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들이 더 전투적…“사내 셋 키우면 날마다 전투”

전현주 기자의 금곡 예비군 훈련장 서바이벌 게임 생존기

등록 : 2018-04-19 14:32 수정 : 2018-04-19 17:14
개방 2년째 훈련장 장대비 뚫고 140명

M16 사용법 배운 뒤 시가지 전투에

두 번 사망, 마지막 교전에 생존

제공된 점심 짬밥에 예비역들 감탄

금곡 과학화예비군훈련장

“평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시민체육행사에 자주 참여하는데, 서바이벌 행사를 시작했더라고요. 바로 예약했죠.”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더불어 친형 가족과 왔다는 정진오(42)씨가 활짝 웃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 과학화예비군훈련장이 시민 개방 2년차를 맞이했다. 금곡 훈련장은 서울시 6개 구 예비군 지정 훈련장이다. 서울시와 수도방위사령부 간 업무협약으로, 훈련장 일부를 활용해 연 4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연다. 지난 14일 토요일 아침, 장대비를 뚫고 훈련장을 찾아온 140여 명의 시민과 장병들의 하루를 담았다.


입소, 실감 나는 사격 훈련과 심폐소생술

AM 10:00

영상모의사격 체험장

서울 잠실운동장 앞에서 출발해 약 40여 분 달린 버스가 금곡 과학화예비군훈련장 입구를 통과하자 군인들이 나와 참가객을 맞았다. 아이들은 벌써 감탄을 터뜨렸다. 서울시 한정우 체육진흥과장은 “자연 속에서 가족, 친구들과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고 돌아가시길 바란다”며 인사말을 전했다.

입소하자마자 건빵을 선물받고 네 개 조로 나뉘어 영상모의사격훈련장으로 갔다. 실제 예비군들이 훈련하는 장소다. 개조한 M16 소총 사용법을 배우면 대형 스크린 속에 시가지가 펼쳐진다. 조교 지도 아래, 바닥에 납작 엎드려 M16 소총을 잡았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이고 가늠쇠도 본다. 무겁다. 지하철역, 한강 다리, 교외 논밭, 골목, 주택가 등지 장면이 빠르게 바뀐다. “어어” 하다가 두 번 사망했다. 마지막 교전에서야 마침내 생존했다. 실감 난다.

아빠와 함께 체험장을 찾았다는 이은율(10)양은 “박물관에서만 봤는데 직접 만져보고 체험하니 신기했다”며 생존의 기쁨을 나눴다. 전도진(11)양도 “평소 친구들과 비비탄 게임만 하다가 직접 해보니 좋았다”며 상기된 채 소감을 전했다. 영상모의사격훈련이 끝나면 바로 심폐소생술과 지혈법을 배운다. 심폐소생술은 말 그대로 심정지 환자를 살리는 소생술이다. 모형 인형의 흉부를 압박하고, 기도를 확보해 인공호흡을 하는 등 적십자가 권고하는 절차를 따라 한다. 초등학생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심폐소생술과 지혈법 교육

“증상은 세 가지입니다. 축 늘어짐, 불규칙한 호흡, 짧은 경련. 주변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다면, 그는 즉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져도 1분 이내 심폐소생술을 하면 97%가 생존한다. 교관은 “골든타임을 넘겨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비상시 우리 가족, 동료를 구하는 기술”임을 강조했다.

식사, 예비군 ‘짬밥’ 먹고 PX ‘잇템’ 쇼핑

PM 12:00

“식사 좋아졌구만.” 식당에 도착하자 아버지들 식단 품평이 이어졌다. 현재 금곡 훈련장에서는 점심으로 도시락(사진)을 준다. 예비군 식단이다. 그동안 예비군 식사가 부실하다는 평이 많아, 식단 평가단 등을 두고 해마다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군 관계자는 말한다.

부리나케 식사를 마치면 모두 피엑스(PX)로 몰려간다. 현재 금곡 피엑스 ‘잇템’은 ‘달팽이크림’이다. 효능이 좋단다. 그 뒤로 시계, 면도기, 과자류 등 먹거리가 장바구니를 채워간다. 다들 손에 묵직한 봉투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선다.

서바이벌, 빗속에서 치르는 비장미 가득한 교전

PM 2:00

마일드 서바이벌 체험장

“<태양의 후예>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 ‘마일드 서바이벌’ 교육장에서 조교가 말하자 웃음이 터졌다. “야아, 하고 달려가면 안 됩니다. 다 죽습니다. 몸을 딱 숙이세요.”

부디 안전하게 즐기시라. 조교의 당부다. 팀 단위로 장비를 착용하고 M16 레이저 소총을 쥔 채, 일렬로 이동했다. 약국, 식당, 골목 등 시가지를 재현한 세트장 위로 하늘이 어둡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니 영화 촬영장이 따로 없다. 비장한 배경음악을 신호로 무대로 올라갔다. 민방위 훈련도 진작 끝난 사오십 대 아버지들이지만 자세에 각이 살아 있다. 올망졸망 뒤따라오는 식솔들이 감탄하니 더 ‘으쓱’한다. 총구를 겨눠 방아쇠를 당기면 레이저가 나간다. 대형 전광판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이 중계된다.

교전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어머니들이다. 국밥집 계단을 뛰어 건너 몸을 은폐한 뒤 총구를 내밀고, 적군을 피해서 잽싸게 탱크 뒤로 숨는다. 군모가 연신 흘러내리지만, 재빨리 고쳐 쓰며 시야를 확보했다. 뒤쫓아가 “경험자인가요?” 우문을 던지니 “사내 셋 키우면 이렇게 된다. 하루하루가 전투다”는 웃음 담은 현답이 돌아왔다.

퇴소, 가족들과 특별한 추억을 뒤로하고

PM 4:00

전현주 기자(맨 왼쪽)가 영상모의 사격훈련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안전할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현장에서는 대략 70여 명의 장병이 구역마다 배치돼 방문객을 맞는다. 숫자만 따지면 참가객 2명당 장병 1명이 붙어서 돌보는 셈이다.

행사에 참여한 남영숙(42)씨는 초등학생 아이 셋을 데리고 왔는데, “체험 내내 위험하다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며 소감을 말했다. 옆에서 “어휴, 군대 있을 땐 어떻게 뛰어다녔는지 몰라!” 푸념하는 아빠에게 “늙어서 그래!” 응수하는 양서희(11)양은 “총이 무거워 깜짝 놀랐지만, 다른 건 다 재밌었다. 다음에 가족과 또 오겠다”며 야무지게 군모를 벗었다.

금곡 예비군 훈련대장 정영재 중령은 “훈련장 개방 범위를 점차 넓혀 시민에게 더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연 4회 개방하고 있지만, 시민들 요청이 늘어 하반기부터 횟수를 늘려나가려 합니다. 우리 국민이 캠핑 문화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아침 일찍 육군 훈련장에 놀러와 예비군 체험을 하고, 심폐소생술 등 중요한 삶의 기술을 배우고, 어울려 밥 먹고, 자기가 즐긴 자리를 치우고 집에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체험 이상의 경험이 되리라 봅니다.”

*서바이벌 참가 팁

-자격: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서울시 거주 시민

-문의: 서울시체육회누리집 (www.seoulsports.or.kr) / 전화: 02-490-2775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