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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시설이던 하수처리장, 이제는 나들이시설

중랑물재생센터 지하화 3월 준공 지상은 물순환 테마파크로 꾸며

등록 : 2018-03-22 14:58 수정 : 2018-03-23 10:36
지난 13일 드론으로 촬영한 성동구 중랑물재생센터의 물순환 테마파크 전경. 2009년까지만 해도 사진의 왼쪽 같은 하수처리시설이 있었다. 오는 5월이면 사진의 오른쪽 산책로에서 유채꽃을 감상할 수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13일 오전 성동구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에서 나오자 멀리 중랑물재생센터 정문이 보였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터 면적만 80만㎡(약 24만2400평)의 거대한 하수처리장이 있었다. 중랑물재생센터는 1976년 가동을 시작한 국내 최초의 하수처리장이다. 날마다 서울 동북 지역과 의정부 일부 지역의 하수와 분뇨 159만t을 정화해 중랑천으로 내보낸다. 서울에는 한강을 경계로 북쪽에 중랑과 난지, 남쪽에 탄천과 서남 등 모두 4개의 물재생센터가 있다.

센터 측의 안내를 받아 하수처리장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하수가 정화되는 장면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물속에 가라앉는 돌이나 모래, 물 위에 뜨는 플라스틱병 등을 걸러내는 침사지, 산소를 공급해 미생물을 번식시켜 유기물질을 흡착·분해하는 포기조(공기 공급조), 밀도 차를 이용해 부유 물질을 가라앉히고 맑은 물만 방류하는 침전지 등 모든 시설에 덮개가 있었다. 하수처리장 하면 떠오르는 악취 또한 느낄 수 없었다. 정삼모 중랑물재생센터 주무관은 “지상에 있는 하수처리시설에는 덮개를 씌우고 탈취 시설을 설치해 악취를 최대한 제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수처리장 서쪽 끝에 이르자 넓은 공원이 나타났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물순환 테마파크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수도를 테마로 한 서울하수도과학관, 우산과 물방울을 형상화한 조형물, 정수된 하수를 이용해 물놀이를 즐기며 과학의 원리도 배우는 물놀이 시설, 자연형 실개천과 빗물 정원이 있는 쉼터 등이 있었다. 물순환 테마파크 옆 3만9천㎡(약 1만1800평) 터에 만든 산책로에서는 주민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이윤재 서울하수도과학관 학예연구사는 “얼마 전 유채씨를 심어서 5월이면 노란 유채꽃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가을에는 축구장 5.5배 면적이 희고 붉은 코스모스꽃으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중랑물재생센터는 비어 있는 공간에 축구장, 풋살장, 배드민턴장, 족구장, 배구장 등을 만들어 주민에게 편의시설로 제공하고 있다. 이창하 중랑물재생센터 주무관은 “인터넷에서 예약할 수 있는데, 인기 시간대는 한 달 전에 일찌감치 예약이 끝날 정도다”라고 귀띔했다.

서울의 다른 물재생센터들도 센터 곳곳에 지역 주민을 위해 산책로와 공원, 체육시설 등을 마련해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나고 있다. 탄천물재생센터는 하수처리시설을 복개하고 그 위에 체육시설과 생태·환경시설을 마련한 일원에코파크를 지난해 6월 개장했다. 이창하 주무관은 “하천 옆에 있는 탄천물재생센터는 지대가 낮아서 주변 인도와 같은 높이로 복개해 공원을 만들었다. 반면 평지인 중랑물재생센터는 지상부는 주민을 위한 공원으로 만들고, 하수처리시설을 지하로 넣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예산 약 2556억원을 들여 중랑물재생센터 지상에 있던 하수처리시설 일부를 철거하고 물순환 테마파크로 꾸몄다. 철거한 하수처리시설의 기능은 물순환 테마파크 바로 아래 지하 공간에 만든 현대화 시설이 맡는다.

물순환 테마파크 지하에 마련한 현대화 시설. 3월 준공을 앞두고 시운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월 준공을 앞두고 시운전하고 있는 현대화 시설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자 바로 악취가 느껴졌다. 불과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지하에 머물렀지만,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날 정도였다. 정삼모 주무관은 “예전에는 지상에서도 이것보다 악취가 더 심했다”고 했다. 그 시절 인근 주민이 느꼈을 고통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현대화 시설은 이처럼 하수처리 과정에서 날 수밖에 없는 악취를 지상과 근원적으로 차단한다. 기피시설에서 생태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물재생센터의 핵심 시설인 셈이다.


지하 곳곳에 오염물질을 걸러주는 여과시설 등 하수관로가 있었지만 하수가 보이는 부분은 아예 없었다. 하수가 침전을 거치는 지상과 달리 생물막 여과지(질산화조)를 거쳐 오염물을 제거하는 공정이 눈길을 끌었다.

이창하 주무관은 “기존 방수 기준인 생화학적 산소요구량(비오디·BOD)10보다 훨씬 깨끗한 비오디5까지 정화할 수 있고, 좁은 면적에서도 많은 양의 하수를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랑물재생센터는 기존에 정화한 용수는 하천으로 방류했지만, 현대화시설에서 먹는 물 수준까지 정화하고 여과시킨 용수는 서울하수도과학관 주변 공원과 연못 등에 재이용할 계획이다.

현대화 시설은 하수처리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악취를 지상과 근원적으로 차단한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하 현대화 시설은 대구·부산 등에 이미 있지만, 서울에서는 중랑물재생센터가 처음이고 규모도 국내 최대다. 서남물재생센터도 내년 말 현대화 시설을 가동한다는 목표로 공사하고 있다. 서울시는 중랑물재생센터의 남아 있는 하수처리시설도 2·3단계 사업을 거쳐 지하화하고, 장기적으로 다른 물재생센터까지 지하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제현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장은 “기피시설이던 하수처리장이 생활 속 환경시설로 탈바꿈했다”며 “시민과 아이들이 하수도 시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시민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운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