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쯤이면 봄의 길이 보인다. 매화에서 시작된 봄이 벚꽃을 보내고 있다. 수양버들 가지에 연둣빛 물이 오를 때 바람은 쉬지 않고 불어댄다. 들뜬 마음처럼 부푼 강물에 물결을 만들어 자꾸만 흔들어댄다. 서울의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기찻길을 걸어 도착한
푸른수목원
천왕역 3번 출구에서 300~400m 정도 가다보면 큰 사거리가 나온다. 그 부근에 ‘항동 철길’이 시작되는 곳이 있다. 항동 철길은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가 부천시 소사구 옥길동에 생기면서 원료와 생산물 등을 운송하기 위해 1959년에 만든 철로다. 지금은 그 기찻길로 사람들이 걷는다. 1.3㎞ 정도 걸으면 ‘푸른 수목원’이 나온다.
아이들이 기찻길을 따라 뛰어갔다 뛰어온다. 통통거리며 쉬지 않고 달린다. 그 모양이 딱 봄이다. 기찻길의 다른 주인공은 청춘들이다. 철로에 올라서서 입을 맞추는 연인들, 봄이 푸르름으로 그들을 감싸준다. 지팡이 짚고 걷는 할아버지, 그 봄 참 더디다.
수목원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우회전해서 수목원 정문으로 들어간다. 봄이 머무는 곳에서 사람들은 쉰다. 저수지에 수양버들이 한들거린다. 물가 의자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앉았다. 저수지 둘레에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조팝나무꽃, 푸밀라붓꽃이 꽃길 초입에 피어 진달래 꽃길로 안내한다. 꽃밭을 걷는 소녀의 모습이 봄 중의 봄이다.
침엽수가 줄을 지어 서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황금메타세쿼이아의 황금빛 잎새가 빛난다. 나무 밑동 아래 할미꽃이 실 같은 머리를 풀었다. 뱀 혀를 닮은 참뱀차즈기꽃의 수술 끝에서 봄이 휘발한다.
조선 시대 왕족들의 사냥터
서울숲 공원
중랑천과 한강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바위산과 들판이 어우러진 ‘서울숲 공원’ 주변 산천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나보다. 조선 시대 왕족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사냥을 했던 곳이라고 하니 말이다.
서울숲 공원과 응봉산을 떼어놓고 그 풍경을 말할 수 없다. 서울숲 공원에서 바라보는 응봉산, 응봉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숲 공원이 아름답다.
서울숲 공원 사슴방사장 위 보행전망교에서 풍경을 즐긴다. 사슴들이 방사장을 거닌다. 시냇물이 고였다 흐른다. 연둣빛 물오른 수양버들 가지가 바람에 찰랑댄다. 그 뒤에 펼쳐진, 개나리꽃으로 뒤덮인 응봉산을 한눈에 넣는다.
은행나무·소나무·메타세쿼이아·버드나무·계수나무… 나무가 만든 서울숲 공원 길을 걷는다. 참새·곤줄박이·직박구리 등 사람이 오가는 길 위에서 새들이 노래한다. 발길은 꽃들이 피어난 연못으로 이어진다.
옛 정수장 건물의 일부를 남겨 색다른 공간으로 꾸민 곳에서 코스프레를 한 청소년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따라 곤충식물원으로 들어갔다. 꽃과 푸른 잎 사이를 오가며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나비를 쫓아다닌다. 나비를 보느라 고개를 젖힌 아이들이 꽃 같다.
서울숲 공원에서 용비교를 건너 응봉산으로 올라간다. 개나리꽃에 묻혀 걷는다. 온통 노란 개나리꽃 길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있는 꼭대기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신록숲’, 서울숲 공원이 있다.
붓꽃 정원이 장관인
서울창포원
서울창포원은 지하철 도봉산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서울이지만 공기가 시내와 다르다. 북카페 2층 밖에서 붓꽃 정원을 한눈에 넣는다.
서울창포원에 따르면 창포원에 노랑꽃창포·부처붓꽃·범부채 등 130여 종의 붓꽃이 피어난다. 올해는 5월10일 정도에 붓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다.
붓꽃원, 약용식물원, 습지원 등 아기자기하게 자리잡고 있는 작은 정원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그 길 중간에 산수유 노란 꽃이 피어 눈길을 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벌이 이꽃 저꽃 날아다닌다.
멀리 아지랑이같이 아른거리는 게 보인다. 무리 지어 피어난 할미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었다. 바람에 찰랑거리는 연둣빛 수양버들 가지, 멀리 보이는 기암괴석 도봉산, 야외 쉼터에 마련된 조형물, 쉼터에 날아드는 참새,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서울창포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붓꽃만이 아니다.
정원 같은 쉼터의 의자에 앉아 멀리 도봉산 자락을 바라본다. 난간 옆에 날아와 앉는 참새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꽃도 시간마다 모습이 달라지는 분주한 봄 한가운데 앉아 여유를 즐긴다.
바람 부는 섬
선유도공원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한강의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그중 ‘선유봉’이라는 작품도 있다. 한강 백사장 옆에 우뚝 솟은 선유봉의 풍경을 담았다.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 ‘경조오부도’에도 선유봉이 나온다.
아름다운 풍경, 그림 속 선유봉은 일제강점기에 비행장과 도로를 만든다며 돌을 캐가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선유봉은 지금의 양화대교 남단 부근에 있었다고 하니, 지금의 선유도공원에서 옛 선유봉과 한강이 어우러진 풍경을 상상해볼 뿐이다.
선유도공원은 바람 부는 섬이다. 양화대교 중간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선유도공원으로 들어간다. 종소리가 흘러나올 것처럼 생긴 석류꽃, 작고 단아한 백정화, 란타나, 쿠페아… 온실에 핀 꽃으로 마음을 정화하고 바람 부는 길로 나선다.
온실 앞 수질 정화원 수양버들 가지가 바람에 날린다. 키 큰 포플러나무 사이를 지나 벚꽃길로 걷는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뒤로하고 수양벚꽃과 수양버들이 어울려 자란 풀밭에서 잠시 멈춘다. 선유정 정자에 어르신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 풍경이 예스럽다.
수생식물원 진붉은빛 수련 위에 멀리서 날아온 흰 벚꽃 잎이 내려앉았다. 자작나무 가로수길 아래로 젊은 연인들이 지나가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젊은 부부가 그 뒤를 걷고 있다.
꽃 다 져가는 살구나무를 지나 전망대에 오른다. 수양버들 낭창거리는 한강 풍경을 굽어본다. 바람이 절정이다. 멈추지 않는 바람의 뿌리가 정선의 그림 ‘선유봉’에 닿아 있는 듯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