를린의 미테 지역을 방문하였다가 ‘me’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을 발견했다. me는 나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moving energies’(움직이는 에너지)의 약자이기도 하다. 이동하는 에너지 혹은 동력 전달자로서 예술의 역할을 말하는 메타포(은유, 상징)였다. me는 다른 길을 마다하고 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글로생활자로서 나의 정체성을 말한다. 번아웃(탈진)되거나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다시금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동력 전달자 역할이다.

“당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지 말고, 하늘 위의 별을 쳐다보도록 해요!”

최근 세상을 떠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남긴 말이다. 육체적 고난으로 죽음과 동거하고 있음에도, 그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다고 했다.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블랙홀에도 탈출구는 있다고 했다. 바로 그거다. 다시 마음의 알프스산맥에 도전할 시간이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녹록지 않더라도 두려워 말고, 움츠러들지 말자. 꿈이 있는 한 세상은 언제나 당신 것일 테니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